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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김구 선생이여 당신의 70년 인생은 빛납니다. 기계고등학교 3학년 1반 박한나 처음에 이 책을 읽으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책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 같은 건 없었다. 학교에 계단을 오르내리고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하는 길 도중에 계단 중앙에 김구 선생님, 안창호 선생님 등 위대하신 분들의 말씀들이 적혀있는 것을 보는데 그 말씀들은 한눈에 들어와 머릿속에 새겨지는 그런 말씀이 아니었다. 그런 말씀들은 수많은 의미를 함축해 놓은 듯 했다. 나는 평소에도 그런 글귀를 좋아한다. 읽고 나서 조금 생각해봐야할 글귀 말이다. 하지만 워낙 ‘역사’와는 관계가 희미한 나로썬 역사적 인물들이 한 말씀을 깊게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할 마음도 그렇게 없었다. 요즘엔 유관순 열사께서 받은 고통 그녀가 살아갈 때에 품었던 뜻에 대한 것을 페이스북이나 매체를 통해서 많이 본다. 그럴 땐 마음이 많이 찡해진다. 진정 그런 분들의 고귀한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이 대한민국에 내가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엄숙해 진다. 이처럼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그들의 삶에 대해 알 필요성은 여러모로 느꼈지만 딱히 그 부분에 대해서는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처음에 책을 잡고 책 첫 장을 넘길 땐 ‘아 어떻게 독후감을 쓰지’라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다. 책이 두꺼웠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겐 생소한 단어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점점 더 책으로 빠져들 땐 나는 김구 선생을 응원하고 있었고 나 같으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라는 도전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우린. 형편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고자하려는 마음 때문에 서당에 다니다가 또, 과거를 준비하다가 과장의 악폐를 보고 서당을 그만두고 풍수와 관상공부를 하다가 관상 좋은 사람보다는 마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되어 동학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것을 배워가며 보다 큰 꿈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이처럼 김구 선생은 갖가지 방황을 하며 제 삶을 뒤돌아보고 눈물을 흘리셨다.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고3이라는 시기에 놓여있는 우리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나의 진로를 앞두고 내 계획과 실행에 있어서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쓰디쓴 잔을 마시며 살아가는 마음은 참 무겁고 버겁다. 살아가면서 어른들의 말씀들을 통해서 교훈도 얻고, 직접 겪지 못해도 책이나 각종 매체를 보고 들으며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겪어봐야 몸소 느끼는 우리들은 여전히 많이 부딪혀가며 성장해간다. 결코 여러 번의 실패를 연유로 좌절해선 안 될 이유를 이 선생의 삶이 말해주고 있다. 김구 선생의 삶의 이정표를 멋지게 제시해 주신 분 중 한 분은 바로 고능선 선생이다. 고 선생은 늘 김구에게 가르치기를 기뻐하셨고,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하셨다. 또, 현재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야할지, 무엇을 항상 경계하며 살아야할지, 저희들이 나라에 충성하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인지를 알려 주셨다. 고 선생은 자신이 가야할 길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지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다만 그 방법들이 거룩할지 망할지가 그의 가장 큰 관심이었다. 그리고 그 관념을 김구에게 가르쳤고, 마땅히 김구는 고 선생의 말대로 청으로 떠난다. 난 늘 내가 모르는 나의 강점들까지 끄집어낼 수 있고 나를 이끌어갈 멘토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산다. 나에게 비전을 심어주고 그 이정표까지 제시해주는 멘토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늘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위인들만 보더라도 그들의 주위엔 고 선생 같은 멘토나, 부모님은 참 큰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그에 따라 유관순 열사, 김구 선생 등 대부분위인들은 어린 나이에 그 꿈을 마음에 품고 변치 않는 열정과 염원을 다해 그 뜻을 펼치고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과 임시 정부 활동부터 시작해서 광복 후에는 정치활동까지 활발하게 하셨다. 나는 선생이 수많은 운동과 활동을 많이 한 부분에도 굉장히 놀라웠지만 그의 어머니가 나의 마음에 와 닿았다. 신민회 사건(105인 사건)으로 인해 또 다시 17년형의 옥중생활을 하는데 선생의 어머니께서 면회를 오셨다. 다른 동지들이 면회한 정황을 들어보면 부모처자가 와서 피차에 대면하면 울기만 하다가 간수의 제지로 말 한마디도 못하였다는 것이 보통인데 선생의 어머니는 씩씩한 하게 “옥중에서 몸은 잘 있어라, 식사가 부족하거든 하루에 사식 두 번씩을 들여 주랴?” 라며 할 말을 하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구 선생은 어머니께서 선생을 대하여서는 태연하셨으나 돌아 나가실 때는 분명 눈물에 발부리가 보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울음을 참고 씩씩하게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옥안에서 지켜 볼 수밖에 없던 선생의 마음도 마음이겠지마는, 사랑하는 아들을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보며 아들이 더 고달파 할까봐 울음마저 참아가며 용기를 북돋아줄 수밖에 없었던 선생의 어머니의 마음은 가히 우리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원수 왜놈에게 자식을 보게 해달라고 청원하였을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며 김구선생은 죄송스러움을 느꼈고 다시 한 번 왜놈에 대한 간절한 독립의 마음이 불탔었다. 감옥에서 만난 기인과 열사들에게도 선생이 어떤 이유로 수감되었는지 이야기를 하는 중에 그들도 선생을 잘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인천감옥으로 이감되고 다시 출옥을 하였다. 김구 선생은 본인이 어디에 있든지 어떤 상황에 처했든지 본인이 어떤 직분에 위치해 있든지 상관없이 고능선 선생께로 배웠듯이 항상 많은 이들에게 올바른 사상을 심겨주고 우리 민족이 독립의 행복을 누릴 것이라고 예견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김구 선생은 또한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 모두 한 마음 한 뜻을 품고 상해로 올라와 김구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이 그토록 빠른 시간에 단결되어 뜻을 이뤄낸 데에는 그들은 준비되어진 자이기에 틀림없었다. 이 세 사람은 서로서로 만나기 전에는 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방법으로 준비를 해왔었고 그들의 인생 끝자락에서 만나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쳐 뛰어들었고 그 목숨은 독립운동에 아름다운 이바지를 하였다. 나는 김구 선생의 많은 업적들이 있지만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를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이루어 낸 것이 가장 놀랍고 신기했다. 마치 영화를 볼 때 적군이 계속해서 우리 팀에게 공격하고 무슨 수도 쓸 수 없이 당하고만 있는데 마침 훈련 잘 된 군인과 타고난 저격군이 우리 팀에 투입되어 싸워서 영화 흐름이 우리 팀쪽으로 전세가 뒤바뀌고 있을 때 그 장면을 보면서 손바닥을 짝! 마주치며 그렇지! 이거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윤봉길 의사는 김구 선생에게 “큰 뜻을 품고 상해로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형세로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어디에서 목숨을 바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말을 했다. 김구 선생은 윤봉길 의사가 진실한 청년 직공으로 학식도 있는 자라고 생각이 되자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해 보니 그는 살신성인의 크고 큰 뜻을 품은 의기의 남자라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선생은 “뜻이 있는 자는 언젠가 반드시 일을 이루니 안심하시오,”라며 윤봉길 의사의 뜻을 높이 생각하고, “요즘 내가 생각하던 것이 있으나 적임자를 구하지 못하여 번민하던 차였습니다”라 말하며 4월 29일 홍구공원에서 천황의 천장절 경축전례식에서 윤봉길 의사의 일생의 큰 목적을 이 날 달성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에 윤봉길 의사는 흔쾌히 받아들이며 더 이상 윤봉길 의사 자신의 마음에 번민이 없어지고 아주 평안해진다고 고백하였다. 희생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윤봉길 의사는 그 일에 너무나도 기쁜 마음으로 임했고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여태껏 어떻게 조국에 몸을 바칠까 고민하고 번민했지만, 김구 선생의 단한번의 제안에 윤봉길 의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그 모습만 봐도 역시나 모든 일에 앞서 준비하는 자가 성취해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구 선생의 빛나는 70년 인생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교훈과 도전을 주는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삶은 결코 헛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삶은 우리나라를 바꿔 놓았고 그의 소망은 한 나라의 큰 주춧돌이 되어 이루어졌다.19살 지금, 나도 나의 길을 준비하는 시기에 놓여있다. 성공적인 것만이 아닌 실패와 큰 벽에도 온몸으로 부딪혀 보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 터득한 지혜로 내 삶을 빛내고 싶다. 각자의 삶을 빛내려고 노력하면 그 빛이 모아서 우리나라를 빛내고 세계를 빛낼 수 있지 않을까? 그에게는 늘 소원이 있었다. 독립이 없는 나라의 백성으로 70평생에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받은 선생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가 죽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구 선생에게 배움이 없었다면 이런 소원이나마 품을 수 있었을까? 선생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도 배우지 못한 사람이 수두룩할 터인데 그들은 과연 지금 완전하게 자주독립한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를 꿈꿀 수 있었을까? 아마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시대가 지나간 다음 시대에서도 일본의 통치하에 우리나라가 조종당할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배움이 있어야 변화가 있을 수 있고 배움이 있어야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이뤄낼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우리는 목표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들의 차이를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소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하루하루 그것을 바라보며 사는 삶은 늘 새롭고 희망차지 않을까 생각한다. 꺾이지 않는 그들의 사상들은 과연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그 힘의 근원은 어디일까. 아마 그것들은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가 아닐까? 나라를 사랑해야하는 이유를 그들은 분명히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아버지께서는 늘 말씀하셨다. 네가 존재하는 이유는 나라가 있기 때문이고 나라가 없다면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며 늘 나라를 걱정하고 네가 가진 것을 나라를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는 늘 나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일깨워주고자하셨다. 나또한 부모님을 통해서든지 이렇게 서적을 통해서든지 나라를 알아가고 어떤 마음으로 나라를 대해야하는지 조금이나마 선열을 통해서 배운다는 점이 참 감사할 따름이다. 이렇게 편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금의 우리나라를 만든 위대하신 선열들께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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