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소개
| 제목 | 백범, 그 와의 동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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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유지영(옥천여중) | 개최일 | 2015-09-14 | 조회 | 2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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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그 와의 동행 충북옥천여자중학교 2학년 1반 12번 유지영 8월 15일 광복절을 기리며 나는 부모님과 영화<암살>을 보러 갔다. 독립영화인 <암살>은 올해로 70주년을 맞은 광복절에 상영되어 더욱 의미가 크다고 한다. <암살>은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독립투사들의 암살 작전을 다룬 영화이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 분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관심을 갖고 생각해볼 기회를 준 좋은 영화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영화에서의 김구는 광복을 맞이할 때 기뻐하였지만 실제 김구 선생님은 자주적인 독립을 하지 못해 슬퍼하셨다고 한다. 수많은 독립투사들과 김구는 몇 년을 애써 일본과 싸울 준비를 해 온 터이기 때문이다. 그의 자주독립에 대한 의지는 백범일지를 통해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책이지만 처음 김구는 이 책을 자신의 두 아들과 동포를 위해 썼다고 한다. 백범일지 속에 담겨있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1876년 7월 11일 황해도 해주에서 시작된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처음부터 애국심이 남달랐던 건 아니다. 투철한 애국심과 독립정신으로 가득 찼던 그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어릴 적 그는 무척 개구쟁이였다. 아버지의 숟가락을 부러뜨려 엿을 사먹고 아버지의 돈을 훔쳐 떡을 사먹어 부모님께 꾸중을 들었다고 하니 말이다. 가난한 신분으로 인해 양반들의 괄시를 받는 것이 분했던 어린 김구는 과거급제를 위해 글공부에 매달렸다. 그의 일생을 놓고 보면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어쩌면 우리 민족을 살리는 값진 시절이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배움에 대한 갈증은 후에 그를 교육의 길로 향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는 큰 글공부대신 실용적인 학문에 힘을 썼고 1892년 17세의 나이로 조선 마지막 과거시험을 보러가게 된다. 하지만 그는 과거시험의 타락한 모습을 보고 시험보기를 포기하였다. 대신 관상공부를 시작하였고 그는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라며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를 결심한다. 이 구절은 나에게 큰 인상을 주었다. 겉모습이 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마음가짐이 좋지 않다면 모두 부질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후 그는 18세에 동학에 입도하였고 몇 달 후 그를 따르는 사람이 수천 명이 되어 ‘아기 접주’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1896년 3월 9일 그는 치하포에서 일본인 육군중위 스치다를 국모보수로 살해하여 응징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옥중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2년 후 탈옥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 후 그는 민족 교육에 힘쓰고 한인 애국단을 조직한다. 한인 애국단은 상하이에서 결성한 비밀 독립 운동 단체이다. 그와 연관된 독립운동 중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건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봉창의사가 동경에서 일왕 히로히토를 저격한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윤봉길 의사가 일왕 생일 경축식장에 폭탄을 던져 의거한 일이다. 나는 독립운동이 대단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봉창 의사는 일본에서 노동을 하는 노동자였고, 윤봉길 의사는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장사꾼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이들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의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당신을 희생시킨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이후 이 사건을 발단으로 나라 안팎의 동포들도 독립에 대한 희망과 의지가 되살아났다. 또한 그들은 수많은 격려와 지원을 받게 됐지만 그럴수록 일본군은 김구를 잡기위해 더욱 눈에 불을 켰다. 김구는 광복군을 이끌고 일본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임시정부의 주석을 맡게 되었고 독립투사들은 미국 군대식으로 훈련을 받으며 폭파술과 사격술 등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독립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빛을 보지도 못한 채로 광복을 맞이하게 된다. 그가 꿈에도 그리던 독립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밀려들어왔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의 힘이 아닌 다른 나라의 힘으로 나라를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걱정은 미국과 소련이 우리나라를 점령하면서 점점 현실로 다가왔다. 그는 해방된 우리나라가 자유의 나라가 되길 원했다. ‘여러 가지 나무가 어울려서 위대한 삼림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백 가지 꽃이 섞여 피어서 봄들의 풍성한 경치를 이루는 것이다.’라며 국민의 사상을 한가지로 속박하길 원치 않으셨다. 그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민족은 이념을 놓고 싸우기 시작했고 결국 한반도에는 두 개의 나라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 후 백범은 한반도의 통일을 이룩하지 못하고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서거하셨다. 나라와 민족을 자신의 목숨보다 아낀 민족 지도자의 갑작스런 죽음은 안타깝고 애통한 일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나의 소원’이 실려 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이 내용은 백범이 민족을 얼마나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나를 비롯한 후대에 많은 사람들이 개인주의 적이고 나라에 무관심한 요즈음 세상에 경종을 울려주는 이야기이며, 그가 얼마나 위대한 지도자였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로 그를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아오르게 만들었다.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나는 역사 속의 한 독립투사가 된 느낌이었다. 그들의 심정에서 본 일제 강점기는 피부로 더욱 와 닿았으며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내 가슴을 휘저었다. 독립을 위해 희생한 모든 분들이 없었다면 나도 이런 생활을 할 수 없었기에 감사와 존경심을 되새기게 된다. 일본의 계속되는 과거사 부인에 무감각해진 나를 <백범일지>는 다시 한 번 반성하도록 일깨워 주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이 지금 이 시대를 본다면 일본에 대한 분노는 둘째치더라도 제 살길만 바쁜 나 같은 후세에 대해서도 안타깝고 슬퍼하시지 않을까. <백범일지>속의 가장 인상 깊던 구절이 떠오른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이 길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자신의 안위보다 후손들에게 남겨줄 역사를 강조한 선생님의 의지는 점점 애국에서 멀어져가는 후손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과 애국자들을 잃었다. 그들이 나라를 위해 바친 아름다운 순국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는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들의 정신을 받들어 더욱 더 아름답고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그들에 대한 최선의 예의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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