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소개
| 제목 | 백범선생님의 소망은 언제나 ‘통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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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김경옥(옥과고) | 개최일 | 2015-07-13 | 조회 | 25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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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선생님의 소망은 언제나 ‘통일’ 옥과고등학교 2학년 2반 김경옥 얼마 전 폴란드 친구와 ‘역사를 왜 배우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애국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애국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이에 그 친구는 왜 애국을 해야 하는지 현실적으로 어떻게 애국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시했었다.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진 내가 ‘애국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대답조차 못한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학교에서 백범일지를 받았다. 혹시 이 책을 통해 그때 찾지 못한 답을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첫 부분에는 대부분의 자서전이 그러하듯 어린 시절이 나왔다. 그는 우리 역사에 많은 업적을 남긴 독립 운동가이자, 민족 운동가이기에 어릴 때부터 우리와 다르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읽어나갔다. 내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그는 전혀 우리의 어린 시절과 다를 바 없었다. 사고를 치기도 하고,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와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이 되었을 때, 대부분의 청년들과는 달랐다. 젊은 나이에 길고 긴 독립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 많은 젊은이들과 지식인들이 일제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주춤하고 있을 때 그는 확고한 자신의 신념과 의지대로 활동을 펼쳐나갔다. 18살에 동학에 입교하여 19살에 동학 농민 운동에 참여하고 의병운동을 하며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 육군 중위인 쓰치다를 살해하기도 했다. 또한,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무지한 국민들을 위해 장련에 광진학교와 안악에 양산학교를 개설하고, 황해도의 각 군을 순회하며 농민들을 계몽시키기 위한 노력을 펼쳤다. 그의 우리나라 독립을 위한 운동이 긴 시간 지속되고 마침내 우리나라가 광복이 되었을 때, 남과 북은 미국과 소련에 의해 신탁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에 김구 선생은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 사항에 대하여 반박하였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미국과 소련의 영향을 받은 남과 북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민족이 분열 될 상황에 놓여있었다. 오랜 세월을 오직 독립만을 우리 민족이 예전처럼 함께 살기를 원했던 그에게 기쁜 광복 후 벌어진 이 상황은 절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만약 내가 저 상황에 처했다면 독립을 위해 바쳐온 나의 청춘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와 맥이 풀리고 더 이상 민족을 위해 무언가를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역시 그는 달랐다. 그는 민족을 다시 하나로 통합시키기 위한 활동을 펼쳤다. 남한만의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국제연합의 결의에 반대하고, 남과 북에 서로 다른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제출하고,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김규식, 김원봉 등의 독립 운동가들과 남과 북을 오가며 사람들을 다잡아보기 위해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 노력하셨다. 이 책 속에는 그의 민족에 대한 깊은 사랑과 애국심이 베여있어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리고 만약 그가 그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같은 민족끼리 죽고 죽이는 참혹한 전쟁을 겪거나 가족끼리 멀리 떨어져 서로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살아가거나, 같은 민족끼리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는 비극은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지금의 현실은 안타깝게도 백범선생님이 바라던 것처럼 우리는 하나가 되지 못하고, 남북이 분단된 지 60여년이 넘게 살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백범이 바라던 소원인 남북이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는데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를 위해서는 남과 북의 차이를 좁히기 위한 활동이 많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개성공단과 같은 프로젝트를 확대함으로써 지속적인 경제 교류를 확대한다거나 대중매체의 영향이 커지는 것에 착안하여 영화나 음악을 제작하는데 있어서 합작을 만드는 등의 문화적 교류를 확대하여 남과 북이 서로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 인식을 털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한때 우리처럼 분단국가였던 독일이 과거 동독과 서독의 지속적인 교류와 경제적 협력을 통해 서로의 부정적인 감정을 정화시키고 이를 계기로 통일을 이룩한 지 어느새 30여년이 흐르고 있기에, 우리도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집착하여 서로를 비방하기보다 서로의 동질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통해 하루 빨리 통일을 이룩했으면 한다. 그렇게만 되면, 지하에 계신 백범선생도 우리 후손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당당한 모습으로 전 세계의 무대에 노우스코리아, 싸우스코리아가 아닌, 하나의 코리아로 불리는 그날을 염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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