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소개
| 제목 |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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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강동균(3사관학교) | 개최일 | 2016-09-30 | 조회 | 28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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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2훈육대 53218 사관생도 강동균 매슬로의 인간 욕구 5단계에 따르면 인간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생존 욕구에서부터 시작해 자아실현 욕구에 이르기까지 욕구가 끝이 없는데 이러한 욕구의 단계에서도 순차적으로 단계가 있다. 이런 본질적인 질문에 매슬로는 인간의 다섯 가지 욕구를 우선순위로 나누어 단계에 따라 구분하였다. 사람은 가장 기초적인 욕구인 생리적 욕구를 맨 먼저 채우려 하며, 이 욕구가 어느 정도 만족하면 안전에 대한 욕구를 추구하며 항상 자신의 신체와 감정, 경제적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욕구이다. 그 다음은 애정의 욕구이다. 그리고 끝으로 존경의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로 충족되며 욕구는 한 평생 인간이 추구하는 욕구는 끝마치게 된다. 그러나 한 평생 생리적·안전적 욕구를 뒷전으로 밀쳐두고 가장 높고 숭고한 자아실현의 욕구 즉, 한 평생 민족을 위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는 사람이 과연 지상에 몇이나 있을까? 아니다 자신의 내놓을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애정의 대상인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가장 높은 이상의 실현 욕구를 위해 투자한 인물이 있을까? 애정의 욕구까지 버리면서 말이다. 백범일지에 적힌 구절이다. ‘민족이 무엇인지 국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터럭만큼 걱정도 없는 밥벌레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양반이 삶으로 국가가 존립할 수 있었다면 내가 양반의 학대를 좀 더 받아도 나라만 살아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백범선생이 인천 감옥에서 투옥 후 간신히 탈옥하여 삼남지방을 유람하며 국가의 안위보다 자신의 오늘만의 안위를 생각하는 농부들을 보며 떠올리며 했던 생각이다. 소름이 끼치는 구절이다. 백범은 소위 말해 상놈의 자식이다. 사실 백범의 조상은 김자점의 방계 후손으로 김자점이 반역죄를 저질로 온 집안이 화를 입을 때 경기도 고양군으로 피신했다가 그곳 역시 서울과 가까운 지방이라 멀리 해주읍의 백운방 텃골 팔봉산 밑으로 옮겨 숨어 살았다고 한다. 고로 소위 양반의 자손이지만 역적의 방계 후손이라 일반 양인의 신분으로 속여 숨어 살았다. 그의 기구한 생은 태어나기 전 핏줄에서부터 느껴진다. 따라서 백범은 유년 시절 ‘상놈’이란 꼬리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다녔을 것이다. 어쩌면 출신 성분이 양반이 아니라는 점이 삶의 목표 즉, 독립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데 긍정적 역할을 하게 된 요인이 되었다고 본다. 그는 십대 때부터 육체적 안정을 도모하기보다 아니, 오히려 육체적 안정의 욕구와 생리적 욕구를 누군가로부터 보장 받았어야 했으나, 스스로를 분쇄하며 제일 마지막의 숭고한 가치의 이상의 추구하기 위해 일제로부터 잔악한 고문을 받는다. 그는 일제의 고문과 인간의 생리적 욕구의 가장 밑바닥인 배고픔과의 사투에서 땅바닥에 떨어진 흙더미도 먹을 수 있는 상태의 미친개까지 되며 고문을 버텨낸다. 일제로부터 극악스럽다는 말을 들을 정도니 선생의 대항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놀라운 것은 백범선생만이 기본적 욕구를 버리고 이상적 가치인 독립을 추구했다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백범선생하면 떠오르는 자가 바로 이봉창이다. 가장 관심 있게 읽었던 부분으로 백범선생과 같이 똑같은 이상을 추구한 그의 모습에 무언가 동질감이 느껴졌다. 재무부장 및 민단장을 겸임하고 있을 때 그는 한창 임시정부의 문지기인 경무국장에서 벗어나 한창 일에 대한 재미를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한 청년이 찾아왔다고 하였다. 그는 “저는 일본에서 온 노동자입니다. 상해에 가정부가 있다는 말을 듣고 독립운동을 하고 싶어 며칠 전에 상해에 왔습니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전차검표원에게 임시정부가 있는 곳을 물어보니 보경리 4호로 찾아가 보라고 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이름은 이봉창입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봉창 의사와 백범선생의 운명적 첫 만남이다. 선생이 이봉창 의사에게 이렇게 까지 찾아온 포부를 물으니 이봉창 의사는 “제 나이 서른입니다. 앞으로 30년을 더 산다 한들 늙은 생활이 과거 반생동안 방랑생활에서 맛본 것보다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육신의 쾌락이라면 지난 30년 동안 육신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으니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도모하고 싶습니다. 상해에 온 목적도 우리 독립사업에 헌신하고 싶어서 입니다” 원래 일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봉창 의사는 서울 출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철저히 일본인으로 살고자 했으며 조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철저하게 피했다고 수기에 적을 정도였다. 이러한 그가 어리석은 생각을 하였다며 뉘우치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것이다. 만약 일본인 행세를 하며 살았다면 정말 육체적 쾌락은 계속해서 유지해 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살신성인의 자세로 그의 한 몸을 내던졌다. 저 춘추시대 공자가 한 말들 중에 “진정 천의가 부귀에 있다면 백이와 숙제의 비참한 아사는 무엇이고 도척의 부귀영화는 무엇인가. 진정으로 천의가 부귀에 있다면 마부로 태어나도 여한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천의는 부귀가 아니라 후대에 의로운 이름으로 남는 것 후세에 칭송받는 것이 진정한 천의이다. 나는 도를 행하고 덕을 쌓겠다.”라고 하였다. 그는 이미 입신의 나이에 공자의 말을 깨달았을까? 나는 이봉창 의사가 최소한 부귀는 잊었으며, 그 칭송을 얻기 보다는 스스로 무언가 핍박받는 민족을 위해 무엇 하나라도 하고자 생각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일지라도. 실제로 그의 의거로 전 세계가 놀라 주목하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실패로 끝났으나 그의 의거는, 그는 우리 가슴속에서 영원히 살아있다. 이봉창 의사뿐만 아니라 윤봉길 의사도 정말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아들에게 남긴 편지는 정말 그의 웅대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백범선생은 ‘독립’이라는 이상 추구 후 상황까지 생각한다. 선생은 우리가 독립 후 어지러워 질 상황을 미리 예견했던 것인가? 백범일지에 적힌 글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의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오직 한 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이자 이상이다. 그에게는 독립이라는 결과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으며 앞으로 독립된 조국이 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했다. 비록 태평양 전쟁 발발이후 미군의 원자탄 투하 이후 일제의 무조건 항복으로 9월 국내 진공작전이 수포로 돌아가 조국이 우리 민족의 손으로 독립을 일구어내지 못했고 곧 조국이 이데올로기이념으로 둘로 갈라져 선생이 생각한 독립조국의 방향이 이상하게 흘러나갔지만 그가 독립조국에 제시한 비전은 옳았다. 사실 선생은 15일 일본 왕이 무조건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조건 기뻐하기 보다는 국내 진공작전에 쏟았던 정성이 아깝고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 걱정하였다. 그는 독립 후 정국에 있어서 민족의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을 미래를 이미 내다보고 걱정했던 것이다. 만약의 역사! 즉, 가정의 역사는 존재할 수 없지만 만약 진공작전이 시작되고 국내 진격에 성공해 조국의 해방을 우리 손으로 일구었다면 지금 조국의 현대사는 평이하게 달라졌을 것이다. 다시 백범이 생각한 문화국가로 넘어가본다. 그렇다면 ‘문화’가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문화라는 보편적 의미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서만 통용되던 말일까 아니면 과거에서부터 우리 인간들의 삶 속에서 함께했던 용어인가? 그리고 문화란 학식이나 인품이 훌륭하거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행을 선도하는 유명 연예인들이 조명을 가진 공연장에서 자신들이 가진 예술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해 대다수의 일반인들이 그들을 따라하는 시대적 유행에만 해당하는 것인가? 우리는 문화라는 말을 다소 많이 사용하면서 정작 문화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을 때 그에 대한 확신에 차서 대답을 하는 이는 찾기 어렵다. 어떤 문제를 다룰 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다. 하지만 간단하게 생각할 때 문제의 해결책이 보인다. 문화를 단순화하여 정리하면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의 생활양식을 의미한다. 단순히 생활하거나 생존하는 것 자체는 문화가 될 수 없다. 문화는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일정한 양식과 룰이 있는 경우를 뜻한다. 이런 점에서 문화는 특정 계층이나 계급의 단순한 소유물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추구하고 향유해야 할 가치이다. 문화는 인간생활 속의 본질로서 우리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우리가 움직이며 생활 하는 속에서 우리는 손쉽게 문화를 발견하게 된다. 문화는 우리와 관계없는 피안의 영역이 아니라 바로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영역이다. 즉 문화란 고상하고 우아하고 품격 있는 인격을 갖춘 교양인들이 삶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생활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추구하였던 아름다운 국가는 ‘문화국가’에서 발현된다. 앞에서 뜻 하는 문화국가란 문화를 기초로 전제한 국가로 문화가 국가 전체에 그 향기가 만발하는 경우를 뜻한다. 그는 “여러 가지 나무가 어울려서 위대한 산림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백 가지 꽃이 섞여 피어서 봄 뜰의 풍성한 경치를 이루는 것이다.”고 해서 문화국가는 한 가지의 꽃만이 열려 있지 않고 형형색색의 다양한 꽃들이 만개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문화국가에서 나타나는 ‘자유’라는 의미의 중요성은 그 어느 것도 대신할 수가 없다. 자유가 없는 곳에서의 문화는 획일적이고 경직되어 있다. 독재체제하에서도 문화는 문화로서의 본질적 성격이 사라진 문화이다. 즉, 문화적 다양성이 죽어있는 문화이다. 선생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했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니라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 그렇기에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양식의 건립과 국민교육의 완비, 화합된 힘으로 이기심을 배척하고 국토에 춘풍이 도래하기를 빌었다. 나 역시 백범선생처럼 조국의 앞날을 걱정해본다. 조국은 광복 후 남북으로 갈라져 각자의 정부를 이루어 놓고 70년 넘게 따로 살았다. 따로만 살았던 것도 아니다.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시작된 싸움으로 인해서 둘은 사이가 좋지 않으며 또한 영원한 자유의 조국은 올바른 체제 선택으로 갈라진 한 쪽보다 월등하게 앞서나가며 세계시장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제 3자가 통일을 원치 않든 원하든 결국 통일 조국은 올 것이다. 남한과 북한이다. 북한은 폐쇄적 체제를 유지해가며 곧 무너져 갈 고위층들의 밥상을 지키고자 마약 및 위조지폐생산, 핵 개발 등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것은 자멸을 의미한다. 외부세계와 차단된 독재체제 속에서 그들은 하나의 인물만을 떠받들며 획일화된 문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 선생이 생각한 백가지의 꽃이 만발하며 향기를 내뿜는 건강한 문화조국과는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통일조국 이후 문제점이 보인다. 섞여질 수 없는 상황이! 그러나 독립된 조국을 돌려주신 분들께 우리는 마땅히 보여주어야 한다. 이미 두세기 전, 선생은 우리들에게 앞으로 조국이 나아가야할 비전을 제시했고 우리는 그 정답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행동화 할 때이다. 우리는 독립조국을 위해 목숨 바치신 백범선생과 그 외 영령들에게 ‘문화조국’을 이룩하여 통일 조국의 이상을 앞당겨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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