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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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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백범일지」를 읽고
작성자 변영인(동명고) 개최일 2013-07-10 조회 2895

「백범일지」를 읽고

 


동명고등학교 2-1 변영인

 

  흰 옷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순한 듯하면서도 호랑이 상 얼굴을 한 무장 독립운동가. 한창 10만원권 도안 얘기로 들썩거리던 당시에도 내가 백범에 대해 알고 있는 수준은 이 정도에 그쳤었다. 이 후에 공부를 이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백범에 관한 단편적 지식을 조금씩 쌓아 왔지만 나에게 이 정보들을 제공한 그 무미건조한 텍스트들에서는 어떻게 김구가 고액 화폐의 도안으로 낙점 받을 수 있었는지 선뜻 가슴으로 느끼진 못 했었다. 그러면서도 여태껏 이 책을 읽을 생각을 안 해왔다는 건 부끄럽지만 나의 탐구심 부족 탓으로 보는 게 타당하겠다. 그러나 다행히도 비록 떠먹여주는 식으로나마 이렇게 기회가 생겼고 이때가 아니면 언제 이 책을 읽어보겠나 싶어 시험 기간이라는 시기적 특수성을 촉진제 삼아 후다닥 책을 펼쳐들었다.
  머리말을 읽다 알게 된 사실은 「백범일지」의 ‘일지’가 日誌(매일 매일 기록한 일기)가 아니라 逸志(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기록)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하루 단위로 기록된 일기 형식이 아니었고 큰 주제별로 글이 묶이어 상·하권 백범의 유년기부터 광복 직후까지의 행보가 담겨 있었다.
  백범이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기 시작하던 때는 그가 거의 내 나이 즈음이었을 때로 열여덟 살에 동학에 입도한 백범은 1년 만에 동학 접주 첩지를 받아 같은 해에 일어난 동학 농민 운동에서 황해도 지역 봉기의 선봉에 나서 동학군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내가 백범이라면 당장 내년에 선봉장이 되어 군인들을 이끌고 전장을 누빌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자연히 가정을 해보게 되었다. 어떤 느낌일지 확실하게 알 순 없어도 어지간하면 호들갑 떨 만도 한데 백범의 그 날에 대한 기록에서는 전혀 그런 류의 심경을 찾아볼 수 없고 오직 덤덤함뿐이었다. 사실 이 일에서 김구는 어떤 직책을 맡았어도 괘념치 않았을 것 같았다.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도모하는데 위치가 무슨 상관이겠냐고, 책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지 않지만 접주 시절의 그에게서 배운 하나였다.
  동학 농민 운동 이후 머지않은 때에 일어난 치하포 사건에선 백범의 무서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 왜놈이 국모를 시해한 미우라가 아닐까’ 하는 판단이 들자 곧 크게 호령하며 달려들어서 왜인 쓰치다의 숨통을 끊어버리던 장면이 너무도 강렬해 그 장면을 떠올릴 때면 내가 본 건 텍스트뿐인데도 어디선가 진한 핏 내음이 풍겨오는 듯했다. 가끔 종교가 사람의 뇌를 바꾸어 놓아 사고를 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처럼 이때 백범이 보여 준 행위에서 받은 느낌이 바로 그런 경우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물론 김구는 종교가 아니었단 점에서 다르지만 어찌되었든 그때 내 생각엔 아무리 애국심에서라도 이 정도면 너무 맹목적이지 않은가 싶을 정도로 이 당시의 백범은 위험하게 느껴졌었다. 그런 일촉즉발의 김구가 그 사건으로 해주옥에 투옥되었다가 인천 감리서로 이송되게 되는데 그곳에서 첫 신문을 받던 장면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신문장에서 조금도 겁먹지 않은 모습으로 오히려 자기가 더 큰소리를 내어 관리들의 얼굴을 홍당무로 만들고 일본인 와티나베가 꽁무니를 빼게 만들었으며 신문장 바깥의 모든 조선인들이 백범을 응원하는 그런 장면이었는데 기분이 좋으면서도 어딘가가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있었다. 아무리 일본인이라도 사람을 죽인 김구가 옹호를 받고 있는 이 상황.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다 내가 감히 가볍게 여긴 전제 하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국공법 어디에 통상 화친 조약을 맺은 나라의 국모를 시해하라는 구절이 있더냐?” 김구가 법정에서 와티나베를 향해 한 호통 중 한 마디다. 국모 시해 사건. 모든 조선인들이 일본의 상식을 넘어선 만행에 치를 떨었다. 신문장에서 백범의 몰아붙임에 관리들은 일제히 얼굴이 홍당무 빛이 된 것도, 조선인이라면 모두 김구를 열렬히 응원한 것도 국모의 말도 안 되는 죽음에 대한 슬픔과 분노에서 온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사건을 이해하는 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그 전제를 쏙 빼놓고 읽은 것이었다. ‘국모 시해’ 네 글자가 똑똑히 적혀 있는 것을 똑똑히 보았지만 난 그것을 보았다 할 수 없었다. 그 네 글자를 보고도 전혀 내 마음에 동요가 일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그 사건은 이미 나에게 국사책에 나오는 수많은 사건 중의 하나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오늘날 애국심과 역사의식이 큰 문제다. 먼 곳도 아니고 바로 나에게서 이런 문제를 발견하게 되다보니 백번 실감하게 되는 현실이다. 나라를 사랑해야 역사를 알게 되는 것 같고 역사를 알아야 나라를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며칠 전 역사 수업에서 비슷하게 들은 내용이기도 한데 이제야 확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역사를 안다’는 것도 몇 년에 어떤 일이 일어났단 것만 안다고 아는 게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모의고사 한국사 점수가 잘 나온다고 역사를 잘 아는 것도 아니었다. 혹 한국사를 수능 필수 과목으로 한다고 해도 점수따기 식으로 영혼 없이 공부한다면 그저 지적(그렇다고 완전히 지적이라고 볼 수도 없는)이나 허세를 위한 도구 그 이상의 무엇을 더 바랄 수 없을 것으로만 보인다. 물론 애국심에서 역사 공부를 시작한다면 반드시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애국심이라는 것도 오늘날 의미가 퇴색된 것 같다. 외국에 진출한 가수의 유튜브 조회수가 탑에 올랐다고 그것을 애국이라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면 그건 조상님들을 뵙기가 민망한 일이라고 본다.
  김구의 호 백범白凡은 ‘우리나라가 완전한 독립국이 되려면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인 백정과 범부들도 모두 깨어나 적어도 자신(김구)과 같은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흔히들 백범을 ‘하얀 호랑이’로 알고 있다. 나는 백범이 그 뜻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하얀 호랑이’라는 뜻도 그에게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글을 쓸 때 그에게 이 뜻의 호를 선물로 드려야겠다 하고 설레발을 치고 있다가 본래의 의미를 알고 나서는 내 계획을 접었다. 본인 정도의 애국심을 하한선으로 둔 것이 어째 전혀 겸손에서 한 말로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 우리의 애국심은 어떠한가? 많아야 한 달에 한두 번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할 때에도 뒤의 태양에 눈이 부시다고 태극기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 하는 우리를 백범 선생이 보신다면 자랑스러운 한국의 국민이구나 라고 말씀하실까? 책장을 다 넘긴 뒤엔, 물음과 부끄러운 대답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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