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소개
| 제목 | 백범일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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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황예원(근명여고) | 개최일 | 2015-11-06 | 조회 | 45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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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백범일지는 보물 제 1245호이다.
1학년 8반 25번 황예원 일지, 이렇게 보면 마치 딱딱하게 보인다. 일기, 「그날의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 재밌지 않은가, 그저 기록되어 있는 것보다 그 기록마다 느낌이라는 소스를 부어넣어 주신 백범김구의 이 백범일지. 마치 다른 사람의 일기를 훔쳐볼 때의 그 흥미! 그런 기분이었다. 이 책을 읽는다는 건 백범김구의 역사적으로 해낸 일을 그저 이해하고 외우는 그런 단순한 독서가 아니다. 그의 감정을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인 것이다. 심지어 다른 역사 인물들의 일상도 함께 엿보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백범김구선생님의 일기를 엿보기로 한 것이다. 백범일지는 상권, 하권, 계속 편으로 나뉘어져있었다. 상권은 임시정부시절 때의 전의 이야기가 주 이야기였지만 그런데도 상권은 무려 293페이지였다. 그마저도 독립이전에는 중요한 사실은 기록할 수 없다. 라는 이유로 많이 기록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293페이지. 그만큼 그가 많은 일을 해오면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일기는 나라의 대한 애정은 실로 대단하다. 아니, 자식들에게 보여주려 쓴 일기라 그런지 자식을 지키기 위한 나라를 지키기 위한 아버지 같다. 라는 느낌이 일기에서 느껴졌다. 그는 나라를 지키기 위한 아버지 그런 사람이 백범김구였다. 하권은 본격적인 임시정부 때의 이야기가 많았다. 이때쯤 그는 상해에서 임시정부 활동을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내외에서 전개되던 민족 독립 운동을 보다 조직적이고 효과적으로 밀고 나가는 중추기관 역할을 담당했었다. 임시정부의 활동은 우리 민족에게 조국 독립의 희망을 불어넣는 일이었으며, 국가 건설의 방법과 책략을 제시해 가는 일이기도 했다. 국권을 박탈당한 상태에서 임시정부의 활동이 중국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갖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함에 따라 여러 차례에 걸쳐 중국 각 지역으로 옮겨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백범김구 등의 노력으로 조직이 정비·유지되어 조국의 광복을 위한 항전을 불태웠다고한다. 임시 정부는 국내와의 연결을 강화하기 위하여 비밀 행정 조직망인 연통제를 설치하여 운영하였으며, 통신 기관으로 교통국을 두어 정보의 수집과 분석 및 국내와의 연락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만주에는 이륭 양행, 국내의 부산에는 백산 상회를 개설하여 거점으로 삼았으며, 독립신문을 발간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 운동 상황을 소상히 보도함으로써 각 지역에 사는 동포들의 독립 의지를 더욱 드높였다. 그리고 여러 독립 운동 단체에 독립 운동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한편, 백범일지의 〈하권〉을 보면 임시 정부는 독립 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애국 공채를 발행하거나, 국민 의연금을 거두기도 했는데, 공채가 발행되면 국내나 중국의 동포들은 물론 미국이나 멕시코에 살던 동포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임시 정부 활동을 도왔다. 백범김구. 그는 강하다. 독립운동을 하기까지 그는 많은 고통과 아픔과 희생을 가지고 짊어지면서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인간은 서로기대며, 의지하면서 살아가야하는 것이다. 그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도 어머니가 환갑이 되어서도 그는 금전을 소비하지 않기 위해서 슬퍼도 아쉬워도 무엇 하나 제대로 치루지 못했다. 왜냐하면 위에 보다시피 임시정부는 군자금 부족이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다른 동료들이 신경 쓸까 자신의 생일도 표시하거나 절데 말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기대고 털어놓을 유일한 것은 일기였던 것이다. 가족들이 모두 환국했을 때 그의 일기의 「상해에는 내 한 몸만, 몸뚱이와 그림자가 서로를 좇게 되었다.」 라는 말을 적었다. 백범김구. 그는 자신이 일기를 쓴 이유를 두 아들들에게 아버지가 살아온 과정을 알리고자 한다. 라는 이유에서였다. 좀 더 많은 얘기를 책으로 해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그가 일기를 쓴 근본적인 이유는 아들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도 있었겠지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에게 백범일지란 솔직한 마음을 쏟아낼 수 있는 유일한 것이지 않았을까. 그런 백범일지를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다시 한 번 영광이라고 생각된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 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가 죽는 일이다. 나는 일찍이 우리 독립 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했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에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김구 〈나의 소원〉 中에서 김구선생은 서대문혁무소에서 옥 생활을 하셨던적이있었다. 서대문형무소는 한번 다녀온 기억이 있었고 그곳에서 옥 생활을 하셨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자살시도를 했다는 얘기는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자살을 일본군의 제지로 번번이 실패하였고 그는 말했다. 「죽는것도 사는것도 힘들다. 자살도 자유가 있어야 할 수 있다.」 그의 소원은 끝까지 편하게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니었다. 힘들더라도 고통스럽더라도 자유롭게 죽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가 바라는 죽음이자 삶이였다. 자신의 나라를 버리고 편하게 살아가다 죽기보다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자신답게 자신의 나라를 밟고 당당히 살아가다 죽음을 맡는 것이 그가 바라는 죽음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바라는 죽음의 방식을 일기에 적었다. 어떤 답변하나 편한 죽음이 기다리는 답변은 아니었다. 백범김구. 그에게 있어 나라의 독립이란 나라를 구함이란 사람을 구하는 것이었다. 〈사람: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사는 동물〉 그렇다.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나라의 영혼을 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자유가 없으면 쉽게 죽지도 못한다 했다. 그는 그런 고통을 알기에 모두에게 나라에 대한 자유를, 대한민국이라는 땅을 밟고 서있을 수 있는 자유를, 우리들의 손에 쥐어주고 머리에 새겨주고 마음에 담아주고 당당히 “우리는 대한민국의 사람입니다.” 라는 말을 속삭여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는 힘들고 괴로웠지만 배고팠지만 독립운동가로서 그렇게 살았던 것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또 다른 독립운동가 그는 몸으로 글로 독립운동을 해온 사람. 그의 독립의지는 김구 못하지 않았던 그. 그의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독립운동가, 시인」으로 나온다. 독립운동가임과 동시에 시인일 수가 있다니! 이원록(이육사). 그는 그의 시조차 독립운동을 했다. 직설적이지 않지만 은은한 달의 은빛처럼 독립을 노래하고 있었다. 1927년 장진홍(張鎭弘)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때의 수인번호 264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지금은 그가 일제에 대한 저항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육사의 독립투쟁방식은 무장독립투쟁을 하였다. 내가 이육사(이원록)를 소개한 이유는 그가 독립운동가 이면서 시인 이였기 때문이며 그저 몸으로만 말로만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닌 글로 독립을 외쳤다는 점이다. 백범김구 그처럼 말이다. 백범김구는 백범일지, 이육사(이원록). 그는 시로 각각의 문학으로 독립을 노래하며 바랬고 원했다. 내가 백범김구와 이육사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도 그 때문이며 둘의 공통점도 많이 있다는 사실에 이렇게 이육사(이원록)를 소개했다. 그리고 그의 시도 나를 반하게 만들었다. 그의 시는 독립을 향한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가 많았다. 충분히 암울한 내용을 쓸 수도 있는 시기인데도 그는 긍정적이고 따뜻했다. 그리고 밝은 독립 후에 모습을 기대했다. 그 독립이란 손님을 기다렸다. 그의 긍정적이고 따뜻한 마음이 백범김구와 나에게 닿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 1년 뒤에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되었다. 그가 죽은 후... 그 손님은 얄궂게도 그가 죽은 후에 오셨다. 나는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직접 그 반가운 손님을 맞이할 수는 없었지만 아마 그에게는 이미 독립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이었을 것 이다. 그의 마음만은 나라 그 자체였으니까.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만약 독립후 김구와 그가 만났더라면 아니 그 전에 언제라도 만났더라면 김구와의 인연을 만들었더라면 백범김구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그런 이룰 수없는 바램과 욕심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명 정말 소개하고 싶은 분이 있다. 윤봉길 의사. 그의 나이 고작 25세.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은 폭탄(저격용 물통 모양의 폭탄 1개, 자결용 도시락 모양의 폭탄 1개)을 감추고 식장에 입장하였다. 그리고 식이 한참 진행 중일 때 식장으로 다가가 수류탄을 던졌다. 이 폭발로 시라카와 일본군 대장과 일본인 거류민단장 가와바다[河端貞次]는 즉사하였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野村吉三郞] 중장과 제9사단장 우에다[植田謙吉] 중장, 주중공사 시케미쓰[重光癸] 등이 중상을 입었다. 식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윤봉길은 현장에서 일본군에 체포되었고,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일본으로 옮겨져 오사카[大阪] 위수형무소에 수감되었다(1932. 11. 20). 그리고 그해 12월 19일 총살형을 받고 25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하였다. 이 사건은 중국 등 세계에 알려졌고, 중국의 지도자 장제스(蔣介石)은 “4억 중국인이 해내지 못하는 위대한 일을 한국인 한 사람이 해냈다.”고 격찬하였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백범김구의 회중시계 이야기이다.(백범일지에 실려 있다.) 윤봉길 의사는 백범김구에게 “선생님 어제 선서식 후에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 짜리니 저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앞으로 한 시간 밖에 쓸 데가 없으니까요. “ 윤봉길 의사와 백범김구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 이후 윤봉길은 죽고 김구 그가 윤봉길의 유품이자 자신의 유품인 회중시계를 윤봉길의 어머니에게 보여드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무런 대답도 없으셨고 김구 그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품에 시계를 넣었다. 여기까지가 김구 자신이 기록한 내용이다. 여기서부터는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사실인 슬픈 이야기다. 윤봉길 의사가 죽은지 17년 후 백범김구선생이 임시정부의 활동장소였던 경교장에서 서거하셨다. 그 때 김구의 품속에 마지막까지 품고있었던건 윤봉길의 유품이자 자신의 유품인 회중시계였다. 김구 그는 생의 마지막까지 그걸 품에 간직했다. 그 회중시계에는 김구선생님의 윤봉길 의사에 대한 감사함 미안함과 슬픔과 애잔함 그것을 그렇게 품고 서거하셨다. 이육사(이원록)와 윤봉길 의사는 독립만세를 외치치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백범김구는 독립만세를 외쳤다. 당당히 모든 국민들 앞에서 외칠 수 있게 되셨다.(김구선생님이 외치는 영상이 있다.궁굼하면 검색해보시길!) 백범일지의 이야기가 독립에 다다르면서 나까지 두근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치 친구일기장의 짝사랑하는 아이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과 같은 두근거림. 특히 김구선생님의 감정이 제일 궁굼했다. 그는 그리웠다는 표현을 자주 쓰셨다. 그리고 마지막의 나의 소원의 부분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이 아니한다.」 아름다운 나라. 네. 김구선생님. 김구 선생님의 희생과 고통 저희는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멈출 수도 없습니다. 저희에게 맡기세요. 저희는 우리나라는 김구선생님이 되찾아주신 이 나라는 계속 달리고 있으니까요. 계속 발전하면서 김구선생님의 바램이었던 문화가 강한 나라로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바통을 이어받아 김구선생님과 많은 독립운동가분들의 역사를 발판삼아 계속 달리고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달릴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셔서 김구 선생님 저희는 계속 달릴 것 입니다. 김구 선생님이 이루시지 못한 통일과 다른 많은 고난과 문제가 있더라도 저희는 당당히 대한민국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대한민국 땅 위에서 노력하며 달리겠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함부로 발걸음을 어지럽게 걷지마라. 오늘 나의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김구선생님의 발자국, 김구선생님의 핏자국 저희는 잊지 않겠습니다. 모든 독립운동가 여러분들의 핏자국 잊지 않겠습니다. 저희에게 지금의 당신들은 대한민국을 있게 해주신 어버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저희 차례입니다. ‘통일 ’저희에게 있어서 지금의 저희가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저희는 계속 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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