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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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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백범일지 감상문
작성자 박지홍(전주신흥고) 개최일 2015-08-26 조회 2982

백범일지 감상문

 

전주신흥고 1학년 4반 박지홍

 

  백범일지를 읽고 나서 많은 것 들을 알 수 있었다. 우선 백범일지 감상문을 쓰기 전에 백범 김구에 대해서 소개를 해보면 1896년(병자년) 7월 11일 자시에 태어났다. 그리고 본명은 김창수(어릴 때 이름은 ‘창암(昌巖)’ 이라고 한다) 이다. 그리고 김은 안동 김 씨이며 신라 경순왕의 자손이다. 김구는 한글과 한자를 서당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것으로 배웠다는 점에서 김구는 머리가 아주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 하였다. 김구는 과거에 급제하면 진사나 생원이 될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아버지에게 서당에 들어가서 공부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마을에 있는 서당은 양반의 서당이라 김구를 받아 줄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아버지는 난감해 하고 계셨다. 지금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공부 할 수 있는데 이때는 아무리 공부를 하고 싶어도 신분이나 재력의 이유로 공부를 못 했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것 역시 우리나라의 역사이고 이를 바탕으로 변화할 방향을 모색 한다면 보다 더 좋은 역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양반 자식들한테 무시당하는 꼴을 못 보겠다며 평민의 아이들을 모아 놓고 공부 시켜주는 청 수리 생원이라는 사람을 집으로 초대하여 인사를 하고 사랑방을 공부방으로 정하고 집에서 식사를 대접하는 것으로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첫날에 ‘마상봉한식(馬上逢寒食)’뜻은 몰라도 어머니에게 달려가 처음으로 배운 한자를 자랑하고 다녔을 정도로 기뻤다고 한다. 나도 처음 한글을 배웠을 때 엄청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반년 후에 신 존위(지위가 높은 사람인 듯하다) 이 사람이 원래 있던 선생을 내보내고 다른 선생을 불렀는데 이유는 밥을 많이 먹는다는 터무니없는 이유였다. 사실 진짜 이유는 이 신 존위의 아들이 김구는 일취월장 하는 반면에 너무나 공부를 못하기 때문에 김구를 시기 하여서라고 한다. 그리고 김구는 선생님이 나가신 뒤에 한동안 울기만 하였다고 할 정도로 선생님을 존경하였다고 한다. 그 뒤에 1892년 우리나라의 마지막 과거 시험이 있을 때였다. 이때 김구의 선생님은 김구를 과거시험을 보게 하면 좋을 텐데 글씨를 종이에 쓰면 익숙하지 않아서 잘 못 쓸 테고 그래서 장지에 쓰게 하도록 마련할 수 있냐는 말을 김구의 아버지께 한다. 그래서 김구의 아버지는 기쁜 마음으로 종이를 사서 선생님에게 주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김구에게 교범대로 정성을 다하여 연습을 시켜서 종이가 검은색이 될 정도로 연습을 하였다고 할 정도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었는지 알 수 있다. 이 정도는 연습해야 노력했다고 하는데 이것을 보고 평소의 내 자신이 부끄러워 졌다. 그 후에 김구는 과거시험장에 과거를 보러 갔는데 과거 시험의 비리와 폐단을 보고나서 공부를 하여 입신양명(立身揚名) 하겠다는 꿈을 접고 서당을 그만두고 풍수와 관상공부를 하기 로 다짐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책을 많이 읽었다. (상서, 손무자, 오기자, 삼략, 육도 등) 내용이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계속 읽었다고 한다. 처음에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읽으면 이해가 될수 있다는 끈기를 나는 배울 수 있었다. 김구선생은 동학농민 운동에 참가하여 여러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 후 을미사변이 일어나게 되고 김구는 우연히 을미사변을 일으킨 일본 사무라이를 죽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죽였다고 공포를 하고 3개월 동안 집에 머물러 있다가 일본 순사들에게 잡혀가게 된다. 한 나라의 국모를 시해한 일당을 죽였다는 죄를 정당하게 여기는 김구 선생을 나는 옳다고 생각 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옳은 일은 아니지만 한나라의 국모를 시해하고 시신을 불태운 죄는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 한다. 심문을 받고 와타나베라는 순사를 법정에서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와타나베가 일본인을 죽인 적이 있냐는 답변에 나라의 국모를 해친 왜놈을 때려 죽였다고 말하고 큰소리로 ‘통상-화친을 맺어 놓고서 그 어느 누가 왕과 왕후를 죽일 수 있느냐!’라는 내용의 말을 죽을 힘을 다해 외치자 와타나베는 두려워하며 대청 뒤로 숨었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 김구선생은 감옥에서 거의 왕처럼 대접을 받으면서 남은 기간을 보내게 된다. 이 대목이 백범일지에 나온 내용들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나는 이처럼 자신의 뜻을 뚜렷하게 말하고 일본의 잘못을 비판하면서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김구선생을 존경한다.

  그리고 김구선생만큼 대단한 인물을 꼽자면 김구의 어머니이다 김구선생이 투옥생활을 할 때 하루도 빠짐없이 먼 거리를 찾아와서 면회하며 사식을 넣어준다는 점에서 어머니의 모정을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훌륭한 사람들을 보면 어머니나 아버지가 뒤에서 조력해주어 훌륭한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평소에도 해보긴 했으나 여기서 나오는 김구의 어머니를 통해서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김구는 투옥생활을 하다가 사람들을 모아서 탈옥을 하게 된다. 탈옥을 하는 과정에 큰소리가 나 발각 될 수 있었지만 정문으로 도망치다 우연히 경비가 없는 것을 보고 당당히 탈옥을 하였다. 그리고 서울을 향해 방랑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얼마 후, 부모님과의 재회를 하게 되고 자신에게 한학을 가르쳐준 고 능선 이라는 선생을 오랜만에 뵙고 싶은 마음에 찾아 간다. 고 선생의 아들 원명의 장녀와 혼약을 맺었으나, 고 선생이 일방적인 파혼을 선언 하였는데 이유는 둘째 며느리가 김창수(김구의 본명)는 재산이 없어 김창수에게 딸을 내어 주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을 고 선생에게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도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 사람의 재산이나 신분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물질주의적 풍조,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그리고 김구의 아버지는 별세하시게 된다. 병세가 위중하여서 탕약으로는 효과를 보지 못하고 열흘정도 김구의 무릎을 베고 주무시다가 영원한 여행을 떠나셨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시간이 흘러 김구선생은 을사조약을 반대하는 운동에도 참여하였고 안중근 선생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사건도 발생하게 된다. 이 사건은 비록 테러라고 일본은 주장하지만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 바쳐 싸우신 안 의사의 정당한 독립운동이라 생각한다. 이후 신민회가 활동을 시작하고 무관학교가 설립된다. 그리고 안악사건(안명근 사건이라고도 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어 김구는 다시 한 번 투옥생활을 하게 된다. 심문과정에서 첫 번째 투옥생활을 할 때 만났던 와타나베를 만난다. 김구선생은 와타나베를 알아보지만 김창수에서 김구로 이름을 개명한 김구를 와타나베는 알아보지 못하고 이상한 X선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을 속일생각 하지 말라고 한다. 그 후 와타나베는 김구 선생에게 15년형을 선고한다(이후에 2년형이 추가되어 총17년의 투옥생활이다). 이후에는 신민회가 105인의 사건으로 인해 해체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이를 신민회사건 이라고 한다. 옥중생활을 하는 중에도 어머니는 꾸준히 면회를 오신다. 역시 모정이라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것 같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가실 수 있는 어머니의 마음이란 어떻게 표현 할 수 없는 한량없는 사랑이다. 17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중국으로 망명을 가게 된다, 그리고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경무 국장까지 맡게 되지만, 내무총장 시절에 자신의 부인과 사별하게 된다. 부인 최 준례 씨는 김구선생으로 인하여 많은 고생을 했으나 그것 또한 나라를 위해 공헌한 것이라고 여겨 그분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뤄 드렸으며 묘비도 세웠을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김구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중요 직책들을 맡았다.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독립투사 두 분의 활동 기록이다. 1.이봉창 의사의 의거 활동, 도쿄에서 궁으로 돌아가던 일왕에게 수류탄을 던진 의거였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2.윤봉길 의사의 의거 활동, 홍구공원 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져서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후에 이봉창의사나 윤봉길의사의 의거활동 모두 김구선생의 주도하에 실행되었다는 것을 일본은 알게 되었지만 그들은 밝히지 않기로 한다. 이후에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광복군이 일본과 투쟁을 계속하는 중에 어머니의 별세소식을 듣게 된다. 성함은 곽낙원 여사이시다. 80평생 동안 거의 모든 일은 스스로 해오셨고 아들을 매우 사랑하신 어머니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드디어 일제가 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광복이 실현되게 된다. 하지만 기쁜 소식들을 전해 듣다가 한반도의 허리가 잘려나갈 사건이 일어난다.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인해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나뉘게 된다. 김구선생은 이 사건 만큼은 막아야 한다며 많은 노력과 함께 평양에서 열리는 회의에도 참석하는 등 분단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남한에 임시정부를 세우고 북한은 김일성 남한은 이승만을 중심으로 단독 정부가 세워짐으로써 지금까지도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살아가고 있다.

  김구 선생은 1949년 6월 26일 육군소위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74세의 나이로 운명하신다.

김구 선생은 우리나라의 광복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셨고 광복 이후에는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서 투쟁하시다 결국 운명하셨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셨고 그 때문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이 정도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제 때 독립투사 분들과 한국 전쟁 때 용감하게 싸우신 참전용사들 그리고 김구선생처럼 활동하셨던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구선생이 암살당하지 않으셨다면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며 우리나라가 더욱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김구선생께서 진정으로 원하신 것은 군사력으로 강한 나라가 아니라 문화의 힘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고조선 때 홍익인간 즉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이념 하에 한반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가 강해지고 발전하려면 우선 우리국민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민족의 뿌리가 무엇인지 그것부터 알아야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제의 침략 때 일본이 실시한 정책은 문화말살정책이다. 그것은 한국의 5000년의 역사를 없애려 하는 무서운 정책이다. 만약 이게 성공했다면 우리민족의 뿌리를 제거함으로써 우리는 한국 국민이 아니라 일본 국민이 되었을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의 문화가 얼마나 중요하고 강력한지 알 수 있다. 한국사가 수능에서 필수과목이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인 데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왜 한국사를 하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다. 한국사는 우리 조상들이 이뤄낸 업적과 어떻게 해서 우리가 여기까지 걸어왔는지 알 수 있는 역사적 발자취인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 갈 수 있는 것이 역사이며 우리가 해야 될 일이다. 김구선생께서도 우리의 문화를 통해 한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게 해달라는 말씀을 후손들에게 전하고자 하신 것이다. 물질주의는 만능인 것 같지만 한계성에 도달한다. 그리고 지구 또한 마찬가지이며 이런 유한한 물질을 택하는 것 보다 무한한 우리의 정신,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우리의 목표로 삼는다면 한국은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남의 것을 모방하고 따라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높은 문화를 근원으로 모범이 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김구선생께서는 우리나라는 교육의 힘을 발전시켜서 강해지는 나라를 만들고자 하셨다.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학생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고 주입식 교육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것은 학생 스스로가 답을 찾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제한하며 상상력과 창의성 발전에 장애가 될 수 있는 요인 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허점이며 안타까운 일이다. 모든 사람은 잠재적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따뜻한 시선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칠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항상 웃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우선 자기 자신이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자기 자신부터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남을 따듯하게 해줄 수 있다. 그리고 김구선생님께서 후손들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모든 일은 자기 자신이 평온해야 집안이 평온하고 집안이 평온해야 나라도 평화롭고 곧 세상이 평화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김구선생의 업적뿐만 아니라 고종황제 때부터 한국전쟁 전까지의 역사를 확실하고 생생하게 기억 할 수 있게 하는 백범일지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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