수상작 소개
| 제목 | 열일곱, 백범을 만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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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권규민(이화여고) | 개최일 | 2023-06-07 | 조회 |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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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백범을 만나다 이화여자고등학교 1학년 애반 권규민 훤칠하신 키, 동그란 뿔테안경에 앞니를 드러내고 개구쟁이 같은 환한 미소를 짓고 계신 할아버지. 다행히 어릴 때 읽었던 위인전 속의 김구 선생님이었기에 크게 낯설게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김구 선생님에 대해 그동안 단순히 독립운동가 중 한 분이었고, 상해임시정부에서 큰 역할을 하셨다는 것, 그리고 백범일지를 쓰셨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나 자신이 몹시도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동안,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일상, 이렇게 자유롭고 아름다운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 이유와 이런 나라를 만들기까지의 과정과 과거 선조들의 노력에 대한 고마움을 진심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잠시 잠깐 들끓는 애국심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시고 노력하셨던 분들을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을 느끼는 것도 잠시, 쉽게,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 버리곤 했던 것 같다. 이번 기회를 통해 언젠가 한 번쯤 읽게 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었던 백범일지를 읽게 되면서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백범일지는 김구 선생님이 글의 출간사에서 밝혔듯이, 본국에 있던 어린 두 아들에게 아버지의 지난날을 알리고자 유서 대신으로 쓴 ‘상권’과, 윤봉길 의거 이후 중일전쟁으로 독립운동이 주춤하던 시기에 한인 동포들에게 독립운동에 대한 경륜과 소감을 알리고자 쓴 ‘하권’, 그리고 우리 민족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쓴 ‘나의 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권’은 김구 선생님이 태어나서부터 상해임시정부의 주석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두 아들에게 이야기하듯 쓰신 것인데, 언제 죽음이 닥칠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었기에 마치 유서와도 같이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써 내려갔을 심정을 생각하면 가슴 먹먹할 수도 있지만, 글의 내용에서는 긴박함이나 초조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다정다감하게 써 내려간 글들이 마음 깊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신분제도를 비롯해 당시 만연해 있던 부정부패에 굴복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행동하셨던 모습들. 나라의 발전을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교류하며 신문물과 신학문을 익히기 위해 노력하신 모습들. 물론 치기 어린 마음에 치하포 사건처럼 급격한 무력을 행사한 일도 있었지만, 결국 독립을 위한 힘을 키우는 것이 교육이라는 신념으로 오랜 옥고 생활을 비롯한 온갖 역경 속에서도 틈만 나면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몽하려고 힘쓰신 모습들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학생들이 나를 숭배함보다 내가 학생들에게 천배 만배의 숭배와 희망을 두고 있었다.”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선생님의 교육관에 대해 조금이나마 느낄 수가 있었다. 지금 우리가 받는 교육이라는 것이 한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한, 그저 개인적인 의미나 목적에서만이 아닌, 우리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이어나가려 했던 미래에 대한 기대였다고 생각하니 다시 한번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김구 선생님이 하층민인 백정의 ‘백’과 평민인 범부의 ‘범’을 합쳐 ‘백범’이라는 호로 쓰신 것도 한없이 자신을 낮추시려는 의도도 있었겠지만, 나라를 위한다는 것이 원대하고 큰 뜻을 가진 위인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행동과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려는 듯 느껴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백범일지에 나타나고 있는 여성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백범일지가 평범했던 한 사내가 큰 뜻을 품고 나라의 독립운동을 위해 묵묵히 걸어갔던 일생을 담담하게 적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 과정 면면에 배경처럼 서술되고 있는 어머니의 일생은 어떠했을까. 당시 시대적 상황에 따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한없이 낮았을 것이고 그에 따라 사회적 역할을 행사하는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라를 위해 일하는 자식의 큰 뜻을 위해 헌신하고 끝까지 믿어주는 모습 등 처한 상황과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에 결코 그 역할이 작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지불수가 된 남편을 살리기 위해 어린 자식을 친척 집에 맡겨두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치료했던 일, 치하포사건으로 옥고를 치르는 아들을 위해 가산을 팔고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옥바라지했던 일, 교수형에 처할지도 모르는 아들을 다독이며 흔들리지 않도록 담담히 견뎌낸 일,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상해임시정부 시절에 아들의 큰 뜻을 위해 손주들을 돌보며 힘겹게 생활한 일. 결국 먼 이국땅에서 숨을 거두셨지만, 아들의 큰 뜻이 굽혀질까 의연히 죽음을 받아들이신 모습까지 어머니의 숭고하신 희생 덕분에 백범 김구 선생님이 계실 수 있었고, 나아가 나라의 독립이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여성의 지위는 많은 부분 나아졌고, 많은 분의 희생 덕분에 그 당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아졌다. 내가 처음 이화여고를 가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가 학교 자체의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교정도 큰 이유였지만,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큰 변화의 흐름 속에서 여성이라는 당시 사회적 지위의 한계를 넘어서서 꿋꿋하게 목소리를 내고 적극적으로 사회적 역할을 다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해 왔던 정신이 너무 멋져 보였고, 그러한 큰 흐름 속에 나도 속하고 싶다는 동경과도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글을 마치며, 임시정부 시절에도 나라의 독립이라는 공동의 원대한 목표가 있었지만, 서로 다른 이념적 접근으로 국민대표회의가 무산되는 등 끝내 합치에 이르지 못했던 일이 있었는데, 오늘날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상황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였다.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경제위기와 우크라이나 전쟁과도 같은 불안정한 세계정세 속에서도 서로의 정치적 견해 차이에 따른 다툼으로 국가운영에 불협화음을 만드는 지금의 모습을 보면 백범 김구 선생님의 정치 이념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산에 한가지 나무만 나지 아니하고, 들에 한가지 꽃만 피지 아니한다. 여러 가지 나무가 어울려서 위대한 삼림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백 가지 꽃이 섞여 피어서 봄의 풍성한 경치를 이루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이 조화를 이루기를 바랐던 백범 김구 선생님의 정치 철학이 지금 이 시대에 다시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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