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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백범 김구 옥살이 한 감옥도면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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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6-08-11 조회 161
 

백범 김구 옥살이 한 감옥도면 공개

개항기 인천감리서 추정...배치·구조·면적까지 상세

2016년 08월 11일 00:05 목요일
▲ 인천감리서 감옥 배치도. 도면 가운데 타원형 점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증축 전 감옥 담장, 그 안의 직사각형이 옥이다. 타원을 둘러싼 큰 직사각형은 증축 후 확장된 감옥 도면이다. /자료제공=국가기록원


백범 김구(1876~1949년)가 두 차례 옥고를 치렀던 인천감리서 감옥으로 추정되는 도면이 발굴됐다.  

그동안 감리서 전경 사진과 기록으로만 전해지던 개항기·일제강점기 인천 감옥의 시각 자료가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면에는 김구가 옥살이했던 것으로 보이는 감옥의 배치와 구조, 면적까지 실려 있다. 

10일 인천일보가 손장원 인천재능대 실내건축과 교수를 통해 입수한 '인천분감 증축급모양체지도(仁川分監增築及模樣替之圖)'에는 인천 감옥의 전체 배치도와 평면도, 입면도, 단면도가 모두 수록돼 있다. 

도면 제작 시기는 1910~1912년쯤으로 추정된다. 기존에 있던 경성감옥 인천분감을 일제가 증축하려고 그린 것이다. 도면에는 조선시대 전통 감옥과 일제가 확장한 감옥의 규모와 형태, 건축적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관련기사 3면> 


손 교수는 인천감리서를 연구하다가 국가기록원의 일제시기 건축도면 자료 창고에서 이 도면을 발견했다.  

그는 "조선시대 관아나 읍성 안에 있던 감옥은 대부분 문 근처에 자리했고, 옥사 주변에 타원형의 담장을 둘러 다른 공간과 격리시켰다"며 "기와를 비롯한 건축 양식이 전통 양식에서 일본식으로 바뀌고, 타원형 담장이 직사각형으로 변형된 것을 고려하면 인천감리서 감옥을 증축한 도면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인천감리서는 개항장의 행정·사법·통상을 아우르는 관청이었다. 감리서는 동구 화도진에 처음 설치됐다.  

1883년 8월 쓰인 '감리통상사무설치사목'에는 "감리서 건물은 인천은 화도진사를… 잠시 사용한다"고 나와 있다.  

이듬해 인천감리서는 중구 내동 83번지로 옮겨진다. 1칸이 가로 2.4m, 세로 4.8m 크기인 도면의 3칸짜리 감옥도 당시 감리서 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김구는 1896~1898년, 1914~1915년 인천 감옥에서 두 차례나 옥살이를 했다. 인천시민의 지지 속에 신서적을 읽으며 사상을 키웠고, 인천항 축항(1부두) 공사장 노역에 시달리기도 했다. '백범일지'에 적힌 대로 인천은 김구에게 "의미심장한 역사지대"였다.

조우성 인천시립박물관장은 "도면 발굴은 백범일지로만 전해지던 김구의 흔적을 역사적·학문적으로 보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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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 기사의 출처는 "인천일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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