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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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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은밀하게 위대하게
작성자 이종태(아산고) 개최일 2012-05-15 조회 2175

은밀하게 위대하게

 

아산고등학교 2학년 1반 이종태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것은 이육사 시인의 작품 ‘광야’의 일부이다. 백범일지를 읽는 내내 나는 평소 좋아하던 이 작품이 생각났다. 일제의 눈바람 속에서 광복의 노래를 피우기 위해 씨를 뿌리고 결국은 그 자신이 백마 탄 초인이 된 선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 편의 시 같은 삶을 살다 가신 백범 김구 선생. 백범일지에는 그분의 자취가 담겨 있었다.
 상권, 하권, 계속 편 총 3편으로 이루어진 백범일지는 그 내용 하나하나가 김 구 선생께서 직접 저술한 것이다. 상권은 53세, 하권은 67세 때 집필하셨고, 각각에는 선생의 삶은 물론,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사건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는 그분의 인생이 역사의 일부이자 또 다른 하나의 역사였음을 말해준다.
 한가한 주말, 나는 손에 작은 역사를 쥐고 읽기 시작하였다. 백범일지를 펼치기 전에 김구 선생은 어렸을 적부터 남다를 것이라 생각하였다. 민족의 지도자로서 훌륭한 분이기에 남들보다 특별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나의 편견은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개천에 물감을 풀어 어머니에게 혼나고, 아버지의 은수저를 팔아 엿을 사먹고,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의 집에 칼을 들고 찾아가 도리어 얻어맞는 등 그저 개구쟁이에 불과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선생의 모습에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생을 더욱 우러러 보았다. 자서전에서는 보통 자신이 어릴 적부터 유별났다고 선전하지만 김 구 선생은 그러지 않았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지 않듯, 나라와 겨레를 위해 큰일을 할 사람도 어릴 적부터 정해져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또한 선생의 어린 시절은 날 부끄럽게 만들었다. 집안사정이 좋지 않았지만 글공부에 욕심을 내었던 어린 날의 김구는 앳된 목소리로 선생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학구열은 선생만 못한 나를 꾸짖었다.
 선생은 과거에 회의를 느끼고 돌아와 관상을 공부하다가 어떠한 다짐을 하였다.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란 구절을 상서에서 읽고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과연 나는 마음 좋은 사람인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선생이 18살 되던 해에 동학이 널리 유행하였다. 선생은 동학의 도에 감명을 받아 그 나이에 입도하였다. 그리고 몇 달 만에 선생을 따르는 신자가 수 천 명에 달하였다. 지금의 내 나이로 수 천 명을 이끄는 접주가 된 것이다. 동학군으로 활동을 하며 선생은 여러 위기를 맞는다. 해주성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홍역으로 고생하던 중 같은 동학군 이동엽에게 공격을 받아 피신한다. 선생이 많은 피해를 입고 피신하는 것을 보며 나는 매우 화가 났다.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켜내고 농민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민초의 투쟁, 그것이 바로 동학 농민 운동이다. 그런데 개인의 욕심에 눈이 멀어 같은 편을 공격하는 이동엽을 보며 실망과 분노를 참기 어려웠다. 그에 비해 비록 관군으로 적이지만 김 구 선생을 인정하고 선생 같은 인재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 안태훈 진사는 실로 존경스러웠다.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이기도 한 안 진사는 김구 선생을 집으로 들이고 선생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했던 스승, 고능선 선생을 만나게 해주는 다리 역할을 하였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함으로서 민족의 독립에 이바지하였다면 그의 아버지 안태훈 진사는 김 구 선생을 도움으로서 조국광복에 큰 도움을 주었다.
 김구 선생은 21살이 되던 해에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치하포에서 일본인 육군중위를 살해하였다. 선생은 재판을 받을 때 전혀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인 관리에게 호통을 쳤다. 나는 국모를 위해 살인을 저지른 선생의 용기에 감탄하였으며, 선생이 당당하였던 것은 아마 민족과 국가와 하늘에 떳떳하였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종황제의 덕택으로 사형을 면하였지만 자신을 구출하려는 주변인들과 언제 다시 사형이 내려질지 모르는 현실에 선생은 탈옥을 한다. 탈옥 후 선생은 스승 고능선 선생을 찾아간다. 하지만 감옥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탐구했던 김구 선생과 위정척사의 사상을 지닌 고능선 선생은 의견의 차이를 보였다. 비록 서로의 의견 차는 있었지만 김 구 선생은 그를 존경하였다. 뜻이 다르지만 스승으로서 고능선 선생을 존경했던 것이다. 나는 김 구 선생의 넓은 마음과 스승에 대한 사랑이 부러웠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선생님을 만나고 배운다. 그 중 우리의 기억에 남을 분은 몇이나 되며 진정한 스승은 또한 얼마나 될까. 두 분의 사제의 정에 감동을 받으며 나는 계속 책을 읽어갔다.
 선생은 구국운동과 교육 사업에 전념하였는데, 장련에 광진 학교를 세우고 안악에서 양산학교 교사로 일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한 인재양성에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 선생은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고 다시 15년형을 선고받아 감옥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1년 후 일왕과 그의 처가 죽어 선생은 5년형으로 감량을 받고 다시 2년 후 서대문 감옥에서 인천 감옥으로 이감된다. 선생은 처음 옥중에서 자살을 시도했으나 주변 사람들에 의해 살았고, 이번에도 자살을 결심하나, 마음을 고쳐 포기한다. 나는 선생이 자살을 결심했을 때와 시도했을 때 가슴이 철렁하였다. 하지만 하늘이 도우셨는지 선생은 죽지 않고 살아서 백범일지를 쓰셨다. 선생이 죽다 살아날 때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후에 선생은 옥에서 자신의 이름을 ‘구’로 연하를 ‘백범’이라 고쳤다. 우리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백범 김구의 탄생은 옥에서 이루어 진 것이다. 선생은 출옥 후 4년 뒤인 44세 때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경무국장이 된다. 선생은 원래 자신은 문지기를 하겠다고 청하였지만 도산 안창호 선생은 김 구 선생의 진가를 알아보고 경무국장으로 위임하였다. 문지기에서 경무국장이 된 김 구 선생은 처음엔 사양을 하다 결국 받아들인다.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남을 위해 일하는 선생의 이와 같은 모습은 남을 이기기 위해 서로 싸우고 경쟁하는 현실에 큰 교훈을 남겼다.
 우리는 흔히 김구 선생의 업적을 그 분이 혼자서 이룩한 공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주위의 도움과 격려,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뒤엔 가족이 있었다. 선생의 아내 최준례 여사는 선생이 감옥생활을 할 때, 구국운동을 할 때, 임시정부의 임원으로 활동할 때 등 언제나 곁에서 큰 힘이 되었다. 선생의 어머니 또한 선생을 위대한 민족지사로 만드는데 큰 힘을 쓰셨다. 이렇게 든든한 가족이 있었기에 선생의 업적은 더욱 빛날 수 있었다.
 김구 선생은 57세에 용감한 두 청년을 만난다. 하나는 일왕을 저격한 이봉창 의사이고 다른 하나는 일왕의 생일날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이다. 두 사람 모두 역사책과 위인전에 나오는, 민족과 조국을 위해 희생한 훌륭한 분이다. 그 두 분이 거사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김구 선생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은 그 스스로도 위대한 분이지만 이봉창, 윤봉길 의사와 같은 민족투사를 발견하고 거사를 치를 수 있게 도와주었다는 점에서 더욱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말 선생은 군대를 이끌어 광복을 되찾으려 하였으나 일본의 항복으로 인해 계획은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 김구 선생은 이 점을 크게 안타까워하였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스스로 일본을 물리치고 독립을 하였다면 다른 서양세력의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되었을 테고 그렇다면 완전한 자주독립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독립을 맞은 조국에서 김구 선생은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지난 날 자신의 행적과 추억을 돌아다본다. 그리고 은밀하게, 하지만 그 누구보다 위대하게 조국을 위해 헌신한 선생의 일지는 끝이 난다.
 선생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원하였다. 최고의 문화를 이룩하여 다른 나라의 모범을 보이고자 하였다. 우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에 살고 있는가? 아니다. 우리는 모범을 보이기는커녕 선진국을 따라가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 선생은 또한 우리나라가 독립만 하면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제 나라의 빈천보다 남의 밑에 사는 부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아니다. 수많은 분이 피 흘리며 되찾은 우리나라이다.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고 귀하게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백범 선생 같은 우리의 선조들이 일제로부터 지켜내고자 하였던, 결국은 지켜낸 바로 그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물려준 노래의 씨앗은 아직 온전히 피지 않았다. 선조들의 희생과 노력을 잊지 않고 그들의 정신을 이어 받아 나라를 사랑하고 아낀다면 우리의 땅에는 다시금 매화향기가 아득해 질 것이며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백마 탄 초인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이 오면, 김 구 선생과 다른 모든 분들이 심었던 노래의 씨앗은 만개하여 흐드러질 것이다.
 책을 덮었다. 창문을 열었다. 보름달은 김구 선생의 웃음을 담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미안하였다. 그러나 미래의 조국은 선생의 그것보다 더욱 빛날 것이라 약속하기에 나는 마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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