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알림

association of
commemorative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홈 > 알림 >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백범일지, 우리의 역사인식을 돌아보며
작성자 홍성호(경찰대학) 개최일 2015-11-20 조회 3741

백범일지, 우리의 역사인식을 돌아보며

 

 

 

경찰대학 4학년 홍성호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再生)할 수 없다“. - 조선상고사 단재 신채호 선생

 

현재 우리나라는 ‘단일 국사교과서’ 문제로 떠들썩하다. 친일 역사를 미화하려 한다거나 특정 사상에 경도된 일부 국사학자들이 국민의 역사를 사유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거센 반발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만큼 지금 우리나라는 역사에 대해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관심과 집중이 필요한 이유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지니지 않고서는 우리의 뿌리와 근간이 쉽게 흔들릴 수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범일지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조금 더 단단히 잡아줄 수 있는 한 위대한 사람의 일기이며 우리는 단순히 책으로써 한 사람의 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고취시킬 수 있는 것이다.

크게 백범일지는 상권과 하권 그리고 마지막 부분의 ‘나의 소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권에서는 김구선생의 어린 시절부터 1919년 임시정부 수립 전까지의 이야기를 담았으며 하권에서는 임시정부 이후부터 독립 후의 상황까지를 보여준다. 또한 ‘나의 소원’ 부분에서는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이에 대한 김구선생 본인의 주장이 들어가 있다.

어렸을 적 김구선생은 천연두(마마)를 앓고 곰보가 되어 이웃집 아이들에게 많은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고 이로 인한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출하기도 하였다. 이후 과거시험에 응시하였으나 당시 조선시대 양반중심 사회의 부조리를 깨닫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평등사상을 주장하는 동학농민운동에 동참하여 사회의 부조리를 타개하려 하였다. 김구선생이 청년이 되었을 때 명성황후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터지게 되는데 이 때 김구선생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조직의 구성원처럼 보이는 일본인 하나를 죽이게 되고 이로 인해 살해 용의자로 지목되어 체포되어 갖은 고문을 당하고 사형의 위기에 처하던 때 고종황제의 전화로 극적으로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그 후 감옥에서 탈옥을 한 김구선생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스님이 되어 불교 경전을 공부하기도 하고 예수교에도 가입하여 성경을 공부하는 등 조선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이 조선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려던 때에 미래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에 참가하였으나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 및 신민회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게 되어 다시 투옥된다. 몇 년 후 감옥에서 출소한 후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세우게 된다는 이야기로 상권이 끝나게 된다. 이를 보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 당시 상황이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당시 사회는 일본에게 지배당할 위기에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양반들이 중심이 되어 혈연. 지연으로써 사회의 고위층이 운영되고 있었다. 물론 현재는 그러한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사회는 혈연 및 지연에 의해 사회의 많은 부조리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의 부조리에 대응하는 김구선생의 태도 및 자세는 현재 우리나라 청년들과는 사뭇 다르며 이는 우리가 반드시 본받아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당시 조선 사회는 본인의 힘만으로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사회였으며 특히 일본에 의해 대부분의 통치권과 자율이 넘어간 상태이므로 조선인이라면 일본에 빌붙지 않는 이상 무언가를 해내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구선생은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뜻을 굽히지 않고 불합리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극단적인 행위도 주저하지 않는 등 갖은 노력을 했음을 볼 수 있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이러한 정신은 살아있었다. 지식인들 및 청년들은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시위도 불사하고 거리로 나섰으며 본인이 불편한 것은 뒤로 하고 합리적이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 항상 노력해 왔다. 하지만 지금 우리 세대는 어떠한가.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며 불편함과 불합리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앞서서 이를 개선하려고 하기 보다는 뒤에서 불평불만하며 세상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에 불편을 가지고 세상을 뛰쳐나오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불합리한 것이 무엇인지 잘 구분하여 앞장설 수 있는 용기만큼은 김구선생님의 행동에서 우리가 분명히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 후 초창기에는 국내외의 많은 지원으로 점차 세력을 증진시켜 나가지만 이후 일본의 방해로 임시정부는 점점 쇠약해져 간다. 하지만 이후 이봉창, 윤봉길 등의 의사들의 활약으로 꾸준히 유지가 되며 결국 1945년 대한민국은 독립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남북의 이념대립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혼란스러운 정세가 이어지며 이를 위해 김구선생은 ‘나의 소원’이라는 글을 통해 대한민국의 방향성에 대해서 주장하였지만 1949년 안두희가 김구선생을 암살함으로써 김구선생의 기나 긴 노력은 끝이 난다. 김구선생은 우리나라가 완전한 자주독립을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통탄을 하였다. 이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것이 그로 인해 독립 후에도 우리나라는 주변 강대국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으며 6.25 전쟁이 발발하여 남북이 분단되는 등 아직까지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또한 김구선생의 ‘나의 소원’ 부분에서는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과 진정으로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조선시대부터 광복까지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김구선생의 노력은 다시 한 번 나로 하여금 자신과 조국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조국, 정의, 명예‘ 라는 학훈을 토대로 배워가는 내가 과연 떳떳하게 조국을 위해 봉사할 수 있을까. 미래의 경찰간부로서 정말로 조국에 헌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김구선생에 대한 존경심과 부끄러움이 함께 물밀 듯이 몰려왔다. 또한 역사 속의 김구선생님들과 같은 위인들 덕분에 우리가 당당하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다시금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최근 SNS에서 본 한 글이 생각났는데 그 글의 제목은 ’만약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다면‘ 이라는 제목이었다. 글에서는 만약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일본의 지배하에 있었다면 국회의사당은 조선총독부, 서울대학교는 도쿄대학교 제2캠퍼스로, 김연아, 박지성 선수 같은 선수들은 일본의 위상을 드높였을 것이며, 한글은 그저 이미 없어진 역사 속의 과학적이었던 글자로 인식되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글을 보면서 정말 상상도 하기 싫었으며 조상들의 대한 감사함이 다시금 떠올랐다.

우리는 대한민국 사람이다. 조상들이 피땀 흘려 얻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더 소중히 하여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고 이 자랑스러운 나라를 후대에 더욱 자랑스럽게 물려주어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목록
이전글
김구 선생님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간다면?
다음글
<백범일지>를 읽고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