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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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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백범일지 감상문
작성자 황호준(호평고) 개최일 2019-11-01 조회 2553

백범일지 감상문

 

호평고등학교

2학년 2반 황호준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 메말라 갈라진 땅, 끝이 없어 보이는 거대한 사막을 거닐어 본 적이 있는가. 그 곳에서도 한 줄기의 희망을 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 독립 운동의 심정도 이러할까. 희망을 가지는 것이 죽음으로 돌아올 수 있는 곳에서 그들은 끝까지 싸웠다.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 이것은 역사이다. 학교에서는 역사를 마치 영어단어처럼 외운다. 역사를 통해 우리의 선조들은 지금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하지만 우리는 잘 듣지 못한다.

백범일지는 민족이념의 역사적인 문헌이며 독립운동의 증언서이다. 김구는 험난한 독립운동의 과정 속에서 훗날 자신의 글을 읽을 사람들을 위하여 꾸준히 자신을 기록에 남겼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그가 꿈꾸던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훌륭한 재료로 남아있다. 나는 백범일지를 통해, 단순암기로 배웠던 역사가 마음을 울리며 선조들의 뜨거운 영혼과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백범일지는 한 사람의 기록이자 역사이다.

 

백범이라는 사람은?

그는 어렸을 때 일반 어린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뿜어냈다. 그는 17살에 매관매직의 타락을 보고 서당 공부를 관두고, 관상 공부를 했다. 하지만 자신의 관상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자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관상이 안 좋다면 좌절하고 실망하기 바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겉모습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내면을 다듬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불굴의 의지와 꺾이지 않은 그의 신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마음 좋은 사람’이라는 단어를 보고, 용기 있는 사람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에 다가갈 수 있는 용기, 선행을 할 수 있는 용기, 불의에 뜻을 굽히지 않는 용기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김구의 이런 다짐과 용기가 이 후의 의병 활동의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일본이 적극적으로 우리나라를 침략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백범 김구는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많은 의병 활동에 참여한다. 그리고 21살에 일본인 스치다를 국모 보수로 살해하여 투옥된다.

 

그를 포함한 독립 운동가들의 감옥 생활은 비참했다. 하지만 그는 다리뼈가 드러나는 악형에도 조금의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백범일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합 일곱 번이나 매달려 질식된 후에 찬물을 끼얹어 희생시키는 일을 당하여도 심지는 점점 더 강고해졌다. 왜놈에게 국권을 빼앗긴 것은 우리의 일시적 국운 쇠퇴이고 일본은 조선을 영구 통치할 자격이 없음이 명약관화하게 생각되었다.’

나였다면, 내가 그 때 그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있었더라면, 나는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살이 찢기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나는 고난이 인간을 어떻게 굳건하게 만드는지를 보았다.

백범일지에는 김구뿐만 아니라 수감자들의 고통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많은 독립 운동가들은 끔찍한 고문은 물론이고 극심한 노동과 지저분한 잠자리, 허접한 밥상은 끊임없이 그들을 괴롭혔다. 나는 상상만 해도 벅찬 고통을 겪은 그들의 절망을 느낄 수 있었다.

 

김구는 ‘죄인을 죄인으로 보는 것보다는 국민의 일원으로 보아 선으로 이끄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감옥에서 조차도 우리나라를 뜨겁게 사랑했다. 그의 정신은 점점 더 맑아지고 독립의 의지는 더욱 강건해졌다.

그는 3.1운동 이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수많은 일을 이루어냈다. 국내의 신민회에 이어 김구가 조직한 한인 애국단의 이봉창 의사는 동경 의거를 윤봉길 이사는 홍구 의거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고 중국 내에 정식 군대까지 만들 수 있었다.

김구는 독립 이후에도 미국이 38선 이남에서 미군정, 이북에서 러시아와 중국 공산당 지원을 받는 북한 사이에서 남북 간의 회담을 주최하는 등 민족 간의 분열을 막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의 호인 ‘백범’이란 ‘백정(白丁) 범부(凡夫)’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하등사회도 애국심이 지금 나 정도는 되어야 완전한 독립국민이 되겠다는 그런 바람을 가지자는 것이다.’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저 우리나라가 일본의 속국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농촌에서는 우리나라의 참담한 상황을 모르는 사람도 상당수라고 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김구는 교육과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사람들을 계몽하며, 일생을 통해 우리나라를 꼭 자주 독립 나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우리는 왜 백범일지를 보아야 하는가?

 

그의 이야기가 끝난 후 나는 백범일지의 끝부분에 그가 후대에 남기고 싶은 말을 써놓은 단락들을 좋아한다. 나는 그 부분을 읽으면서 시대를 관통하는 그의 위대함을 느꼈다. 그의 사상은 현대인에게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그에게 ‘자유’는 국민에게 있다. 백범일지에 ‘자유가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온다.’ 라고 쓰여 있다. 그는 국민의 참여를 강조하였고 그것은 현대의 중요한 과제이다. 그 오래전 한 위인은 마치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우리의 선조들이 그토록 간절히 바라왔던 세상이라는 것을 자주 잊곤 한다.

‘독립이 없는 나라의 백성으로 70 평생에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받은 나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가 죽는 일이다’라는 말은 수많은 동포들의 간절한 바람이었으나 현재의 나에겐 아주 낯선 외침이다

 

왜 그럴까?

우리는 대부분 역사를 잊은 채 앞만 바라보며 살아간다. 지금 우리는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수많은 경쟁 속에 살아가며 그 잔인한 경쟁은 우리에게 역사보다 우선이 되어있다. 역사 속에는 우리의 선조들의 기록이 담겨있다. 우리는 지금 그들의 과거를 돌아보며 성찰해야 한다. 김구는 ‘지금 하권을 쓰는 목적은 나의 50년간 분투한 기록을 읽음으로써 그 많은 과오를 거울로 삼아 그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하지 않으면 발전은 없다고 외치고 있다.

현재의 우리는 과거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누군가가 처절하게 지켜낸 곳이다. 김구가 그의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동포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많은 사람들은 김구의 자질을 알아봤고 그에 대한 후원도 상당했다. 그들은 그를 지원해주며 목숨과 자원을 아끼지 않았다. 독립 운동이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과 같다. 김구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목숨 잃고 가족을 잃어버린 동포들 수십 수백 명의 참혹한 소식을 매일같이 들었다.

자신의 나라를 지키고자 함께 했던 동포들의 호응과 지원은 김구를 다시 일으켰고 그와 동시에 우리나라를 지켜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는 나의 아버지, 나의 형제, 나의 벗 그리고 그 자신의 희생이 있었다. 우리는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꿈꿔왔고 수많은 희생 끝에 결국 이루어낸 자주 독립의 나라에 살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자주 독립이란 능동적인 주인 된 자세로 나의 길을 나아가는 것이다. 남이 만들어준 길을 걷는 것은 자주적이라고 할 수 없다. 김구는 일본이 미국에 투항하여 광복을 이루었지만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우리의 힘으로 쟁취한 완전한 독립이 아닌 이상, 우리는 여전히 자주 독립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과 정신을 빼앗는 침략에서 벗어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주 독립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도 스스로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능동적인 자세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나의 몸, 정신은 온전히 나의 것이 안 될 때가 있다. 실제로 우리는 온전히 우리에 대해 자주적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 되기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능동적이지 못하고 스스로의 주인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치욕스러운 일을 겪었다. 하지만 김구는 비록 우리나라의 정부는 빼앗겼더라도 우리나라의 정신만은 남아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가 다른 나라에 가서 임시 정부를 세우고 지킨 것은 국토는 침략을 받을지언정 우리의 주인은 우리 스스로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김구는 평생을 자주 독립을 간절히 바라며 살아갔다. 하지만 나에게 자주 독립의 나라는 공기와도 같았다. 너무도 당연하기에 한 번도 진지하게 자주적인 독립 국가를 고민해 보지 않았던 나에게 백범일지는 묻는다. 자주적이란 어떤 것인가. 혹은 나에게 독립이란, 자유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난 지금 현재 자주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앞으로 나는 어떻게 자주적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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