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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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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꺼지지 않는 촛불, 『백범일지』를 읽고
작성자 김은송(한일여중) 개최일 2015-06-19 조회 2613

꺼지지 않는 촛불, 『백범일지』를 읽고

 

 

한일여중 3학년 4반 김은송

 

‘한나라 국민이 의로써 싸우다가 힘이 다하여 망하는 것은 거룩하게 망하는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민족 반역자들을 보시며 하신 말씀이다. 『백범일지』. 국어를 공부하든 역사를 공부하든 민족의 얼과 정신을 배우는 부분에서는 늘 나오는 책이다. 수업시간에 배울 때에는 독립을 추구하던 김구 선생께서 쓰신 책이구나 하는 정도만 알고 있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쳐 오신 김구 선생의 인간적인 면모와 숭고한 정신을 더 자세히 알게 되어 가슴이 벅차올랐다.

 

김구 선생은 어린 시절 이름이 창수였으며 백운방 텃골에서 가난한 농사꾼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성한 숟가락을 부러뜨려 엿을 사 먹기도 하고, 시내에 물감을 풀고 놀다가 어머니께 매를 맞기도 하면서 다른 아이들과 특별함 없이 어울려 놀았다고 한다. 훌륭한 위인들은 어릴 적에도 비범한 면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읽었지만 시작은 우리와 너무나 다를 바가 없이 평범했다. 그러나 책을 읽어감에 따라 시작이라는 출발점은 평범한 사람들과 같지만 뜻을 품고 집념과 용기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삶의 과정은 우리와 사뭇 달랐다.

고종의 아내이자 조선의 국모였던 명성황후가 일본 자객들에 의하여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이후, 김구 선생은 치하포에서 조선인의 행색을 내며 주막에 앉아있던, 국모를 시해했을 수 있는 일본인 장교를 죽이게 된다. 그 상황 속 나였더라면 우리나라와 민족에게 독버섯같은 존재인 일본 장교가 눈앞에 있어도 죽여야 할지를 고민하고 망설이고 두려워 재빨리 결단하지 못하고 어영부영하다가 일을 그르치고 말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김구선생은 그의 스승이자 유학자이셨던 고능선 선생이 말씀하신 “가지를 잡고 오르는 것은 그다지 대단할 것은 없다. 벼랑에 매달려 손을 놓을 수 있어야 장부라 할 수 있다.”를 되새겨 주저하지 않는다.

행동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그의 그러한 행동은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고 나아가 백범의 세 번째 투옥까지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게 해주었다. 나라가 망해도 그 나라의 백성이 망하지 않는 이상 국가는 절대 망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었던 백범은 세 번째 투옥의 원인이 되는 신민회를 비밀리에 결성하게 된다. 신민회 활동으로 백성들을 교육하고 계몽하다 결국 일본에게 발각되고 만다.

그때 김구 선생은 처음 자신의 이름을 묻는 것부터 시작하던 일본 교관이 촛불을 밝히고 밤을 지새우며 자신을 심문하는 행동을 통해, 침략자들은 남의 나라를 한꺼번에 삼키고도 밤을 지새우면서도 자신의 직무에 충실히 행하는데, 자신은 과연 몇 번의 밤을 지새우며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일했는가 생각하며 부끄러워한다. 이제껏 나는 김구선생을 나라를 위해 청춘이라는 꽃을 버리고 자유라는 하늘을 보지 못한 채 걸어가신 훌륭한 위인으로만 생각했는데, 나라를 빼앗은 원수에게도 자신을 비춰 반성하는 그의 인품에 또 다시 존경스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김구선생의 곧은 신념과 바른 자세는 그의 어머니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김구의 가족을 비롯한 친척들은 과하게 술을 좋아했었다고 한다. 김구의 삼촌은 술에 취해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을 두들겨 패고 상여를 메러 왔던 인근 양반들의 종까지도 때려 쫓아버린 일로 인해 결국 발뒤꿈치를 잘라 평생 걷기 어렵게 한 결정이 내려지자 백범의 어머니가 어린 백범에게 “네가 술을 먹는다면 나는 자살을 할지언정 그 꼴은 결코 보지 않겠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김구선생은 술을 마시지 않으셨다. 단호하며 곧은 어머니의 성품이 어쩐지 김구선생과 많이 닮은꼴인 것 같아 자식에게 어머니의 삶의 방식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독립운동을 한다며 떠나던 아들의 뒷모습을 그저 지켜보고 묵묵히 뒷바라지를 해 주는 어머니를 통해 내가 백범의 어머니였다면 어땠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물론 독립이라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모진 고난도 마지않았던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겠지만 늘 긴장 속에서 아들의 안전을 염려하면서 옥에 갇힌 아들을 담대히 응원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남편이 아들대신 투옥되는 일도 겪고, 인생의 반을 손자들을 돌보고 또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아들을 뒷바라지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인 것 같다. 대단한 용기와 아들에 대한 사랑과 신념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어머니 가르침으로 김구선생의 인품이 훌륭해서인지 선생의 주변에는 용기 있고 신뢰 있는 운동가들이 참 많았다. 영원한 즐거움을 맛보고 싶어 왔다던 일왕 히로히토를 저격하하여 우리 민족 마음속에 진한 여운을 남기고 가신 이봉창의사나 독립이라는 사명 아래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하여 나라에 대한 사랑으로 죽음의 두려움마저 극복한 안중근의사, 홍구공원에서 일왕의 생일 경축식장에서 폭탄을 던져 ‘뜻이 있는 곳엔 길이 있다’는 것을 일깨우신 윤봉길의사, 군밤장수로 가장하여 이완용을 칼로 찔러 허장성세를 일삼던 평범한 사람에서 삼사일언(三思一言)을 실천하신 이재명의사. 이 모든 의로운 분들은 백범의 세계에서 나온 독립운동가들이다.

이외에도 강계성 관군을 공격하고자 했던 김이언, 동학 농민운동의 선봉장 자리를 내어주는 최시형도 백범과 함께 나라를 위해 싸우던 독립 운동가들이자 그의 동무들이었다. 영원한 건 없다지만 그들의 꺾이지 않는 독립정신은 영원하였다. 백범 김구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지사들은 한국 사람이라면 지녀야 할 마땅한 애국심을 몸소 실천하고 보여주셨다. 일본이 우리민족들에게 총과 칼을 들이며 일제 강점기로 몰아넣을 때면 서로에게 의지하고 자신의 신념을 맡겼던 무력으로 항거 의사, 맨몸으로 맞서 저항하신 열사, 모든 것을 다 바쳐 나라를 위해 일하신 지사 모든 독립 운동가들에게 박수를 보내어야하며 그 분들의 땀과 눈물로 지켜낸 이 땅위에서 내 삶을 더 뜻 깊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내내 마음속까지 시원해지는 박하사탕을 물고 있었던 것 같았다.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아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셨던 백범 김구 선생의 삶과 정신은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아 내 삶의 나침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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