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소개
| 제목 |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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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박유진(명덕여고) | 개최일 | 2015-10-15 | 조회 | 28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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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명덕여자고등학교 1학년 6반 16번 박유진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이 없었다면 이 두꺼운 책을 펼쳐보기라도 했을까? 한국사에 대해 흥미가 생겼고 올해 봄 서대문 형무소와 중3 겨울방학 때 상해 임시정부 청사도 직접 방문했던 까닭에, 그리고 당연히 백범 김구 선생의 저서인 이유로, 우리 민족사에 길이 남으실 선생의 ‘백범일지’를 폈다. 첫 부분부터 시선을 다른 곳에 둘 수 없었다. 김구 선생의 새로운 모습이 비춰졌다. 교과서에서 본 단단하고, 강하고, 견고하신 모습의 김구 선생으로만 기억되고 있었던 까닭일까? 선생도 한 가정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훗날 자식들이 볼 수 있게 이것을 작성하신 것에서 ‘김구’가 아닌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그가 어린 시절, 개울에 물감을 풀어서 장난을 치다가 어머니께 야단맞았다는 이야기에서는 ‘선생도 어렸을 땐 여느 어린 남자아이와 같은 유년시절을 보냈구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친근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점점 성장하면서 눈부시게 발전한 김구 선생의 학구열은 그 당시에 선생이 지금의 나보다 어렸을 것이기에 나를 부끄럽게 하기도 했다. 어린 김창수 나이 고작 열두 살에 새벽에 일찍 일어나 선생님 방으로 가서 그 누구보다도 먼저 배우며, 밥그릇 망태를 메고 멀리서 오는 동무들을 가르쳐주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선생만큼 학업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가득 지닌 학생을 찾아보긴 어려울 것이다. 또, 먼 훗날 김구 선생이 치하포 사건으로 인천옥에 수감되셨을 당시에는 신문에 ‘김창수가 인천옥에 들어온 다음부터 감옥이 아니라 학교다’라는 기사를 보고 선생의 학구열과 교육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분이 우리나라에 계셨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웠다.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책을 탐독했다는 김구 선생의 열정을 나도 닮아 갈 수 있을까? 강제 합병을 전후해서는 듣고 배운 적 없는 불쌍한 농민들과 힘없는 호랑이 같았던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신민회 활동을 하며, 장교를 양성해 광복전쟁을 일으키려고 무관학교 창설을 결의했을 때는 ‘지금 과연 이 분만 한 리더가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그는 어떤 리더였을까? 적어도 오직 ‘나’ 가 아닌 ‘우리’, ‘우리 국민’을 위해 모든 걸 쏟아 붓던 책임감 있는 지도자가 아니었을까? 선생이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묘사 될 때는 절로 눈을 질끈 감게 되었다. 천장에 매달고 몽둥이로 때리는 등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나오면 정말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며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일본어로 ‘이 쇠가 식었으니 다시 달궈오라’ 던 구를 암송할 정도였다고 하니 고문의 정도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런 심리적,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불굴의 투지와 참된 용기를 가지고 우리나라를 위해 온몸 바쳤을 분들께 감사했고 또 감사하다. 나라는 망했지만 인민은 망하지 않았다는 그의 생각에서, ‘나의 생명은 빼앗을 수 있거니와 나의 정신은 빼앗지 못하리라’는 선생의 말씀에서, 광복이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그리고 그대들의 얼과 정신이 어땠는지를 뼛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왜놈들이 자신을 뭉우리돌이라 한 것을 오히려 영광이라 여겼다는 것이다. “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 마음먹었다. 단지 분노가 아니라, 다시 한 번 의지를 다지는 뜻으로 받아들인 김구 선생이었다. 저 말씀이 존경스러움과 함께 강렬히 남았다. 그렇지만 그는 현실에 부딪혔다. 뭉우리돌 가운데 세상에 발을 내밀어 왜놈에게 순종하며 연명하는 무리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 뭉우리돌을 일러 선생은 석회질이 들어 있는 돌이라 말했다. 석회가 물에 들어가면 녹아버리는 것처럼, 세상이라는 바다에 들어가면 굳은 의지가 석회처럼 풀린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도 석회질 있는 뭉우리돌이라면 차라리 죽기를 원했다. 그렇게 강건했던 선생을 보면서, 나는 ‘내가 만약 독립운동을 하는 대표자였다면 저런 불굴의 투지를 가지고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용 중에서는 윤봉길, 이봉창 등 그 시대에 김구 선생과 같은 방향의 길에 함께 서계셨던 분들의 이야기도 다뤄졌다. 특히 윤봉길 의사의 의거 전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윤봉길 의사는 의거 전 자기 시계를 꺼내 선생에게 주며 이렇게 말했다. “제 시계는 6원을 주고 산 것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이지 않습니까. 제게는 한 시간밖에 소용이 없는 물건입니다.” 의거 중 또는 그 후에 자신이 어떻게 될지 아는 윤봉길 의사가 선생에게 자신에겐 한 시간짜리인 자신의 회중시계와 바꾸자고 하는 그 마음은 어땠겠는가. 그것도 모자라 거사를 치르기 전 남은 돈까지 선생의 손에 쥐어주는 의사의 마음과 그 아래 숨어있던 강건한 의지를 우리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서대문 형무소와 임시정부 청사 이야기가 나왔을 때엔 두 곳을 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 때 보았던 왜놈 간수들의 화려한 무늬가 그려진 도자기 그릇과 한국 수인들의 깨지고 흙 묻은 플라스틱 그릇…20명이서 취침 할 땐 밤에 누군가의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던 그 한없이 작은 방…정말 작고 초라해보였던 상해의 임시정부 청사…. 그런 곳에서 날마다 서로 얼굴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족히 위로가 되었다던 그 환경 속에서도 ‘우리’를 위해 밤낮없이 고민하고 힘쓰셨을 김구 선생과 독립투사 분들께 존경을 표한다. 김구 선생은 책을 쓰는 내내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냄에 따라 ‘백범일지’가 진정한 자서전이 되도록 했다. 위인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는 어렸을 적 고능선 선생에게 들었던 “가지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것이 가히 장부라 할 수 있다.” 라는 구절을 평생 화두로 삼고 용기와 과단성을 발전시키며 그것을 대한 독립을 위해 쓰셨다. 선생이 꿈꾸었던 나라는 어떤 것이었을까? ‘나의 소원’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이 살던 시절. 가난, 사회의 총체적 모순과 일본의 압박, 그럼에도 그는 참된 용기를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면서 세상을 바꾸었다. 선생이 꿈꾼 나라는 부강한 나라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나라, 높은 문화의 힘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또한 남에게 행복을 주는 나라였다. 그 길고 긴 역사를 거쳐 지금 새로운 이 시대, 2015년에 살고 있는 우리들 그리고 대한민국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선생이 꿈꿔왔던 바로 그런 나라인가? 우리나라, 오직 ‘우리’를 위해 희생하고 참된 용기를 보여준 분들이 있기에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 우리는 과연 잘 하고 있는 걸까? 어디에도 쓰러지지 않는 구심점이 필요했던 그 시절, 시린 바람이 세차게 부는 겨울 같았지만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항상 푸른 우리 민족의 소나무 같았던 김구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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