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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정부의 문지기
홍성여자고등학교 2학년 1반 이수진 어렸을 때 드라마 ‘서울1945’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드라마는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 시대와 광복 그 이후 6·25전쟁 이야기를 다뤘는데 주인공은 아니지만 ‘김구’라는 인물이 등장했다. 그 기억 때문인지 나는 백범일지라는 백범 김구의 자서전에 자연히 손이 갔다. 옛 기억도 새록새록 생각나고 새로운 역사 이야기도 알아가고 김구 선생님의 뜨거운 독립에 대한 소망도 느낄 수 있어서 금방 이 책에 빠져들었다. 여기서 학문에 대한 열정은 가득하나 양반도 아니고 돈도 없었던 그분의 안타까운 어린 시절 이야기는 뒤로 하고 내 마음 속에 뭔가를 일으켜준 몇 교훈들을 살펴보고 싶다. 그분의 삶이 그 당시 일본에게도,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먼저 그분의 인천감옥 투옥사건이다. 그분은 치하포에서 우리나라 사람처럼 변장한 일본인 육군을 명성황후 시해 복수를 위해 살해해버리고 인천감옥에서 갖은 신문을 당하신 일이 있다. 의거한 당시 그는 주저함도, 보복의 두려움도 없이 빠르게 판단하고 계획하여 그들을 제압했다. 나는 그 명철함에 놀랐고 투옥 중에서도 꺾이지 않는 확고한 신념에 놀랐다. 그는 장티푸스에 걸려 온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는 고통 속에서도 신문당할 때는 한마디의 실없는 소리도 안했을 뿐더러 자리에 있던 감리사와 경무관, 간수, 청지기까지 모든 사람들을 국모의 원수를 갚아야한다는 외침에 수긍하게 만들었다. 몇 번의 신문을 거쳐도 그의 의지는 그대로였으며 감옥에서 그의 영역은 점점 넓어져갔다. 그는 다른 죄수들과 방도 따로 썼을 정도로 자신이 죄인이 아님을 주장했다. 그 강한 주장에 그를 따르고 존경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음식들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그 것을 다른 죄수들에게 나누어주며 그들과 친해 그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의 이런 행동과 그를 위해 남의 집 일을 하며 그의 끼니를 매일 챙겨오던 그의 어머니를 보며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좌절할 수밖에 없는 고난의 시간 속에서도 독서를 했고 일본에게 굽히지 않았고 같이 생활하던 죄수들까지 문자를 가르쳐주며 챙겼다. 그런 분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 안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현재 우리 주위에는 간신배들이 많다. 자신의 안위와 배부름을 위해서라면 이리도 붙었다가 저리도 붙었다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그분의 삶은 꼭 필요한 지침서가 될 것 같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 일에 대한 인내가 없는 사람에게도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아무 생각도 없이 부모님이 시켜서 학원을 다니고 그냥 공부를 하고 있다면 내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찾고 그것을 향해 나갈 때에 이이야기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음은 윤봉길 의사와 홍구공원 투탄 의거이다. 일명 ‘도시락 폭탄’ 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의 주모자가 ‘김구’ 였다는 것은 이번에 알게 되었다. 실제로 폭탄을 던진 것은 윤봉길이었으나 날짜와 장소부터 도시락 안에 폭탄을 제작하는 일까지 다 그분의 치밀한 계획이 있었다. 윤봉길이 목숨을 바쳐 의거를 하고 싶어할 때 그분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오늘날까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위대한 사건이라 알려진 도시락 폭탄 투척은 이루어질 수 없을 뻔한 것이다. 책 한편에는 ‘윤봉길과 백범’이라는 제목의 사진 한 장이 실려있다. 가만히 둘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태극기랑 닮은 사람들이다. 왜 그렇게 느낀건진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들의 마음 속은 일장기를 저주하고 태극기를 품으며 ‘독립만세’의 외침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봉길 의거가 대성과를 거둔 뒤 이런 일이 있었다. 진상을 파헤치던 일본은 처음엔 중국의 짓이라고 했으나 결국 윤봉길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동경사건과 엮어 그 주모자를 알아내기 위해 급급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체포하였는데 거기에는 나에게도 친숙한 이름은 ‘안창호’도 있었다. 주모자가 아무 발표가 없어 다른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원성이 커지자 그분은 진상을 공개하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주위 독립운동가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나는 구분의 인간적인 면모를 여기서 많이 느꼈다. 역사 이야기에 취중이 되어 다른 부분에선 많이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이 마음이 아파 공개를 했고 일본은 그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책의 끝부분에 있는 ‘나의 소원’ 이라는 부분이다. 그 이야기는 첫 시작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하나님이 소원을 물으시면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라고 할 것이라며 고백하고 있다. 그분의 소원은 오직 그것 하나밖에 없다는 결백이 전해지는 것 같다. 여기서 ‘독립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하였거니와······.’라는 문장이 나온다. 나는 그 문장에 너무 감동이 되어 제목도 그렇게 달아버렸다. 뭔가 모를 애절함이 느껴지고 자신을 끝까지 낮추고 목숨까지 받쳐서라도 독립운동에 힘쓰겠다는 진심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또, 그분은 우리 민족으로서 하여야 할 최고의 임무는 남의 절제도 아니받고 남에게 의뢰도 아니하는 완전한 자주 독립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것을 보며 집도 있고 먹을 것도 있고 가족도 있어 나라가 있다는 큰 행복을 잊고 산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일제강점기시대에 독립운동가였다면? 그런데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처럼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곧 인류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라도 말했다. 한번도 독립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나라와 일본 말고 생각해본 적이 없던터라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이해가 잘 안돼는 부분도 있지만 그 분이 자신이 하는 독립운동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고 꼭 해야하는 의무라고 생각했을 거라고 느꼈다. 책을 덮고나니 후회와 반성이 밀려왔다. 일단 내가 중요한 역사를 많이 모른다는 것에 대해 반성해야할 것 같다. 또,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인 ‘애국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봐야한다. 내가 18살이라는 나이를 가지고 이렇게 부끄러울 정도로 생각없이 살다니 말이다. 김구 선생님은 십대 소년때에 동학의 접주가 되어 많은 제자들을 거두었다는데. 그러고 보면 독립정부의 문지기가 되고 싶다던 그분은 꿈을 이루셨다. 그 끝이 어떻든 독립은 됐다. 그 독립이라는 곳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건들과 문제들, 그리고 실패가 있었는지 모른다. 그분은 그 속에서 어떤 유혹이 와도, 매질을 당해도, 목숨이 위태로워도 그 꿈을 쫓아 달렸다. 그분의 한없는 애국심과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의지와 인내를 우리는 기억하고 본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독립정부의 문지기는 지금까지도 우리 마음속에 있어야할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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