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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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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민족의 스승 백범
작성자 김윤아(이화여고) 개최일 2015-05-21 조회 2540

민족의 스승 백범

 

 

이화여고 1학년 예반 8번 김윤아

 

 아침 등굣길에 버스를 탄다. ‘이번에 내리실 정류소는 강북삼성병원, 경교장, 서울역사 박물관입니다.’ 내가 버스에서 하차 할 때 나는 안내 방송이다. 매번 듣는 말인데 백범일지를 읽고 나서 ‘경교장’ 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뚜벅뚜벅 교문을 향해 걸으면서 내 주변 가까이에서 김구 선생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니…….

 무언가 그리움이 밀려왔다. 경교장,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의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했던 역사적 장소이다. 1994년 6월 26일, 김구가 집무실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의해 서거한 곳이기도 하다. 젊었던 시절, 그가 동학에 입도하게 되고 의병활동을 하다가 치하포에서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인을 죽인 후 처음 투옥하게 된 시기로부터 경교장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때 까지 당신은 오직 조국의 독립만을 염원하셨다.

 백범일지는 김구선생님께서 독립운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자신의 죽음이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한 일을 시작할 때에 자신이 지낸 일을 두 아이들에게 알리고자 유서 대신으로 쓴 것이었고, 민족 독립운동에 대한 자신의 경륜과 마음에 품고 있는 뜻을 알리고자 쓴 것이었다. 그가 얼마나 나라를 사랑하셨는지 이 책을 읽는 순간 마다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러한 이유를 헤아리고 김구 선생님께서 직접 쓰신 일지를 읽으면서 마치 내가 독립운동가가 된 것처럼 긴장하며 읽어 내려갔다. 그를 위인전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이름만 알고 있었지, 이 책에서 보여진 그의 크나큰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함에 부끄러워졌다. 그와 더불어 그의 많은 동지들이 나라를 위해 죽어간 사실도 나는 알 수 있었다. 독립운동에 자신의 한 몸을 바치겠다고 일본에서 상해로 찾아오신 이봉창 의사께서 죽음의 길로 가시면서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는 장면은 정말 인상 깊었다. 비록 일본천황을 죽이지 못했지만 이 사건으로 한국 사람이 일본에 완전히 굴복하지 않았음을 세계만방에 알렸으니 어찌 충분히 성공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겠는가? 그리고 윤봉길의사께서는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 고관에게 중상을 입혔고 전 세계에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였다. 사진에서 엿볼 수 있는 그의 굳건한 의지로 인해 나의 마음 한 구석이 조금씩 아련해졌다. 그 외에도 재정적으로도 김구를 도와주신 피치 부부와 저 선생의 식구들과 김구선생의 피신시절 외교와 정보에 치중하면서 열심히 활동한 박찬익, 엄항섭, 안공근 등 여러 분들의 노력들이 어쩌면 우리가 독립의 길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 같다. 무엇보다도, 많은 독립 운동가들께서 지금 우리 자손을 위해 세상을 떠나셨다. 김구선생님께서는 독립을 위해 먼저 죽어간 동지들이 이 일들을 하고 떠나간 것에 대해 만족하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나 역시도 그러하다. 그리고 김구 선생이 있기까지 뒤에서 물심양면 도와주신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들이 오직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의 어머니는 청년과 노인들이 굶주리는 것을 몹시 애석해 하셨고, 생활이 궁핍해져 도와주지 못함에 애석해 하셨다. 밤이 으슥해지면 야채장수가 버린 배추 겉대를 먹을 만한 것을 골라 소금물에 담가 두었다가 찬거리로 먹었다. 생활비를 아껴가며 독립운동 하는데 돈도 보내주시고, 또한 김구의 아들도 돌보았으므로 김구는 이런 어머니가 계셨기에 독립운동에 몰두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백범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가 어려운 조건 속에서 독립 운동하는 아들 백범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헌신을 다한 모습이 우리의 어머니상임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김구선생님과 오직 독립을 위해 몸을 바치신 그 분들의 뜻을 알아야 할 것이다.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우리의 서울은 될 수 없듯이 또 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서울은 오직 우리의 서울이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하여야 한다고 하셨다. 이것을 깨닫는 날이 우리 동포가 진실로 독립정신을 가지는 날이고, 독립하는 날이라 하셨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라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김구 선생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는 없었다. 70평생을 이 소원을 위해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이 소원을 위해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렇게 그 분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숨져간 독립운동가들 덕분에 자유를 누리고 살고 있지 않은가?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 말이다.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독립은 이루어질 것이라 믿어 오셨다.

 우리는 지금 마음을 고쳐먹어야 할 때이다. 대한 사람이기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크고 훌륭한 애국자가 엄청나게 많이 배출되어서 저마다 이 나라를 알고 평생 이 나라를 위해서 힘을 다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애국지사들께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 본다. 우리 민족은 어짐을 좋아하는 민족이라 하셨으니, 앞으로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사모하도록 하자.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친, 민족의 스승이신 김구 선생님의 뜻을 우리들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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