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소개
| 제목 | 백범일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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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김동현(육군 55사단) | 개최일 | 2016-07-05 | 조회 | 2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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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범 일지
본부근무대 상병 김동현
관심의 씨앗은 타인에 의해 자라날 수 있을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말하는 김춘수 시의 구절처럼 관심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마치 입대하기 전에는 군에 대한 지식은 물론 북한정세에도 무관심하다 이제는 군대 관련 뉴스만 나와도 귀를 쫑긋 세우는 것처럼 관심은 우리에게 직접적인 변화를 준다. 우리는 살아가며 각자의 관심영역을 구축해왔으며 그 영역을 단단히 하되 다른 곳으로 눈길 주는 것을 꺼려해 왔다. 눈길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은 무수히 많겠지만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바로 경험일거라 생각한다. 그 중 책이라는 간접경험을 통해 우리는 황무지와 같던 관심의 영역을 비옥한 땅으로 손쉽게 바꿀 수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봉사활동을 다니던 기관이 효창공원 주변에 있었다. 당시 나는 그곳을 아무 생각 없이 매번 지나다녔고 심지어 백범기념관에도 무관심 했다. 백범일지를 읽은 지금에서야 무관심에 대한 부끄러움이 생겨났다. 당시 내가 김구선생님에 대해 알고 있던 내용은 단지 국사책에서 흘낏흘낏 본 내용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간접 경험한 지금, 주어진 사실을 별표 치며 외우기보다는 “왜?, 어떻게?”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1896년 일본인 중위 스치다’ 사살이 아닌 국모의 원한을 갚기 위해 왜놈을 사살한 후 도망치지 않고 자신의 이름, 주소를 공표하고 일본인들이 체포하러 올 때 까지 기다린 것은 그가 스스로 한 일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그의 삶을 외우기보다는 이해하고 싶고 이해에서 끝나기 보단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로 배우고 싶은 점은 스스로를 낮추는 마음이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에도, 임시정부의 주석이 되었을 때도 그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에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라는 그의 신념은 그가 모든 사람을 진정성 있게 대하는 태도의 원천 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김구 선생이 자신의 업적과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때는 오직 왜놈들 앞에서였다. 왜놈 간수 들에게는 항상 그들의 잘못을 꾸짖으며 호통을 쳤다. 또한 이봉창, 윤봉길의사의 서거 후 당당하게 모든 일을 계획한자는 김구 자신임을 밝혔다. 그것은 자신을 뽐내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김구 선생은 언제나 스스로를 낮췄으며 자신의 업적을 통해 무언가를 얻고자 하지 않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장 참기 힘든 일 중 하나는 입 간지러운 것을 참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을 알리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계급사회라는 특수한 성격을 띤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스스로를 낮추는 태도는 어디에서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낮춘다는 것은 우선 자신보다 타인을 생각하며 배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어색한 이등병 때부터 중간역할을 해야 하는 일병, 적응되어가는 상, 병장까지의 과정 속에 그 위치에 따른 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 잘 배우려 노력하는 배려, 잘 알려주기 위한 배려, 좋은 여건을 만들어 주기 위한 배려. 이 모든 배려의 시작은 ‘나는 잘났는데’라는 생각이 아니라 스스로를 낮추는 데서 시작된다 생각한다. 지금까지 자신을 과시하는 사람을 보면 유치하다 생각했지만 자랑하고픈 마음을 억누르기란 쉽지 않았다. 배려 받을 때는 기분이 좋지만 막상 행동하려니 어려웠다. 쉬운 것처럼 보여 그동안 등한시해왔던 것들을 한 번, 두 번 습관이 되도록 실천할 것이다. 두 번째로 배우고 싶은 점은 고정된 자아관념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왜와 서양은 배척해야 한다.” 김구 선생이 젊은 시절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다. 현대에 들어서서야 각종 미디어가 발전하며 가치관형성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늘어났지만 과거에는 가정 혹은 스승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김구 선생 역시 어릴 적 가치관은 스승인 고능선 선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 선생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자는 의견을 가진 자와 왕래를 끊을 정도로 보수적이었다. 김구 선생 역시 그 가치관을 절대적으로 생각해왔지만 직접 타국을 보고, 듣고, 느끼며 스스로 자아관념을 형성해 나갔다. “그 나라가 어느 나라건 그 나라 사람들이 나라를 꾸려가는 큰 줄거리를 보아서 행실이 오랑캐 같으면 오랑캐로 대우하고 사람의 행실이면 사람으로 대우하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김구 선생은 더 이상 경험하기 전에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경험한 후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과거와는 달리 현대 사회는 미디어의 홍수다. 어릴 적부터 가정, 학교이외에도 TV, 인터넷, 책 등을 통해 가치관을 형성해 나간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여건 또한 과거와는 비교조차 안 되게 좋아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편협한 세상을 사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공부를 하건 여행을 다니건 우리는 정해놓은 목표 -이를테면 시험을 위해 혹은 스펙을 위해- 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많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고 그 때문에 경험하기도 전에 판단을 내리곤 한다. 군대라는 작은 사회에서부터 고정된 자아관념을 벗어나는 연습을 하고 싶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과 계속 호흡하며 살아가야하는 상황 속에서 선입견은 극심한 황사처럼 우리의 호흡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개성이 모인 곳인 만큼 보고, 듣고, 느낀 후 판단하는 연습을 그리고 내가 가진 가치관이 남을 통해 더 발전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다른 이를 통해 내가 발전할 수 있도록 연습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배우고 싶은 점은 내가 가진 것을 공유하는 마음이다. 김구선생은 한평생 자주독립만을 위해 달려오셨고 그 방법의 일환으로 강조하신 것이 바로 ‘교육’이었다. 서대문 교도소에 수감된 시절, 그 안에서도 수감자들에게 글을 가르쳤으며 농촌 감독관으로 있을 때에는 학력아동을 교육시키지 않을 경우, 좋은 토지를 회수하는 등 무엇보다 교육을 강조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교육은 다름 아닌 ‘문화 교육’이었다. 남에게서 뺏어서 채우는 만족이 아닌 스스로 오는 만족을, 다른 것을 모방한 문화가 아닌 근원이 되는 문화를,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닌 꽃을 심는 자유를 국민들에게, 후손들에게 남겨주고 싶어 했다. 아무리 정보가 폐품처럼 쌓여가는 시대라 하지만 내 것을 공유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렇기에 더욱 그런 마음을 배우고 싶다. 왜냐하면 나중에는 다른 이들에게 지혜를 전달 할 수 있는 선생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하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도 연습하지 않으면 어렵기에 작지만 자주 실천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김구 선생이 문화교육을 통해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원했다면 나는 지식보다는 지혜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획일화되어있는 전달-암기-시험의 세뇌 교육이 아닌 관심을 주고 “왜?, 어떻게?”라는 질문을 통해 내가 가진 것을 공유 하고 싶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 가보자. “관심의 씨앗은 타인에 의해 자라날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씨앗을 주고 심지어 심어주기 까지 하더라고 스스로 관리하지 않으면 결국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직,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계속해서 관심영역을 넓혀가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관심영역 또한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김구 선생님께서 한평생 씨앗을 심을 수 있는 토지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셨다면 이제 우리는 그 토지에 다양한 꽃들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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