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소개
| 제목 | 영원히 존재하는 삶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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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정우석(공군사관학교) | 개최일 | 2016-10-28 | 조회 | 707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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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존재하는 삶
8중대 3학년 정우석 생도
고등학교 재학 당시 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공부에 매우 지쳐있었고, 성적을 위한 공부와 어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에 대해 많은 회의를 품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자식, 학생들에게 좋은 성적으로 일류 대학에 입학하여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넓고 좋은 집과 비싼 차를 사며 풍족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어른들이 말하는 ‘콘크리트 직전도로를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과연 후회 없는 인생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왔고, 자신이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며 단순히 그것을 한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사는 인생이 더 후회 없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왔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도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매일 순간순간의 소박한 삶을 음미하며 사는 인생도 즐거울 것이고, 타인을 위해 사는 삶도 가치 있을 것이고, 자유, 평화, 독립과 같은 어느 하나의 가치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외길인생도 후회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나에게 백범일지는 새로운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가장 처음 든 생각은 김구 선생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소년이었다는 것이다. 엿장수가 파는 엿을 먹고 싶어 아버지의 멀쩡한 숟가락을 부러뜨려 엿을 바꾸어 먹은 일, 아버지의 돈을 훔쳐 떡을 먹으러 가다가 혼난 일,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칼을 들고 보복하여 한 일 등 그도 한 때 철없던 시절을 보냈었고, 가난한 집안에서 양반이 되지 못한 것을 억울해 하고 나라의 부정부패를 증오하였다. 그는 지금 사람들이 위대한 민족 지도자로서 인식하는 것과 달리 그 시대의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자신의 가치를 높여왔다. 어린 시절 그는 동네 학당에서 여러 스승들에게 배움을 받고, 스스로 독학하여 학문적 기초를 닦았다. 그리고 동학에 입도하여 접주로서 생활하며 젊은 나이에 한 집단의 리더로서 활동하였고, 또한 그 후로도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고능선 선생을 만나 계속해서 배움을 이어나갔다. 이러한 그의 학문에 대한 노력과 여러 사회경험이 후에 그의 임시정부의 주석으로서 실행력, 통찰력의 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그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 임시정부를 끝까지 수호할 수 있었고, 윤봉길 의사와 이봉창 의사의 의거를 지휘할 수 있었으며, 개개의 독립단체들을 통합할 수 있었다. 백범일지를 읽으며 김구 선생으로부터 느낀 가장 큰 교훈은 ‘고정된 이념에 얽매여 있지 않는 것’이다. 젊은 시절 그는 무조건 왜와 서양을 배척하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얽매여있었고, 그로 인해 그는 을미사변 이후 국모보수라는 이유로 아무 죄 없는 일본인을 살인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는 직접 타국을 여행하여 몸소 외국의 제도와 문물을 보고 들으며 자신이 절대적으로 믿고 있던 가치관을 버릴 수 있었고, 그들의 선진적인 제도와 기술들을 인정하며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었다. 나는 평소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라는 말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언제든 나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바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를 갖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나 자신의 아집과 편견에서 벗어나고자 하나,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비판을 하면 나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고 방어 자세를 취하여 상처입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닫아버린다. 또한 때때로는 자존심이 있어서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하기도 한다. 내가 스스로 선택하여 살아온 길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김구 선생은 타국의 문물과 제도를 경험한 후 과감히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냉정하게 옳고 그름을 가렸다. 단순히 왜와 서양을 오랑캐라 칭하고 배척하는 것보다는 무엇이 진정 오랑캐인지, 무엇인가를 혹은 누군가를 판단할 때에는 겉모습이 아닌 행실로, 편견 없이 그것 자체만으로 판단하려 하였다. 이는 그가 탈옥 후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는 도중 자연스레 여러 시각을 가지게 되었고, 견문을 넓힐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를 들어감에 따라 점점 자신만의 시각에 갇혀 버리는 반면, 김구 선생은 오히려 그 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것도 김구 선생의 계속 배우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일 것임에 틀림없다. 결국 그의 고정된 관념에 얽매여 있지 않은 사고는 그의 계속 배우고자 하는 노력과 열린 마음의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백범일지를 다 읽고 난 후 나는 백범 김구 선생의 헌신적인 모습에 지금의 나 자신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식주에 불편함이 없는 풍족한 환경에 놓여있음에도 조금이라도 더 나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하였다. 또한 사소한 일 하나에도 불평하려 했다. 수없이 많은 것을 바라왔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해가 되는 것들은 대부분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단 하나만을 원하셨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죽을 때까지 제 몸을 바쳐 희생한 대가를 바라지 않으셨다. 그의 단 한 가지 소원은 바로 ‘독립’이었다. 그는 우리나라가 독립할 수만 있다면 자신은 한낱 문지기가 되어도 상관없다고 하였고, 그것이 남의 나라의 밑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것보다 더 영광스럽고 희망차다고 하였다. 그 당시 대부분의 공직자들과 과거 신하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라를 팔고, 친일파가 되었을 만큼 혼탁한 세상에서 그는 오직 독립 하나만을 위해 살아오셨거늘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그의 은혜를 입어 이 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들은 자신이 살아온 길을 반성해보아야 할 것이다. 어느 한 순간만이라도 조국이나 민족을 위한 것뿐만이 아닌, 자신 스스로 정한 목표나 가치, 일에 대해 오직 순수하게 그것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여 어떠한 보상, 보답도 바라지 않고 온몸을 바쳐 희생한 일이 있는가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아니할 것이고, 나 역시 오직 그 자체만을 위해 살아온 기억이 거의 없다. 공부를 할 때에도 좋은 성적을 바라고 공부를 했고, 운동을 하면서도, 누군가를 위해 일을 대신해 주면서도 대가를 바라왔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물질적인 보상을 바란 것이다. 그러나 김구 선생께서는 누더기 같이 헤진 옷을 입고 다니며, 배추상이 버린 배추를 가져다가 우거지무침을 해먹을 정도로 물질적으로 부족한 생활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5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오직 민족만을 위해 살아오셨다. 또한 조국이 갑작스레 독립 된 후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나라의 현실보다 권력을 차지하는 것에만 혈안이 된 다른 독립 인사들에 반해, 그는 끝까지 민족의 통일된 독립을 위해 살다가 돌아가셨다. 그것은 마치 우리나라를 처자식처럼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사랑하는 처자식을 가진 부모는 아낌없이 주기 위해 부지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질기고 맛없는 부위는 자신이 먹고, 부드럽고 맛있는 부위는 처자식에게 권하는 것과 같은 부모의 사랑을 죽기 직전까지 실천하신 것이다. 김구 선생께서는 우리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되기보다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셨다. 이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침략에 아파하였으니 우리나라도 남을 아프게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나라는 높은 문화를 가지고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동시에 다른 나라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는 나라이며, 다른 나라의 문화를 모방하는 것이 아닌 우리 민족 고유의 인의를 근원으로 한 문화를 가진 나라로 발전하길 원하셨다. 또한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 민족이 오래 전부터 인의를 좋아하는 민족으로서 문화적으로 더 발전해나가기를 원하시며 생을 마감하셨다. 그의 우리 민족에 대한 헌신적인 모습은 그의 이러한 가치관에서 나온 것이며, 그가 자서전을 남긴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후손들에게 조국에 대한 자신의 헌신과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닌 꽃을 심는 자유를 가진 나라로 발전해나가기를 원하신 것이다. 따라서 나 자신부터 시작하여 조상들의 피로 물든 이 조국을 올바른 문화를 가진,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서로 이기적 개인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되고,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으로부터 덕을 받기보다 남에게 덕을 주는 것을 낙으로 삼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개개인을 시작으로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인의의 문화를 가진 아름다운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삶을 통해 나는 무엇을 위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었다. 옛말에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백범 김구 선생과 같이 오직 하나의 가치만을 위해 영원이 존재하는 삶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삶에 견주어서 결코 후회스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죽음에 직면하여 당당할 수 있을 것이며 자손대대로 명예로움과 자부심을 이어나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이다. 또한 그가 택한 ‘조국’이라는 가치도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에 그의 삶은 더욱 더 빛나는 삶이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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