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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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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평생을 살다 간 백범 김구 선생
작성자 배선욱(양정고) 개최일 2018-10-24 조회 3705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평생을 살다 간 백범 김구 선생

-『백범일지』를 읽고-

 

양정고등학교

1학년 4반 배선욱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백범 김구의 ‘나의 소원’ 첫 부분에 나오는 이 구절은 『백범일지』, 그리고 김구 선생의 삶을 가장 잘 요약해서 드러내는 구절인 것 같다. 김구 선생은 자신의 일생을 오직 우리나라를 위해 바친 가장 위대한 독립운동가다. 점점 민족의식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 책은 내게 그동안의 생각과 언행들을 반성하게 만들고, 가슴에 무언가 뜨거운 울림을 주는 뜻깊은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동안 내가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민족 지도자인 김구 선생에 대해 너무나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김구 선생이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의 자유를 위해 투쟁한 독립운동가이며 독립 후에 우리나라의 완전한 통일을 위해 애썼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희생한 김구 선생께 그동안의 나의 무관심과 무지에 대해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구 선생을 포함한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을 영원히 기억하고 가슴 깊이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이 우리가 그분들께 해 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이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 김구 선생과 다른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더 알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평탄치 않았던 어린 시절. 아니, 그냥 주어진 삶에서 편하게 살 수도 있었겠지만 김구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평범한 삶을 스스로 거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양반에 대한 꿈을 갖고 어렵사리 배움의 길에 들어서서 과거를 보러 갔으나 이미 부정부패가 팽배해져 있는 과거 시험에 크게 실망하고 특이하게도 관상 공부를 하였다. 그때 절망에 빠진 그에게 희망을 주는 구절이 있었으니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는 『상서』의 구절이었다. 김구 선생은 그때 마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였다. 어릴 적의 그 다짐 때문이었던가? 그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자기를 채찍질하고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다 갔다.

 

김구 선생의 인생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어린 나이에 감옥에 갇혀 사형을 당할 뻔했다 겨우 탈옥하였고 그 후에도 몇 번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했으며 출옥 후에도 일제에게 쫓기며 나라를 위해 살았다. 김구 선생이 이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며 독립운동을 한 데에는 오직 단 하나의 이유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나라, 우리 민족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책을 읽다가 몇 군데 인상 깊은 구절이 있었다. 투옥되는 순간 국가가 망하기 전에 구국 사업에 뜻과 힘을 정성껏 다 바치지 못한 죄를 받게 된 것이라고 스스로 반성하고, 투옥되어 고문을 당하면서 나라가 남에게 먹히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왜구처럼 일에 밤새워 본 적이 몇 번 있는지 스스로 자책하고 부끄러운 눈물을 흘렀다는 구절. 보통의 사람이라면 감옥으로 끌려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생사의 기로에 서서 모진 고문을 당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이와 같은 자기반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김구 선생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대목인 것 같았다. 독립된 정부의 문지기를 자청했던 김구 선생. 자신을 높이기보다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조국을 위해 일하기 원했던 그의 나라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사랑이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가 피어오르게 하는 것 같다. 돌이켜 보면 나는 ‘애국’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느끼지 못했다. 어릴 적에 외국에서 살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 대한 소속감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점들보단 불편한 점, 싫은 점들이 더 눈에 들어오고, 과도한 입시 경쟁과 교육 제도 속에서 치열하게 살다 보니 아주 가끔씩 이민을 가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보았던 것 같다. 김구 선생이 지금 나의 모습을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니 나의 이런 불평들이 너무나 사소하고 부끄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김구 선생과 같은 수많은 선인들의 피와 땀이 있었고, 우리가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한글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목숨을 바쳐 얻어 낸 희생과 투쟁의 결과이다. 이렇게 지켜낸 나라인데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고 조금 힘들다고 불평하는 것은 그분들에 대한 모욕이자 죄인 것 같다. 앞으로는 우리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당당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될 수 있도록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살짝 해 보게 된다.

 

김구 선생은 투옥 당시 갖은 고문에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자신의 혀끝에 사람의 생사가 달려 있음을 깨닫고 항상 마음을 다잡았고, 고문 끝에 늘 정신을 잃은 채 끌려 나오면서도 “나의 생명은 빼앗을 수 있어도 내 정신은 빼앗지 못한다.”고 외치며 일제에 굴하지 않는 투지를 보여 주었다. 정신을 잃을 정도의 심한 고문을 당하고 나오는 상황에서도 보란 듯이 저렇게 외칠 수 있다니 보통의 의지와 기백이 아니라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고 변절자가 되어 나왔다고 한다. 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서 고문 장면이 나올 때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땠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어쩐지 나도 그 고통을 참지 못했을 것 같다. 그런 고초를 얼마나 당한 것일까. 선생의 삶에는 자신의 안위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나라를 위한, 동포를 위한 희생의 삶을 한평생 산 것이다. 글의 뒤편에서 그가 평생을 회고하면서 일생을 통해 가족과 함께한 시간은 중간 중간 고작 몇 년씩이라고 하였다. 아내도 먼저 떠나보내고, 임시정부 시절 중경에서 생활하면서는 큰아들인 인이마저도 폐병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가족의 죽음을 보면서 언제 이루게 될지 알 수도 없는 나라의 독립을 위한 지루한 싸움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을까. 흔들림이 전혀 없지는 않았겠지만 이는 자신보다 조국을, 민족을 더 사랑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선생에게 나라는 무엇을 해 주었는가. 갑자기 씁쓸함과 죄송스러움에 눈물이 날 듯하다. 선생은 우리나라의 가장 하등한 백정과 범부들이라도 나만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자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 이름을 ‘구’로, 호를 ‘백범’이라 고쳤다. 백범 김구의 의미를 이제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름에도 독립을 향한 그의 의지와 바람이 담겨 있었다.

 

김구 선생이 상당한 거구이고 불같은 성격이라는 것은 익히 들어본 적이 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총알받이가 되어 동학군의 선봉에 나설 만큼 어려서부터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로 한 일본인을 살해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남겨 길의 벽에 붙었다. 이 대목에서 그의 행동이 잘한 일인지 딱히 판단하기 어려우나 그때의 울분과 일본에 대한 분노의 마음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살인을 하고 도망은커녕 자기를 당당히 밝히는 그 배포와 용기만은 높이 살 만하겠다. 선생은 20대 꽃다운 나이부터 백발노인이 될 때까지 나라를 위해 죽을 용기를 가졌던 사람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는 혈기 왕성할 때 용기와 기백을 가졌다면, 나이가 들고 여러 경험을 해 나가면서 삶의 지혜까지도 겸비한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형수가 되어 독서를 하는 과정에서 “의리는 학자에게 배우고 일체의 문화와 제도는 세계 각국에서 채택하여 적용하면 나라에 복이며 이익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때부터도 그는 세상을 넓게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민족의 비운은 사대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면서 과거 중국의 한, 당, 송 등 시대에 관개사절로 중국을 오가던 선인들의 태도를 개탄하였다. 민생을 위해서라면 배울 것은 취해야 한다는 열린 생각을 하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김구 선생은 완전한 자주독립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갈구하였다. 이것 없이는 우리 민족의 생활을 보장할 수 없고 빛나는 문화를 세울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말미인 ‘나의 소원’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격하게 투쟁하고 일제 타도를 외치던 그분의 입에서 나온 원하는 나라의 모습이 ‘아름다운 나라’라니 다소 의아한 표현같이 느껴졌다. 선생이 바라는 우리나라는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였다. 문화는 우리 자신을 행복 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고. 그는 교육의 중요성, 문화의 힘을 강조하였는데, 이것은 당신 세대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까지의 삶의 모습까지도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그려 낸, 시대를 앞서 간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예전에는 힘과 부가 지배하는 세상이었다면, 지금은 김구 선생이 말한, 문화와 같이 보이지 않는 것의 힘이 점점 강해지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한류의 열풍으로 전 세계적으로 국기 선양을 하고 있는 k-pop 스타들의 모습을 본다면 김구 선생은 너무나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고 계실 것 같다. 요즘 대세 중 대세인 방탄 소년단을 비롯한 많은 한류 스타들이 애국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며, 그들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대한민국 국민들도 또 다른 의미의 애국자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책을 다 읽고 마음 한구석에 왠지 모를 무거움이 남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잠시 고민도 해 보았다. 일단 지금 학생으로서의 삶에 충실히 살아야 한다. 지금의 힘듦이 행복한 나의 미래와, 더 나아가 국가를 위한 일임을 과하게 주입시켜 본다. 훌륭한 개개인이 모이면 좋은 완전체인 국가가 될 것이므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공부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그리고 자주, 종종 잊고 사는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떠올리도록 해야겠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칭찬에 인색한 것 같다. 지금은 어른들도, 우리와 같은 학생들도 다 살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헬조선’이란 말들을 내뱉곤 하지만 결국은 누워서 침 뱉기가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얼마 전 아시안 게임 축구를 볼 때 골을 넣자 온 동네에서 함성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고 온몸에 전율이 흐르며 우리나라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던 경험이 있다. 아마 우리 국민이 가장 애국심이 투철해질 때가 바로 축구 같은 운동 경기를 볼 때가 아닌가 싶다. 다들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같은 민족’으로 저 가슴 속 깊은 곳에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마음을 축구 경기할 때만 떠올릴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우리나라를, 우리나라 사람을, 이웃을 바라보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백범일지』는 김구 선생이 두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긴 유서 같은 것이라고 했는데, 두 아들에게 남긴 유서가 아니라 대대손손 우리 민족 자손들에게 남긴 유서가 되었다. 이 책에는 김구 선생의 삶을 넘어 우리 민족의 역사가 쓰여 있다. 우리 역사 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기에 우리 민족에게 큰 희망과 자유를 준 백범 김구 선생은 단순한 독립운동가, 위인을 넘은 당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라를 위한 사랑과 희생, 일제에 굴복하지 않는 투지와 강인함 등을 통해 김구 선생은 나에게 큰 교훈과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내가 그 당시 살았으면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기엔 난 너무 약하고 당시는 내가 견디기엔 너무나 두려운 시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자유롭고 행복한 대한민국이 있게 해 준 김구 선생과 독립운동가들에게 더욱 더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살며 위인 김구 선생처럼 당당하고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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