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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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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가장 존경했던, 그리고 다시 한 번 존경하는 위인 ‘백범 김구’
작성자 정소영(진교고) 개최일 2013-06-12 조회 3972

가장 존경했던, 그리고 다시 한 번 존경하는 위인 ‘백범 김구’

 


진교고등학교 2-2   정소영


 어릴 적, 누군가 내게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서슴지 않고 백범 김구 선생님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하지도 못하고 그저 어느 한 여관에서 김구 선생님이 일본인을 칼로 찔러 죽인 장면만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어렴풋이 기억하기에 어릴 적 읽었던 짧은 어린이용 위인전 한권 속에 담겨있던 백범김구 선생님의 모습은 내게 와 닿기를 한 단어로 ‘용맹’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어 훨씬 고급스러운 백범일지를 읽을 기회를 가진 후에야 내가 그토록 감명 받았던 그 사건이 바로 ‘치하포 의거’라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부터, ‘치하포 의거’와 같이 내가 백범 일지를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중심으로 백범 김구 선생님의 정신을 되살려 새로이 느끼면서 글을 써내려 가려 한다.
 책을 펼치자마자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저자의 말인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저자의 말을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게 이 책의 저자의 말은 본문의 다른 부분보다도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고 할 수 있었는데, 단지 글에 대한 소개뿐 만이 아니라 대한사람의 애국심 고취에 대한 간절함이 뚜렷하게 나타나있기 때문이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은 백범일지를 쓰는 목적을 밝히면서 ‘내가 이 책을 발행하기에 동의한 것은 내가 잘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못난 한 사람이 민족의 한 분자로 살아간 기록임으로 써이다.’ 라는 말도 하셨는데 누구보다 위대하신 분이 보여주는 겸손은 내 고개를 숙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현대인이 꼭 본받아 지녀야 할 미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솔직하게 담아낸 상권의 초반부에서 나는 그가 그저 평범한 아이였음을 느끼며 그렇다면 어떤 계기로 나라를 사랑하게 되고 영웅처럼 남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 궁금해졌다.
 어릴 적 과거를 보러 간 김구는 과것길에서 불쾌함과 비관만 품고 돌아와 서당 공부를 그만두기로 하고 관상 공부를 시작하게 되는데 자신의 관상은 얼굴과 온몸이 천격, 빈격, 흉격 만으로 되어 있는 것에 다시 한 번 비관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상서》중에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라는 문장을 보고는 관상 좋은 사람보다는 마음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굳게 가지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애국심실천에 있어 탄탄한 디딤돌이 되어 주지 않았나 싶다. 그 후 김구는 동학에 입도하게 되고 동학농민봉기활동을 하게 된다. 그때가 김구가 처음으로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톡톡히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학농민봉기활동을 하면서 김구는 뜻있는 여러 인물들과 인연을 맺게 되고 서로에게 배우고 뜻을 나누며 자신을 발전시켜 나간다. 그러는 도중, 단발령과 ‘명성황후 시해’라는 치욕적인 사건을 겪게 되고, 그 배경 속에서 김구는 복수심을 품고 앞에서 언급했던 ‘치하포 의거’를 벌이게 된다. 어릴 적부터 늘 마음깊이 담아두었던 이 장면을 다시 보면서 예전보다 더 큰 감명을 받았는데, 어릴 때처럼 단순히 ‘김구의 일본일 난도질’에 대한 흥분감과 충격 때문만이 아닌 옳은 일을 행하기 위해 스스로 문답하여 ‘마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것을 떠올리며 혼란스러운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고 용기를 불어넣는 모습과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을 피신시키면서 자신은 피신할 생각이 없음을 밝히며 기꺼이 희생하여 만인에게 교훈이 되겠다는 모습에서 경외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구 선생님은 첫 번째 옥중 생활을 하게 되고 사형 선고 등의 고비를 넘겨 2년 만에 인천감옥에서 탈출하게 된다. 그 후로 그는 을사조약에 반대하는 투쟁을 하기도 하고, 교육구국운동과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한 날은 경찰서에 끌려가게 되는데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피살한 사건에 연루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얼빈 사건과 아무 연관이 없던 김구였지만 해주 감옥에 갇히며 두 번째 옥중 생활을 맞이하게 된다. 결국은 불기소로 방면되지만, 그 와중에도 김구 선생님은 동지들을 생각하며 하루라도 일찍 귀환하려는 마음뿐이었다. 그와 그 동지들의 그렇게 뜨겁게 불타던 의지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햡병되어 망국의 치욕을 당하고 나라 없는 아픔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김구는 국민이 일치분발하면 곧 국권이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후세들의 애국심을 키워서 장래에 광복케 하는 길만을 생각했다. 합병의 치욕에 당시의 인심은 무척 흉흉했고 그 누군가는 자살을 하기도 했다는 서술을 보면서 대비되는 모습에서 김구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깊은 존경심이 들었다.
 계속해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는 도중 세 번째 투옥과 15년 징역형을 맞게 된다. 김구에게는 나라만큼이나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었는데 가족의 수난과 고통을 함께 나누지 못하고 혼자 밥을 먹다 피눈물을 흘린다거나 하는 모습에서 그의 효심과, 동시에 그 모두를 혼자 참아야만 했던 오직 한 가지 이유 ‘독립’에 대한 바람이 얼마나 간절했던 것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가 겪었던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이겠지만 말이다.
 내가 김구 선생님의 더 훌륭하고 위대한 3·1운동, 임시정부 활동, 한인 애국단 활동 등과 같이 널리 알려진 업적이 아닌, 여러 힘든 고비나 감옥 생활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쓴 데에는 업적을 소개하며 그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가 한 나라의 ‘못난’, 하지만 아름답게 못난 모습으로 살았던 것을 부각하며 평범함 속에서도 오로지 뜨거운 숨결만으로 무지개를 빚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에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범 김구의 그런 부분이 누군가에게는 귀감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엿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누군가 다시 한 번 내게 백범 김구를 가장 존경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제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그에게는 흉내만으로는 따라할 수 없는, 내게 자연스레 존경심이 들게 하는 ‘대담함’이 있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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