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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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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민족의 아버지 백범(白帆)의 자서전을 읽고 나서
작성자 나성우(장훈고) 개최일 2013-09-07 조회 3191

민족의 아버지 백범(白帆)의 자서전을 읽고 나서

 

장훈고 나성우

 

[호국 보훈 나라사랑의 달인 6월을 맞아 학교에서 배부한 백범김구 선생의 자서전을 접하게 되었다. 김구라는 존함은 일찍이 어려서부터 TV, 라디오, 신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가 정확히 무엇을 했고, 또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송구스럽게도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했고 독립운동의 참된 의미와 가치를 몰랐었던 나는 아시아 평화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신 안중근 의사라든지, 도시락 폭탄을 투척하여 여러 고위 장군들을 폭사시킨 윤봉길 열사 등의 표면적인 ‘업적’이 두드러진 위인만을  진정한 나라의 영웅이자 독립운동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자서전을 읽고 난 후 그의 진실된 삶과 인간다움, 독립에 대한 끝없는 열망과 투쟁을 느낄 수가 있었고, 그가 모든 독립  운동가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민족의 아버지였음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소중한 가르침과 깨달음을 얻은 나는 부족하지만 이 감상문을 통해 파란만장했고, 희생적인 삶을 사셨던 백범김구 선생님께 경의를 표하며, 자라나는 새싹들과 미래를 바라보며 전진하는 청소년, 더 나아가 훗날 세계무대에 당당히 그 위상을 떨칠 대한민국에게 이 책이 나침반 역할을 하는 지침서가 되기를 희망한다.]

459페이지의 길고도 짧았던 여정을 마치고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나는 죄책감에 견딜 수가 없었다. 오로지 구국의 길, 민족 독립의 길만을 모색하시고 자신의 몸은 헌신짝처럼 희생하신 김구 선생을 생각하니 단지 나의 개인적인 이익과 행복만을 위해 책을 읽고 김구 선생님을 이용했다는 생각에 가슴 한 켠이 무거워지고 내 자신이 너무도 이기적이고 초라해보였다. 누군가 나에게 이처럼 진정한 깨달음을 주신 백범 김구 선생이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그를 ‘ 푸른 소나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시사철 언제나 푸른빛을 띄는 고매하고 신성한 소나무가 거친 눈보라가 몰아쳐도, 비가 빗발치듯 쏟아져도 그 기품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것처럼 지극히 평범했던 해주 텃골의 개구쟁이 김창수가 상하이 대한임시정부의 주석이 되어 독립을 일구어 내기까지 무수한 일제의 눈보라와 빗방울이 닥쳤으나 김구는 고된 시련을 이겨내는 한 그루의 소나무처럼 꾸준하고 변함없는 상풍고절(霜風高節)의 자세로 독립, 오로지 독립만을 위하여 묵묵히 참고 견디어 내셨다. 이처럼 백범의 지조있고 결코 흔들리지 않는 모습은 푸른 소나무로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을것이다.
1876년 7월 황해도에서 가난한 농민의 외아들로 태어난 김구선생은 집안의 궁핍함과 당시 신분제도의 영향으로 인한 양반세력가들의 멸시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학문에 열중하였다. 하지만 첫 과거시험을 보러갔을 때 그는 응시 과정에서 이미 썩을대로 썩어버린 과거의 모습과 매관매직의 추악한 세태를 보고  너무나 부패해버린 당대 현실에 회의를 갖고 그 때부터 글 공부를 단념하고 현실타파의 개혁정신을 가지고 혁명가 적인 사상을 갖게 된다. 이렇듯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조국이 시국의 상황임을 깨닫고 당대의 흘러가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불굴의 의지를 지닌 김구 선생을 보면서 이리저리 휩쓸리고 신념이 뚜렷하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나를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 시험을 계기로 시작된 김구 선생의 신념과 애국은 동학에서 출발한다. ‘도를 행하여 새 나라를 새운다‘는 동학의 근본취지와 신분의 차별이 전혀없는  동학의 모습에 매료된 김구선생은 스무살 즈음 동학에 입도하게 되는데, 선생은 단순히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도(道), 즉 실천을 행함만이 동학의 의의가 있다고 보았다. 이에 비록 성공하지는 못하였지만 김구 선생은 18살의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동학 반란이 일어났을 때 함께 군사를 일으켜 앞장서기도 하였다. 이렇게 자신의 뚜렷한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계셨던 김구 선생의 실천적 행동은 치하포 의거에서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명성황후의 시해사건으로 인해 가슴속으로 의분을 품고 있었던 백범은 치하포에서 긴 칼을 차고 있던 스치다 중위를 처단한다. 이는 단순한 살인행위가 아닌 일제 치하에 있던 참을 수 없는 슬픔과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분노가 담긴 백범의 대담한 기상이요 극심한 일제의 수탈 속에서도 누구 하나 나서지 않던 당대 각 계층들에게 경종을 울린 사건이리라. 의거 직후 백범은 스치다가 소지하고 있던 금전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포고문에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이 왜놈을 죽였다고 쓰고 자신의 이름과 사는 곳을 모두 밝혀 일제에게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셨다. 이 사건으로 백범은 인천 감리서에 수감되어 주리를 트는 고문을 당하는 등 힘겨운 재판을 받게 되지만, 오히려 그와 반비례하여 그의 의지와 결단은 더욱 굳건해져서 재판때마다 법정의 일본인 감리사 와타나베에게 호통을 치며 훈계를 하니 와타나베놈은 그 호랑이같은 위엄과 기개에 벌벌떨고 김윤정을 비롯한 조선의 간수들과 순검들이 그 기개를 칭송하니 심적 괴로움과 육체적 고통을 일제에 대한 물러섬 없는 그의 신념으로 이겨내는 김구선생을 보고 나는 다시금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독립운동의 지속적인 활동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한 선생은 감옥을 탈옥하고 한동안 떠돌이 중 생활을 하며 견문을 넓히던 중에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자신의 허벅지 살을 잘라내어 그 피를 마시게 하고 살점은 구워 고기로 드렸다는 대목에서 나는 김구의 사내답고 강한 신념 뒤에 있었던 효성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또 다른 일화로 대한 임시정부 주석으로 있던 시절 김구의 어머니가 남이 바닥에 내다버린 시래기국을 끓여서 김구를 먹였는데 김구가 마음이 적적하여 ’어머니 그래도 제가 한 국가의 주석인데 남이 버린 시래기를 주워다 드십니까? 이러지 마십시오‘ 라고 하자 김구의 어머니는 크게 꾸짖으며 사정없이 김구의 종아리를 내리쳤다고 한다. 이 때 김구 선생이 눈물을 뚝뚝 흘리자 김구의 어머니는 뭘 우느냐고 호통을 쳤는데 김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파서 우는 것이 아니라 저를 때리시는 어머님의 팔에 예전처럼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아서 그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나는 이 두 일화를 보고 부모를 생각하는 김구 선생의 극진한 효성이 훗날 김구선생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의 기초가 되었음은 물론 독립운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대장부같은 대담함과 강직함, 깊은 효성 이외에도 김구 선생에게 연민을 느끼고 동질감을 느꼈던 것은 바로 모든 것을 초월한 위인이 모습이 아닌 인간적인 모습 그 자체였다. 백범도 사람인 탓에 욕구나 고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다. 그는 처음 배움에 길에 들어서서 큰 뜻을 이루기 보다 단지 자신의 가난한 출생을 벗어나기 위해 과거시험장을 찾았고, 자신의 용모에 대해 한탄하며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또 두 차례의 혹독한 옥고를 치르면서 고통에 못이긴 나머지 제자를 공범으로 실토하여 죄책감을 느끼거나 징역살이에 견디지 못하고 수 차례 자살결심을 하시기도 하셨다. 또한 하나뿐인 소중한 딸의  죽음과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지낼 무렵에는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지내며 이념 앞에서 갈등하는 임시정부의 존폐위기와 함께 아내의 죽음과 어머니의 죽음까지 고스란히 감내하셔야 했다. 허나 이런 인간의 근본적인 정신적 괴로움과 신체적 고통, 갈등, 상실감 등을 모두 민족의 독립이라는 대의를 바라보며 의연하게 받아들이셨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의 극복과 독립에 대한 지속적인 열망은 바로 그의 어머니인 곽낙원 여사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곽낙원 여사는 백범이 해주와 인천 감옥에 투옥되어 심한 옥고를 치르고 있을 때에 매일 사식을 넣어주며 격려와 위로를 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울타리 였으며 기생과 어울리던 50대의 김구를 회초리로 다스리시는 정신적 지주셨다. 백범이 감옥에서 그 심한 고초를 당하고 수많은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도 김구의 어머니는 백범이 독립운동을 그만하도록 만류하거나 명령하시지 않으셨다. 분명 자식이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그의 어머니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백범이 조국을 위해 몸 바치는 것을 잘 알기에 힘든 기색 하나보이지 않고 옆에서 묵묵히 김구 선생을 도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위인을 만드신 것이다. 자식의 개인적인 행복과 안전보다는 나라를 위해 자식을 기꺼이 희생하신 김구의 어머니는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참된 자식 사랑과 올바른 실천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귀감이 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제치하라는 격동의 시기에서 김구 선생의 삶이 얼마나 처참하고 비극적이였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선생은 혈혈단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셨다. 그는 학교를 설립하여 민족의 힘을 양성한 선생이요, 군대를 조직해 일제에 투쟁한 군인이요, 목숨을 바쳐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꿈꾼 독립운동가 이셨다. 내게 스스로 ‘너는 그 억압의 상황속에서도 꿋꿋이 견디며 외압에 굴복하지 않으며 독립을 부르짖을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이미 현대사회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물들어 버린 탓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구 선생은 생전에 아름다운 나라, 문화가 강성한 나라, 민족이 하나되는 나라를 꿈꾸셨다. 이 세 가지 나라의 근본이 되는 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나라를 사랑하는 일에는 직업도 성별도 나이도 없다. 백범도 가난한 집안의 상놈이 아니었던가? 우리는 학생의 본분으로서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거나 기술을 배우고, 이 대한민국의 땅을 존재하게 한 숭고한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추모하여 기념일마다 태극기를 달아 기리는것, 순국선열들의 업적을 확실히 알고 그 사상을 밑거름으로 삶을 개척해 나감으로써 나라 사랑의 길을 나아갈 수가 있다. 오로지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자신의 삶은 완전히 버린채 격동의 시기에서 구국을 위해 나라를 이끌어간 백범 김구 선생님.
비록 지금 그는 없으나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배는 신성하고 위대한 백범의 혼을 이어받아 국제 사회에서의 경쟁과 남북분단의 현실이라는 거친 파도 속에서 남북한의 진정한 화합을 위하여, 문화 강국을 향하여, 세계의 무대에서 당당히 주역이 될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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