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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를 읽고나서] 백범김구, 우리나라의 등불 서해고등학교 신아정 우리나라에서 백범 김구를 모르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아마도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의 영유아를 빼면 거의 없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이다. 왜냐하면, 그는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 아래에서 벗어나 우리나라가 주권을 회복하고 독립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한 위대한 지도자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또 그의 삶과 그의 정신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또 몇 명이나 될까? 나 또한 그저 나라를 지킨 애국지사로 그를 알고 있을 뿐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서 어떠한 마음으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나서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우리 학교에서 ‘백범일지’라는 책을 읽고, 김구를 좀 더 알 기회를 주었다. 처음엔 그저 그가 무엇을 한 사람인가를 중점으로 읽었지만 읽다 보니 점점 책에 빠져들어 내가 마치 백범 김구인 것처럼 몰입하게 되었다. 책 속에서 백범 김구는 누구보다도 높은 성품과 큰 그릇을 가진 인물이었다. 또한, 그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나라를 위해 애쓴 진정한 애국지사였다. 내가 백범일지를 읽던 중 백범 김구의 높은 성품과 큰 그릇에 감탄한 대목이 있다. 그 대목은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 하다’는 구절을 보고 김구가 자신의 인생을 결심하는 장면이다. 김구는 과거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 의문을 가졌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편법을 써서 과거시험을 보고 벼슬을 얻어서 편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과거 제도에 실망한 김구는 다른 길을 연구하리라 마음먹고 관상에 관해 공부했다. 하지만 자신의 얼굴을 관상으로 하나하나 따지자 좋은 상이 하나도 없어 비관에 빠졌다. 그때 김구는《상서》에서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 하다’는 구절을 보고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옳은 길을 가기위해 편한 길을 두고 다른 길을 찾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자신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백범 김구는 과거의 부정부패를 본 후 미련 없이 돌아서 다른 길을 찾았다. 그리고 새로 관심을 갖게 된 관상에 대한 학문을 공부하다가 ‘마음 좋은 사람이 제일 좋다’는 말에서 깨달음을 얻고,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에게 부끄럽지 않은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그의 삶 곳곳에는 그의 애국지사다운 면모가 배어 있었다. 1914년 백범 김구가 서대문 형무소에 있을 때 친일로 돌아선 인사가 많았으나 김구는 ‘몽우리돌’로써 한 길을 가겠다고 다짐한 뒤, 결심의 의지로 호와 이름을 바꾼 점에서도 그의 훌륭한 의지와 애국심을 느낄 수 있었다. 주변에서 친일로 돌아서는 사람들이 늘어가도 꿋꿋이 나라에 대한 마음을 접지 않고 포기하지 않은 백범 김구야 말로 진정한 애국지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을 보면, 하나님이 네 소원이 무엇이냐 재차 물어도 계속 서슴지 않고 대한 독립을 외칠 것이라는 백범 김구를 볼 수 있다. 또 김구는 인천옥에서 장티푸스로 고통이 극도에 달하자 다른 죄수들이 자는 틈을 타서 이마에 손톱으로 ‘충(忠)’자를 새기고 허리띠로 목을 매어 자살을 시도했던 것에서도 그의 애국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 작은 나라를 위해 죽을 때까지도 충성을 맹세하고자 했던 것이다. 치하포에서 우연히 본 조선인 행색을 하는 일본인을 보고 민 황후를 살해 한 미우라이거나, 미우라의 공범일 것이라 생각하고 때려죽인 일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 후에 경무청에서 당당히 왜놈 순사를 꾸짖기도 했다. 이처럼 김구는 일본에 절대 굽히지 않고 조국만을 위한 생각과 행동을 한 진정한 애국지사이며, 이런 면모는 당시 우리 민족을 깨우치게 하고, 더 나아가 그들이 독립을 위해 나서게 하는 발판이 되었다. 높은 성품과 큰 그릇을 가진 인물, 그리고 뜨거운 애정을 가지고 나라를 위한 숭고한 정신을 보여준 백범을 나는 다음 세 가지 단어로 설명하고 싶다. 첫 번째, 백범 김구는 ‘아침 같은 리더’이다. 힘없이 빼앗긴 나라를 위해 주변 사람들을 이끌어 힘을 모은 김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리더라고 할 수 있다.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강한 일본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김구는 그의 리더십으로 국민을 이끌어 함께 독립을 외쳤다. 김구는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한인 애국단을 결성하여 이봉창, 윤봉길 같은 애국지사들을 지휘했다. 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최초 정식군대인 광복군을 조직하여 미군 특수사령부와 합동 광복군을 침투시킬 계획을 세웠다. 이처럼 어둡기만 했던 우리 조국에 나타나 서서히 빛을 내준 그는 대한민국에 아침 같은 리더였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백범 김구는 ‘대한민국’이다. 내가 김구를 대한민국이라고 거창하게 표현한 이유는 단순히 김구가 우리나라의 독립을 이끌어서가 아니다. 김구는 국모를 위한 복수로 치하포에서 벌인 일본인 살인사건으로 사형을 받았지만, 고종황제의 분부 덕에 형을 면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애국지사로 열정적인 활동을 하여 자신의 꿈인 대한민국의 독립을 이끌었다. 대한민국은 일본의 강제적인 지배하에 갖은 고난과 쓰린 슬픔을 앓았지만 많은 국민들의 사랑으로 지금은 웃음소리가 흘러넘치는 행복한 나라가 되었다. 이처럼 김구와 대한민국은 시련을 겪고 결국엔 그마저도 이겨낸 긍지와 끈기가 매우 닮았다고 생각해 백범 김구의 일생은 대한민국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 백범김구는 아버지이다. 김구의 삶은 아버지처럼 많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고, 어떨 때는 나의 잘못을 꾸짖기도 한다. 그는 많은 애국지사 활동으로 광복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는 많은 옥살이와 수십 년의 타향살이를 해야만 했다. 백범일지를 통한 그의 삶은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흔한 명언의 주인공이었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또 다른 무언가를 희생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김구는 잔혹하지만 꼭 알아야 하는 우리나라의 과거에 대한 나의 무심함을 꾸짖었고, 거창한 목표만 만들어 놓은 채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나를 꾸짖었다. 김구의 삶은 모두의 열정적이고 냉정하지만 다정한 아버지가 되어 많은 교훈을 준 것이다. 일제강점기하에서 가뭄에 내린 단비 같은 그는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존재였고, 나에게는 ‘아침 같은 리더이며, 대한민국 그 자체이자 훌륭한 아버지’ 라 여겨진 김구. 아니 우리민족의 진정한 스승 김구 선생님. 그 당시 어두웠던 우리나라에 비췄던 그의 등불은 아직까지도 내 마음 속에 남아 은은하지만 눈부신 빛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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