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소개
| 제목 | 이정표가 된 삶 -백범일지를 읽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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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한수현(해운대여중) | 개최일 | 2016-10-12 | 조회 | 38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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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가 된 삶 -백범일지를 읽고- 해운대여자중학교 2530 한수현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이 길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남기신 말이다. 빼앗긴 시간 속에서 살다간 위인들은 언제나 나에게 ‘오늘 하루도 나라를 위해 살고 있는가?’를 묻는 것 같다. 조국, 민족, 애국 등의 단어가 그저 암울했던 시대의 상징으로 그치지 않고, 현재에도 나와 함께 하는 진행형임을 다시 한 번 자각하게 된다. 김구 선생님께서는 일평생 독립운동을 하신 선각자로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백범일지>는 이번 여름방학을 통해서 처음으로 읽어 보게 되었다. 우리학교 선생님들께서 방학 중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한 책 한권으로 <백범일지>를 정하셨는지, 이번에 도서관에 300권이나 새로 구비하셔서 우리들에게 대출하여 보도록 하셨다. <백범일지>는 원래 보물 제1245호로 두 어린 아들(김인, 김신)을 위해 쓴 상권과 유서대신으로 쓴 하권으로 된 김구 선생님의 친필 자서전이지만, 내가 읽은 「청소년을 위한 백범일지」는 신경림 시인이 쓴 책으로 이해하기 쉬웠다. 백범일지를 정독하면서, 김구 선생님께서 소원하셨던 나라사랑의 큰 생각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풍요의 혜택 속에서 국권을 빼앗긴 나라의 치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유추는 되었지만, 이방인처럼 역사의 연결고리를 외면하였었는데, <백범일지> 책을 통하여 그 시대를 통째로 공유한 느낌이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나님께서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대한 독립이라 대답할 것이다. 다음 소원을 물으신다 할지라도 나는 대한독립이라 할 것이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 대한민국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칠십 평생을 이 소원 하나를 위해 사셨던 김구 선생님께서는 국가가 나가야 하는 방향을 확실히 제시하신 신념 있는 지도자이셨다. 선생님께서는 강화도 조약이 이루어진 1876년 황해도 해주로 부터 80리 떨어진 백운방 텃골에서 가난한 상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과거시험을 준비하셨으나 매관매직, 대리응시 등 과거장에 실망하여 서당공부를 접으셨다. 대신 관상학을 공부하셨는데, 본인의 흉한 관상을 비참해 하는 듯 했으나 이내 곧 좋은 관상보다 좋은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하시고 행동으로 옮기셨다. 운명에 체념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시는 선생님을 보며 나도 어떠한 열악한 상황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였다. 18세의 청년 김구 선생님께서는 오응선이라는 동학하는 분을 만나 입도하여 <아기접주>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수천 명의 신도를 거느리신다. 나는 여기에서 옳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 즉각적으로 행동하는 김구 선생님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직접 동학의 참여를 결정하고, 현실에 부딪혀서 운명을 개척하는 모습은 당당함 그 자체였다. 오늘날에는 빨대족, 캥거루족 등으로 불리는 마마보이·걸이 많다고 하는데 나는 미래에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올 초에 나는, 작년 중1 마지막 즈음 합류한 방송부 활동을 탈퇴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기계조작능력의 미숙 등 자율적인 방송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 하고 싶었던 아나운서를 그만두게 된 것인데 한동안 패배의식 속에서 부끄럽고 힘들었다. 하지만 선생님과 친구들의 배려로 마음을 회복하고, 지금은 과학 동아리 활동을 즐겁게 하고 있다. 스스로 원했던 방송부 활동을 도전해 보았고 최선을 다했으니 실패가 아쉽지는 않다. 방송부 대신 과학부에서 오는 색다른 매력을 발견하니 행복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옛말에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라고 했는데 진실로 그런 것 같다. 실패가 다른 기회로 가는 통로가 됨을 작은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나의 에피소드이다. 김구 선생님께서도 동학운동의 실패로 쫒기는 몸이 된 것이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이신 안 진사를 만나게 되고, 독립운동의 길을 걷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안 진사 집에 거하면서 만나게 된 고능선 학자는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과 같은 분이셨다. 자신의 능력을 알아봐주는 스승을 만나는 행운만큼 큰 것이 있을까? 플라톤도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것이 세상에 태어나 누린 행운으로 꼽으니 훌륭한 스승의 만남은 참으로 중요한 것 같다. 스물에 벌써 수많은 실패로 우울해하는 김구 선생님께 고능선 학자는 “자네가 마음 좋은 사람이 되려는 본뜻을 가진 이상 몇 번 길을 잘못 들어서 실패니, 곤란이니 하는 것들을 겪은 것이 무슨 대수겠는가! 본뜻만 변치 말고 쉼 없이 고치고, 쉼 없이 전진하면 반드시 목적지에 다다를 날은 오게 마련이다. ...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요 즐거움은 고민 끝에 얻어지는 것이니, 너무 상심 말도록 하게.”라고 격려한다. 고 선생을 만난 김구 선생님께서는 마치 ‘코이 물고기’처럼 한계 없이 능력을 갖추어 상황을 극복하였다. 관상용 물고기인 ‘코이’는 작은 어항에서는 작게 자라지만, 연못이나 강물에서는 두 배, 세 배로 성장할 수 있다고 엄마께 들은 적이 있다. 김구 선생님께서는 고 학자의 조언으로 일본에 의해 망할 수 있는 우리나라 사정을 알리고자 김형진과 함께 청으로 떠나게 되고 청나라 장수 서옥생의 아들을 만나 친분을 쌓는다. 선생님은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도 친구를 잘 사귀는 사교성이 좋으신 성격이셨던 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라의 정세가 급변할 무렵에 안악군 치하포로 가면서 일본군 중위를 ‘명성황후를 시해한 치욕의 앙갚음’으로 죽이는 사건에서 보듯이 심판자로서의 카리스마를 지닌 분이심도 분명하다. 부드러움과 강인함이 있는 내유외강의 대장부이신 김구 선생님께서는 치하포 사건 이후 교육자로 독립운동을 하시면서 감옥생활을 반복하게 된다. 그 뒤, 1919년 중국 상하이로 가셔서 임시정부의 일원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이루셨다. 최종에는 대한민국이 남북한 통일정부가 되도록 노력하셨으나, 1949년 안두희의 총에 맞고 서거하시게 된다. 나는 지금 당당하게 우리말을 배울 수 있고 우리 민족의 탁월한 문화를 자유로이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노력하면 합당한 대우를 보장 받을 수 있는 국민의 의사가 존중되는 민주주의 국가가 내 나라가 되었다. 김구 선생님께서 27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신 그날 김포 비행장에서 보신, 민족의 유망한 장래라 기뻐하셨다는 책보를 메고 가는 학생의 모습이 2016년 오늘 학생인 내가 연속해서 이어가는 희망인 것을 가슴으로 실감하였다. 안창호,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안중근 등의 젊은 독립투사들의 숭고한 죽음이 있었기에 지난 8월 15일에는 제71회 대한민국 광복절을 축하할 수 있었다. ‘조국의 자유해방’이란 소원 하나에 인생을 모두 걸으셨던 김구 선생님처럼 풍요롭고 아름다운 나라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책을 읽는 내내 고민하였다. 노년의 김구 선생님께서 조국에 오셔서 만들려고 했던 통일조국이야말로 미래의 주역인 우리가 해야 할 마지막 과제인 것 같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요즘 대한민국은 사드 배치논란으로 뜨겁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드배치는 국내 사정뿐만 아니라, 중국·러시아 등의 주변 강대국들의 입장 차이로 외교적 어려움에 있다. 우리의 안보를 위한 노력이 다른 나라들의 이익에 좌우되지 않고 합리적으로 잘 해결되었으면 한다. 김구 선생님께서 부강한 나라가 아닌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신 만큼, 이기적인 개인주의가 되지 않도록 사리사욕을 내려놓고 정치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길 소망한다. 나도 바른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부끄럼 없는 오늘을 살기위해 앞으로 나라를 위해 실천해야 할 세 가지를 다짐해 보았다. 첫째, 역사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 암기 과목인 역사를 소홀히 했었는데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둘째,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계승하는 일에 작은 힘이라도 힘써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으로 태권도 품새라도 꾸준히 익혀 나가야겠다. 셋째, 독서를 열심히 하겠다. 옥중에 계셨던 김구 선생님께서 <대학>을 읽으셨고, 다른 독립 운동가들께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신 만큼, 나도 책읽기를 열심히 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백범 김구 선생님의 <백범 일지> 원작을 찾아 읽고 싶다. 이를 통해 고난과 역경에 맞서 멈추지 않고 나은 방법을 구하면, 지금보다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실패는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때로는 삶을 더욱 윤택하고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중3이 되고 고3이 되도록 까지, 하고픈 일이 생기면 언제나 망설임 없이 부딪칠 수 있는 ‘살아있고, 깨어있는 학생’일 수 있기를 나는 소망한다. 내가 백범일지를 통해 깨달은 만큼 앞으로도 김구 선생님의 세밀한 역사의 기록은 미래의 청소년들에게 영원한 이정표가 되어 삶을 바르게 안내할 것을 믿는다.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다스려야 뜻을 이룬다. 모든 것은 내 자신에 달려 있다.” -백범 김구 선생 명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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