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소개
| 제목 | 상놈에서 주석이 된 이 시대의 지도자 김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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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김형준(동화고) | 개최일 | 2015-11-05 | 조회 | 43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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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놈에서 주석이 된 이 시대의 지도자 '김구’
동화고등학교 1학년 11반 김형준 나는 김구 선생을 태어나서 세 번 만났다. 첫 번째는 초등학생 때로 기억한다. 부모님께서는 나를 위해 정말로 많은 책을 사 주셨다. 덕분에 어린 나는 책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 때 여름방학 권장도서 목록에 모든 초등학교가 그렇듯이 <백범일지>가 있었다. 마침 나는 우리 집 책장의 빼곡한 책들 중 <백범일지>를 발견했고, 흥미를 느껴 그 날로 백범일지를 읽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읽었던 <백범일지>는 활자본을 한글로 풀어쓴 책이었다. 그러나 풀어쓴 책이라 하더라도 어른을 위한 책이었기에 읽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그 때 책 표지에서 봤던 안경 쓴 푸근한 할아버지가 이런 인물일지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김구 선생은 나에게 그런 푸근한 옆집 할아버지였다. 첫 번째 만남에서 나는 유명인으로서의 김구 선생을 봤다. 그 후 단 한 번도 펴보지 않은 백범일지에는 소복이 먼지가 쌓여갔다. 덩달아 내 마음 속 김구 선생에 대한 과거의 기억에도 먼지가 쌓여 잊힌 인물이 되어갔다. 가끔씩 선거철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정치인들은 김구 선생을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빨갱이라느니, 친일파라느니 어린 내가 보기에도 터무니없는 이유로 김구 선생을 헐뜯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흘려들었을 뿐이었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그는 나에게 별로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 두 번째 만남은 올해 5월이었다. 그는 고등학생이 된 나에게 다시 나타났다. 학교 한국사 수업시간이었다. 근현대사 부분을 배웠기 때문에, 당연히 김구 선생에 대한 내용도 배우게 되었다. 내겐 시험을 잘 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김구 선생은 물론 그와 관련된 내용은 몽땅 외워버렸다. 신민회 조직의 핵심 인물 중 한 명. 1919년 설립된 임시정부의 요인(要人). 1931년 한인 애국단을 창설하여 투쟁을 진두지휘한 인물. 1940년 이후 임시정부의 주석이 되어 독립운동을 이끌어온 사람. 그는 암기로 인해‘반강제적으로’내게 중요한 인물이 되어있었다. 암기의 효과가 있긴 있었나보다. 초등학생 때의 옆집 할아버지는 어느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써온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변해있었다. 그래도 조금은 바람직한 방향이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나는 애국자로서의 김구 선생을 봤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였다. 비록 <백범일지>를 학교 과제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읽은 것이기는 하지만, 두 번째 만남을 통해 그에 대한 존경심이 자라나고 있던 터라 호기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책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다 보니 자연히 내 마음에 앉은 먼지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 뿐만이 아니었다. 세 번째로 만난 김구 선생은 많이 달라보였다. 세 번째 만남에서 내가 본 김구 선생의 모습은 민족을 통솔하는 훌륭한 지도자였다. 요즘 서점을 돌아다니다 보면 리더십 관련 서적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저술한 그런 책들 말이다. 나도 미래에 지도자가 될 날을 준비한답시고 그런 책들을 몇 차례 접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접한 책들은 내게는 너무 피상적이었다. 나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 내가 가져야 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나는 최소한 글을 통해 리더십을 가지는 방법을 알고 싶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바람직한 모델이 필요했다. 그런 고민으로 마음이 무거웠던 시기에, 김구 선생은 내게 완벽한 지도자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흔히‘근대의 시작’이라고 여겨지는 1876년이었다.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여겨지는 김구 선생은 시골에서 상놈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의 이름은 창암이었다. 그는 갖은 장난을 치며 부모님의 속을 썩였다. 아버지의 숟가락을 분질러 엿을 바꿔먹었고, 어머니의 물감을 시내에 풀어 물을 더럽히기도 했다. 이런 김구 선생의 모습은 내게 어린 시절 장난꾸러기였던 나를 떠올리게 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자신의 호인 백범(白凡), 즉‘천하고 평범한 사람’에 꼭 들어맞는 어린 시절이었다. 그랬던 백범은 그의 나이 60대에 이르러서는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다. 1939년 임시정부가 중경으로 이사하면서 주석에 임명된 것이다. 일개 상놈의 자식이 지도자가 된 것이다. 가장 미천하고 평범했던 사람이 한 나라의 최고 권력을 쥐다니, 부러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백범을 훌륭한 지도자로 만든 지도자의 덕목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생각한 첫 번째 덕목은 바로‘겸손’이었다. 백범은 모르는 자들이 본다면 혹시 그의 좌우명이‘겸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겸손한 사람이었다. 절대로 자신의 능력을 자랑한 적도 없었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일을 그르친 적도 없었다. 오죽하면 한 나라의 지도자의 호가 백범이겠는가. 백범의 겸손이 잘 드러난 예시를 하나 들자면, 그가 남긴 유명한 말 중 이런 말이 있다. “나는 통일된 조국의 문지기가 되어도 좋소.” 임시정부가 설립되고 도산 안창호가 그에게 요직을 제의하자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며 제안을 거절하면서 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백범의 이 말을 그의 애국심을 상징하는 예시로 바라본다. 이런 말을 할 만큼 독립과 통일을 간절하게 꿈꿔왔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백범이 독립과 통일을 꿈꾼 둘째가라면 서러운 애국자라는 것은 부인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에 대해 조금 관점을 달리해서 바라보았다. 사회 통념상 문지기는 절대 고위직으로 볼 수 없는 직업이다. 그런데, 당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던 인물이 이런 직업에 자원한 것이다. 그렇다면 최고 권력자가 문지기가 되고 싶다고 한 것이 겸손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나는 그래서 백범의 이 말을 그가 항상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던 겸손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백범이 실천한 겸손의 미덕은 비단 이 말 한 마디뿐만이 아니다. 그의 겸손함은 백범일지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드러나 있다. <백범일지>에서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외모를 가리켜 큰 인물이 될 상이 아니라고 하고,‘정말’이라는 말까지 구태여 붙여가며 정말 못났다고 한다. <백범일지>는 그가 한창 독립운동의 전면에 나선 뒤 임시정부의 국무령으로 있을 때 쓰인 것이다. 그는 이미 많은 한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국부(國父)와도 같은 존재였다. 보통 그런 존재라면 실제로 못났다 하더라도 약간의 포장을 덧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백범은 책을 쓰며 한 자 한 자 일절의 가감 없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겸손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주목한 두 번째 덕목은 바로‘추진력’이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그는 기필코 해냈다. 그는 어떤 일이든지 확고한 소신을 가지고 진행해나갔다. 보통 이런 소신과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 흔치는 않다. 진행한 일이 그르칠 경우‘독선적이다’또는‘고집이 세다’라고 비난받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범은 달랐다. 그의 추진력이 없었다면 임시정부가, 나아가서 우리나라가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상해 임시정부를 지킨 사건만 봐도 그렇다. 3ㆍ1운동 이후 설립된 임시정부는 첫 몇 년간은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은 점점 거세져 임시정부를 옥죄어왔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상해를 떴고, 일부는 변절했다. 백범의 표현을 빌리자면‘한창 적에는 천여 명이나 되던 독립운동자가 이제는 수십 명도 못 되는 형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시정부는 희망이 없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백범은 끝까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일을 추진했다.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손가락질을 무릅쓰고 그는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켜냈다. 그가 끝까지 지켜낸 임시정부는 후에 광복군을 양성하고 독립운동의 중심 조직이 됨으로써 그가 옳았음을 증명해낸다. 백범이 임시정부를 지킨 것은 분명히 현실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연통제가 파괴되었고, 내부에서는 파벌이 나뉘어 다툼이 계속됐다. 임시정부의 지속 여부를 놓고 회의가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뜻이 안 맞는 사람들이 세력에서 빠져나가 임시정부는 무정부 상태에 이르렀다. 누가 봐도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인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두가 버린 임시정부의 간판을 홀로 지켜냈다. 이 대목을 읽으며‘내가 이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였다면 절대로 일을 수행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러나 백범은 소신 있게 일을 해냈고, 나로서는 그가 그저 감탄스러웠다. 그가 갖춘 지도자의 마지막 덕목은 아마 진취적 사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종종 백범을 구시대적 애국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애국의 방법이 고전적이었고 자신이 구세주가 되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백범에 대한 이러한 비난이 완전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그는 절대 구시대적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가장 진취적인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진취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백범이 진취적이라는 내 생각에 대한 근거를 그의 교육론에서 찾고 싶다. 그는 어릴 때부터 배움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공부를 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미리 깨달은 사람이다. 망국을 구제하는 길이 교육이라는 것을 알았음은 물론이다. 그는 양산학교와 보강학교 등지에서 교직에 몸담으며 대중을 계몽하려 애썼다. 그의 교육론을 꿰뚫는 말은 이것이다.‘우매한 지도자는 우매한 대중에 의해 선출된다.’ 아래로부터의 교육과 계몽을 주장하는 말이다. 이 말은 또한 지도자들이 무능하고 어리석다면서 매일같이 지도자를 비판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현대 사회에서도 적용되는 그의 가치관이 구시대적이라면 대체 어떤 것이 진취적인 지도자의 자세란 말인가? 나는 이토록 진취적인 지도자가 우리 역사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 민족에게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우리나라는 훌륭한 지도자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겸손한 척을 하지만 실제로는 학연, 지연 등 출신 성분에 집착한다. 추진력 있는 척을 하기 위해 일을 강행하지만 소신 없는 추진력의 결과는 항상 실패다. 나라를 진보하게 하겠다면서 항상 어영부영한다. 지도자들은 김구 선생을 존경한다고 말만 할 뿐이다. 김구 선생을 닮으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김구 선생을 존경한다고 말을 한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 나는 이들이 이 책임을 지고 진정한 지도자가 되어 우리나라를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아가서 나 역시 김구 선생의 가르침을 받들어 훌륭한 지도자가 되고 싶다. 내가 말한‘지도자의 덕목’들은 그동안 살아가면서 크게 마음에 품고 살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러나 김구 선생의 삶을 통해 진정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내 능력이 부족한 관계로 그의 가르침을 완벽히 수행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덕목을 마음에 품고 살아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이다.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어 김구 선생의 마지막 숙제였던 통일을 해결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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