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소개
| 제목 | 그의 소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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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박시형(마리아회고) | 개최일 | 2016-10-31 | 조회 | 4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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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원
목포마리아회고등학교 2학년 8반 박시형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오.’ 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라고 할 것이오,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말은 대한독립을 위해 노력하신 김구 선생께서 집필하신 백범일지 중 나의 소원의 첫 대목이다. 선생은 한 평생 자신의 몸을 바쳐 독립을 위해 일본제국주의와 맞서 싸웠으며, 독립 후에도 남과 북으로 갈라진 한반도를 하나로 합치기 위해 남과 북을 돌아다니면서 연설을 하는 등 노력하셨지만, 1949년 육군소위 안두희의 흉탄을 맞고 운명하셨다. 선생은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 선생의 소원은 현재 2016년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졌을까? 김구 선생은 1876년 양력 8월 안동에서 태어나셨다. 본명은 창암으로 후에 이름을 두 번 바꾸신다. 어렸을 적에 천연두를 앓아 얼굴에 흉터가 생겼다고 전해진다. 아버지의 숟가락을 부러뜨려 엿 사먹는 등 우리 어렸을 적과 비슷하게 개구쟁이 행동으로 부모님의 꾸중을 여러 번 들었다. 12세 때 집안 어른으로부터 갓을 쓰지 못하게 된 사연을 듣고 양반이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였지만 매관매직이 성행하였던 당시, 낙방하고 상서의 구절인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를 보고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후에 동학에 입도하여 이름을 창수로 개명하였고, 수천 명의 교원을 거느리는 접주가 되었다. 또한 접주치고 나이가 매우 어려 ‘아기접주’라는 별명을 얻었다. 1896년 일본인 육군중위 스치다를 명성황후의 보복으로 살해하였고, 옥에 투옥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고종의 전보를 통해 사형이 미루어졌다. 하지만 그는 탈옥해 이름을 ‘구’로 개명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구국운동을 하였다.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조선이 식민지가 되었고 선생도 다시 감옥에 가게 되었다. 감옥에서 이름을 九로, 호를 연하(年下)에서 백범(白凡)으로 고쳤다. 감옥을 가출옥하여 3·1 운동으로 안악에서도 만세운동을 벌이던 그는 상해로 망명하였고, 임시정부의 경무국장이 되었다. 임시정부 내무총장까지 올라간 그는 임시정부의 어려움 속에서도 독립의 의지를 잃지 않고 한인애국단을 창단하였다. 미주 등지의 교포들이 보내준 돈으로 의열투쟁을 계획하였다. 비록 이봉창 의사의 일왕 저격이 실패로 돌아갔으나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성공하여 장개석의 지원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나머지 한인애국단원들이 체포되고, 김구 선생 또한 정부를 옮겨 다녀야했다. 일본제국주의 패색이 짙어진 1940년대 임시정부는 일본과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미국의 정보기관인 ‘OSS’와 한국광복군의 합동훈련을 하면서 국내진압작전까지 계획하였지만 일본이 항복하여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환국한 그는 좌우합작을 통해 남과 북을 하나로 엮어 조국의 진정한 통일을 이루기 위해 반탁운동을 전개하고 미·소공동위원회에 불참할 것을 성명하였다. UN에 의견서를 보내고, 통일정부의 수립이 가능하다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1949년 6월 경교장에서 육군소위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운명하셨다. 선생의 나이 74세였다.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하신지 거의 70년이 되었음에도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 피 튀기는 집안싸움이 일어났으며 그로인해 60년 동안 사랑하는 가족, 애인, 친구를 보지 못하고 운명하거나 살아서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해 피눈물을 흘리는 이산가족이 생겼고 남과 북 고위층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서로 으르렁거리고 국민들은 전쟁의 위협에 벌벌 떨고 있을 뿐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우리나라가 완전히 통일되고 자유로우며 긍지 있는 문화를 가진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 전 세계 평화를 형성·발전시켜 나가길 소원하셨다. 이 과제는 21세기에도 해결되지 못하였다. 아직도 이 땅에서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잔재가 남아있어 이익을 취하고 있으며 독립을 위해 앞장선 이들의 후손들은 대부분 가난한 삶에 찌들어 살아가고 있다. 나라 외·내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고 국민들은 정부를 불신한다. 성, 나이, 학력 등등 수많은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이런 나라는 백범 김구 선생이 바란 나라가 아니다. 선생은 사랑과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에 도움이 되는 나라를 원하셨다. 또한 여러 가지의 나무가 어울려 산이 아름다운 것이고, 수 만개의 꽃들이 섞여 황홀한 봄의 경치를 이루는 것처럼 종교, 사상 등이 차별이 없고 자유로워 이것들이 발달하여 인류의 가장 크고 가장 높은 문화를 달성한 아름다운 나라를 원하셨다. 백범 김구 선생의 사상과 정신을 배워 계승·실천하여 우리의 미래를 개척하고, 자유롭고 자주독립하며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는 통일한국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왕검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라는 뜻을 가진 ‘홍익인간’을 제창하였다. 백범 김구 선생은 단군왕검의 이상을 추구하였을 것이다. 나라 내·외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고 나라의 빚은 늘어나고 청년 실업률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성별, 세대 간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어 요즈음 인터넷이나 SNS상에서 대한민국을 일컬어 ‘헬(hell : 지옥)조선’이라 부르는 추세이다. 우리는 이러한 추세에 동조하거나 안주하는 태도를 보이는 대신 이 나라를 발전시켜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나라를 전해주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재주와 정신이 충분하였고 우리 국토는 위치상 태평양을 바라보는 동아시아의 반도로 세계로 뻗어나가기에 좋다. 남과 북의 동포간의 증오와 투쟁을 버리고 화합하여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여 자유의 나라를 강조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우리는 이기적 개인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자유를 소중히 하되 짐승들과 같이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쓰는 자유가 아닌 가족, 이웃 나아가서는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것이 자유이다.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도움만을 받으려는 사람이 되려는 대신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이 한 마음을 모아 이러한 생각을 가지면 우리 손으로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소원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들이 그의 정신을 계승하여 실천한다면 그의 소원에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나라, 민족,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 위에서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의 높은 문화를 가진 통일조국을 건설하고 모든 세계인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진정한 세계평화를 위한 정신적 원동력을 형성하는데 한 몫을 수행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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