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소개
| 제목 | 백범일지를 읽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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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이민영(명지고) | 개최일 | 2016-10-17 | 조회 | 28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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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를 읽고 11220 이민영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다.” 초등학교에 진학하기 전부터 역사 인물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고, 이후 학교 교육을 통해 체계적인 역사를 배워오면서 역사를 전공하여 미래 역사에 현명한 대안을 제시하는 역사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지닌 나에겐 크로체의 이 말은 역사를 정의하는 기준 중에 하나로 작용해왔다. 어쩌면 인류의 모든 역사는 그 전개 과정과 주체의 목적과는 무관하게 승자의 시각으로부터 규정되고 평가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 세력은 여전히 자신들이 누리던 기득권을 그들의 2세, 3세에게 성공적인 대물림을 이루었고, 그 대물림 받은 세력들은 사회의식과 역사의 관점을 왜곡하고 그들의 조상들이 저지른 역사의 만행을 미화하고 정당화하기에 급급하다. 이는 제대로 된 역사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평소에 나는 우리 역사의 중요한 길목에서 아쉬움을 키워내곤 한다. 혹시라도 삼국통일의 대업을 고구려가 이루어 내었더라면, 아니 정조 대왕께서 10년만이라도 더 버티어 다산 선생과 같은 분이 정승에 오르고 개혁정치가 완성되어 그의 아들 순조에게 제대로 계승되었더라면. 그리하여 세도정치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근대에 능동적인 역사의 흐름이 전개되었더라면. 그도 아니었으니깐 최소한 갑오농민군들이 우금치 고개를 돌파하여 한양성에 당당이 입성하였더라면…. 역사에서 가정은 부질없는 아픔만을 남긴다. 그러나, 정말 ‘그러나’ 말이다. 백범 김구 선생님이 해방정국의 주도권을 잡으시고 그 지도 아래 우리 온 민족이 단결할 수 있었더라면, 우리는 분단의 고통과 그 분단이라는 결과 속에서 뒤틀리고 굴절된 현대사를 경험하지 않아도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앞에서는 ‘통한’이라는 단어는 가슴에 선명하게 각인되는 전율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역사에서 가정을 자꾸만 생각하게 하는 것은 아마도 역사의 결과로서의 현재가 아픔으로 다가오기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되돌릴 수도 없는 것이다. 무작정 가정만을 되씹으며 아쉬움만 토해 내는 것은 미래에 대한 올바른 길을 모색하는 태도가 아닐 것이다. 아쉽지만 올바른 역사를 지키기 위해 분투한 위인들을 민족의 스승으로 삼아 그분들이 건설하려던 세상을 가슴에 새기고 이루지 못한 꿈들을 후세의 우리가 계승하여 세계를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역사는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와 결코 무관할 수 없으며, 현재를 지배하는 정신으로 오롯이 작용할 때 닥쳐올 미래를 바르게 꾸려나갈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현재도 과거가 되고 미래는 현재가 된다. 백범일지를 대하는 나의 마음은 바로 이것이었다. 민족의 스승을 만나 미래를 설계하는 지침을 배우기 위함이었다. 작년 서울시청에는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김구 선생님의 현수막이 걸렸다. 우리 국민이 생각하는 10만원 화폐의 주인공으로 적합한 사람 1위와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백범 김구선생님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그를 존경했다. 왜 존경하는지 구체적인 이유는 굳이 긴 설명이 필요치 않았다. 김구 선생하면 떠오르는 것이 역사 수업 시간에 산들바람이 스쳐지나가듯 짧게 들었던 한인애국단과 임시정부의 이야기, 그리고 워낙 유명한 나의 소원이란 글이 그를 존경해야하는 이유들을 압축했다. 그러나 이제 고등학생이 되면서 역사를 더욱 정밀하게 배우고 살펴야 하는 입장이 되었고, 그의 사상과 민족의 스승으로서 인간 됨됨이까지 더더욱 깊이 있게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400쪽이 훌쩍 넘는 결코 적지 않은 양을 읽는 동안 시간은 매우 빨리 지나갔다.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역사를 좋아하고 앞으로 장래희망으로 역사학자가 되고 싶은 내가 지금까지 김구 선생님의 업적과 성품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에 대해 많은 반성이 밀려왔다. 책에서 만난 김구 선생님은 속담을 인용해 표현하자면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제격으로 어울리는 분이었다. 어린 나이부터 시작된 학문에 대한 열의와 자신의 내적 수양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제일 인상 깊게 다가왔다. 젊은 시절 그의 여러 가지 모습에서 우리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되신 데에는 그만큼의 충분한 이유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내용으로 김구 선생님께서는 어린 나이지만 동학 농민 봉기의 선두에서 지휘하시며 참여하셨고, 김이언이라는 사람을 만나 의병운동에도 참여하시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고집 때문에 실패한 일도 있었다. 선생님이 활동하셨던 부분 중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선생님은 의병운동에 참여하면서 애국계몽운동, 특히 교육 부문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셨다는 것이다. 애국계몽운동과 의병운동을 아울러 참여하였던 위인은 우리 역사에서 그리 많지 않을 만큼 당시의 현실을 바라보던 두 운동의 관점은 상당히 상반되었고, 심지어 서로를 비판하기도 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서 ‘조화와 통일’이라는 가치를 온몸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시던 모습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아마도 청년기의 다양한 경험과 풍부한 활동이 조화와 통일의 정신으로 작용하여 선생님의 독립에 대한 굳센 의지가 더욱 더 견고해진 것이리라. 선생님이 명성황후 시해와 관련된 일본인에게 복수를 하고 인천 감옥에서 수감 생활을 하시던 때의 이야기는 통쾌하면서도 백범 선생님의 됨됨이에 다시 한 번 감탄을 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젊은 나이에도 나이 많은 우리나라의 관료들에게 호통을 치고 당당하게 자신의 의지를 펼치는 모습은 나라를 위한 애국심도 빛나지만 선생의 세심한 마음씨도 빛을 발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안경에 두루마기를 입으신 모습이 생각나면서 호쾌한 이미지는 별로 없었는데 왜인에게 복수한 후의 당당함, 인천 감옥에서의 카리스마 있는 일화들을 통해 선생님의 당당한 모습도 그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후에 이 모습은 안명근 사건(일명 신민회 105인 사건)으로 인해 서대문 감옥에서 온갖 고문과 고된 심문을 당할 때에도 끝까지 자신의 철칙을 다지며 동료를 배신하시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으시는 모습과 연결되어 더 크게 다가왔다. 이런 선생님의 성향이 훗날 사상 대립으로 분열된 임시정부를 지키고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여 대한독립에 이바지하신 업적을 뒷받침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우리가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선생님에게 존경심을 갖는 부분은 어려서부터 김구 선생님은 참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의지로 일관되게 살아왔다는 점이다. 모든 순간이 거의 위기의 연속이었기에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나 일제의 폭압에 좌절도 많이 느끼셨을 텐데 이러한 위기들을 돌파하시던 그 불굴의 의지는 백범일지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고, 그 바위 같은 결의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으셨다. 아마도 이런 흔들림 없는 원칙은 조국 사랑의 정신과 해방 조국에 대한 의지에서 출연한 것이 아닐까? 김구 선생님의 길은 결코 고독하지 않았다. 참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다. 나는 특히 가족의 희생에 감탄했다. 그의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아내 최준례 여사 또한 남편의 투옥생활과 독립운동으로 함께하는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아이들을 기르며 남편의 뒤를 단단히 받쳐주었다. 특히 김구 선생님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는 마치 성모마리아에 비견되는 분이었다. 그녀의 희생적 태도가 있었기에 우리 민족이 독립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고, 김구 선생님이 존재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부모의 탄탄한 지원과 믿음이 있었기에 선생님은 해방 조국을 위한 장도에서 순간순간 강단 있는 결정을 하셨던 것 같다. 물론, 가족 외에도 동학의 선봉에 서 목숨의 위기에 처한 선생님을 미리 알아보고 구해준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인 안진사와 그에게 큰 뜻을 남긴 고능선 선생, 그리고 인천 감옥에서 그를 구해내기 위해 노력한 이들과 선생님의 됨됨이를 알아보고 행동한 모든 이들도 독립에 탄탄한 받침이 된 것 같다. 그리고 김구 선생님하면 빼놓을 수 없는 한인 애국단의 열사들,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는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아니 될 분들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새길 수 있었다. 35년이란 긴 시간동안 깜깜한 터널 속에 갇혀 있던 우리 민족의 스승 역할을 하시면서 일제의 탄압과 감시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을 희생하고 민족을 하나로 단결시키려 노력하셨던 그의 하나뿐인 소원은 민주 국가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도, 침략하는 나라도 되는 것이 아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 것이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우리나라만의 모습을 만들어나가기 바라는 그의 사상은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자유’의 길을 걷는다. 그는 또한 외로이 걷는 그 길을 ‘교육’이란 동반자를 동행시키고자 하셨다. 그러나 아쉽게도 김구 선생님의 그 아름다운 뜻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우리나라는 아직도 통일된 조국에 살고 있지 않다. 남과 북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극한의 대립으로 치닫고 있고, 통일은 점점 멀어져만 간다. 오늘은 8월 15일, 우리나라가 독립을 한지 71년이 되는 날이다. 아침부터 한류스타의 경솔한 행동이 논란이 되고 있고 이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sns에서의 사사로운 입씨름으로 응답한다. 김구 선생님의 이상적인 대한민국과는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모습에서 벗어나 올바른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이를 계승 발전시키는 길. 그리하여 남북이 하나가 되고 나아가 모든 인류가 평화와 평등이 넘치는 세상에서 더불어 서로 돕고 함께 가는 길. 백범일지의 감상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한 번 새롭게 다짐한다. 김구 선생님의 사상과 정신을 이어받아 그 숭고한 조국 사랑의 뜻을 후세에 길이 설파하기위해 노력하는 역사 연구자가 되겠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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