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소개
| 제목 |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었던 민족의 위대한 사상가를 기억하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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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장훈(3기갑여단) | 개최일 | 2019-04-11 | 조회 | 3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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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나라를 꿈꾸었던 민족의 위대한 사상가를 기억하며
90기계화보병대대 대대장 중령 장 훈 이라크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던 2004년경 이라크 파병준비단의 일원으로 우선 파병되어 전쟁의 참화속에 피폐해져 버린 이라크인들의 삶의 단면을 볼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여전히 기억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에 설치된 Camp Victory 미군기지에 하루 1달러의 돈을 벌기위해 일하러 오는 이라크 인들의 눈빛이다. 이는 몇 마디 말로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감정을 담고 있는 듯 했다. 분노와 고통, 절망, 무기력함, 혹은 희망이었을까? 얼마 전까지 그들의 땅이었지만 전쟁에서 패하고 수도를 빼앗기고 국토는 폐허가 되었으며 힘든 허드렛일을 하고 겨우 하루 1달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눈빛을 아직도 기억한다. 책을 덮고서 뇌리를 떠나지 않는 한 가지가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김구 선생으로 하여금 그토록 치열하고 힘든 애국애족의 삶을 살게 했으며 무엇이 위대한 애국심의 원동력이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김구는 아버지부터 대대로 가난했다.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어려웠으며 그의 어린 시절을 둘러보면 구국의 위인이 되고자 하는 위대한 꿈을 처음부터 가졌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궁핍하고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글을 배우고 가문을 일으키고자 하는 의지는 강해보였다. 하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면 천대받고 배고픈 가운데 그가 살아야 했던 힘든 어린 시절이 그의 뜨거운 나라사랑과 민족 사랑의 정신에 토대가 되었다. 그는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차별대우가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아마도 그가 겪었던 어린 시절이 그만큼 고달팠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구선생은 힘없고 나라 잃은 국민들이 겪는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젊은 시절을 보냈고 그 울분과 서러움은 조국독립을 위한 뜨거운 열정이 되어 다시 피어났다. 위대한 인물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스승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김구의 학업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힘든 일이라도 기꺼이 했으며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큰 뜻을 위해서 당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다. 아들이 훗날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 아들을 더 이상 ‘너’라고 지칭하지 않고 ‘자네’라고 부르며 잘못된 것이 있을지라도 김구를 존중하고 책망하지 않겠다고 이야기 할 때는 자식에 대한 사랑과 더 큰 대의를 위해 어미와 자식간의 관계를 내려놓고 대한민국의 아들로 대하겠다는 어머니의 결연한 다짐이 보였다. 이제는 한 어미의 자식이 아니라 국가의 큰일을 수행하는 대한민국의 아들이기 때문에 함부로 책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으며 그러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면전에서 들었을 김구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한 번씩 흔들리는 김구를 언제고 바로잡아 준 것은 그의 몸속에 흐르는 뜨거운 피였고 이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위대한 유산이었다. 김구의 나라사랑, 민족 사랑의 정신은 그 아버지, 그리고 그 어머니의 가슴 벅찬 DNA를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교육열 덕분에 김구선생은 민족의 계몽과 문화적 번영을 위해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졌고 어머니의 희생정신을 직접 보고 배웠기 때문에 대의를 위해 일신의 고통이나 힘듬을 기꺼이 감내하며 뜻하는 바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스승인 고능선 선생을 통해 배웠던 “가지를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이 그다지 대단한 것은 없다.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을 수 있어야 장부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 수차례 등장한다. 김구의 말과 행동을 좌우했던 사상의 큰 뿌리를 형성하는 글이라 생각된다. 곰곰이 곱씹어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가지를 잡고 오르는 것은 나의 꾸준한 노력으로 할 수 있으나 벼랑 끝에서 잡은 손을 내려놓는 것은 진정 용기 있는 자가 아니면 결코 행할 수 없는 일이다. 평생을 쌓은 부와 명예, 그간의 모든 노력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란 무엇인가? 그 용기는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용기이자 자신의 명예와 탐욕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이다. 오죽하면 통일된 조국의 청사에서 문지기가 되겠노라고 소박한 고백을 했을까? 위국헌신하고 애국운동을 실천하는 모습에서 김구의 내려놓음에 대한 용기는 고능선 선생의 가르침을 말로만 배운 것이 아니라 뼈 속까지 새기고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종종 잊어버리는 듯 하다. 역사는 반복되며 과거를 살았던 우리의 선조들도 지금의 이념대립과 각종 사회문제로 인한 갈등 속에 똑같은 고민을 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때 새롭게 고민할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록 속에 선조들이 먼저 밟고 지나갔던 발자취를 통해 해법을 찾아간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김구선생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기 보다는 문제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며 잘못된 점을 바꿔나가려 부단히 애쓰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새로운 학문이나 종교, 사상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뇌하고 갈등하는 가운데 충분한 이해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까지 변화시키려 노력했다. 그러한 탓에 김구선생은 젊어서 동학교도였다가 불교에 귀의하여 원종스님이 되었으며 신민회에서 활동하면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혹자는 종교적 신념이 없다고 할지 모르나 이를 통해 그는 통섭형 사상가로 거듭난다. 세계 인류평화주의자이자 민족주의자였던 김구선생은 당파나 이념은 바람과 같이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요, 민족은 바람이 잔잔해진 뒤에 뿌리와 가지를 서로 걸과 하나의 수풀을 이루어 사는 것이라 했다. 크게 그리고 멀리 한걸음 물러 내려다보니 그의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냉정히 바라보는 가운데 우리 민족이 가야할 방향을 차분히 가리키고 있었다. 진정한 휴머니스트이자 위대한 사상가였던 김구선생. 그가 추구했던 자유주의 정치이념은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자유가 아니라 제 가족과,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 위한 자유였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의 꽃을 심는 자유이며 주변과 더불어 함께 나누는 자유였다. 그러한 사상의 근간은 동서양을 구분하지 않고 배우고 익혀 우리민족에게 어떤 사상이 필요한지?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통해 아름다운 국가를 만들어 나갈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김구의 노력에 기인한다. 김구 선생이 꿈꾸었던 나의 소원에서 그는 자신의 비전과 희망, 생각하는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라는 말에서 그가 얼마나 절박하게 대한의 자주독립을 꿈꾸었는지가 마음에 무겁게 와 닿는다. 그는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았고 다른 그 어떤 욕심도 없었다. 자식과 떨어져 지낸지가 오래되어 그랬을까? 하물며 자기 자식인 인이 폐병에 걸렸을 때조차 조국의 독립을 위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약을 줄 수 없다면 자신의 아들에게도 약을 쓰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 김구선생. 다른 독립 운동가들을 자식처럼 아꼈다고는 하지만 도무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의 가슴속에 사무치며 그토록 크게 자리 잡고 있던 조국의 자주독립은 자기 부모, 자식보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보다 훨씬 더 크게 자리하고 있었던가 싶다. 아버지로써 낙제요, 남편으로써도 낙제다. 그가 최종적으로 기독교 신자였다면 종교적으로도 낙제점을 받지 않았을까?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 우리나라가 잘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김구의 애국심에 가슴이 저민다. 그의 유일한 바램은 조국의 자주독립이었으며, 70평생에 김구선생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완전하게 자주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다가 죽는 것이었다.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며 두고두고 고민했던 것이 개명하는 일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름을 거북구(龜)에서 아홉구(九)로 바꾸고 호는 백범으로 정했다. 미천한 백성을 상징하는 백정의 백(白)과 보통사람이라는 범부의 범(凡)자를 따서 지었다. 이전에는 백범의 의미를 미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호를 백범이라고 지은 까닭을 알고나니 백범이 더욱 새롭다. 잘 배우지 못한 곧 백정과도 같은 범부들이라도 애국심이 당시의 본인과 비슷해진다면 비로소 완전한 독립국민이 될 것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감옥에서 투옥생활을 하면서 호를 백범(白凡)이라 지었다는 이야기가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그는 치열한 자기반성 중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지금 저 왜놈들은 이미 집어삼킨 우리나라를 소화시키려고 밤을 새우는데, 나라를 구하겠다는 나는 나라를 위해 밤을 새워 일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감옥에서 지낼 때조차 죄수들에게 글을 가르쳤고 기회가 되는대로 학교를 세우고 광복군을 길러냈다. 교육을 중시했던 그의 사상덕에, 어쩌면 그의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교육의 중요성과 김구선생의 실천은 대한민국이 오늘의 국격을 갖추게 된 원동력이자 추진력이 되었다. 가난할 지라도 배움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김구선생의 인자한 말이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이라고 했던 조선어학회 이극로 선생의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도 살아서 숨쉬고 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말이 모이고, 말이 모이는 곳에 뜻이 모이고, 그 뜻이 모이는 곳에 비로소 독립의 길이 있다고 했다. 교육을 통해서 국민을 계몽하고자 했던 김구. 자연과학의 발전이나 다른 그 무엇보다도 문화적 번영을 바랬던 그의 이상과 용기 있는 실천이 없었으면, 피 흘리고 살점이 떼이고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저항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김구의 사상은 혼자서 꿈꾸는 그런 사상이 아니라 조국의 자주독립을 애타게 바라던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불처럼 번져갔고 뜨겁게 타올랐다. 여럿이 조국의 자주독립이라는 목적의식을 공유했고 교육과 임시정부 수립 등 자주독립을 위해 필요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며 결정적으로 김구선생 본인이 그 누구보다 솔선수범했다. 개인의 부나 명예를 꾀하지 않았음은 물론 스스로 떳떳한 길을 선택했으며, 목숨을 보존하고자 강자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기 보다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했던 김구선생은 조국을 빼앗긴 나라의 사무치는 서러움을 알기에 내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위대한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던 그는 어릴적 자신의 외모를 보잘 것 없다 하고 관상학적으로 실망했다고 하나 큰 뜻을 품고 평생을 실천하며 고뇌했던 그의 사진 속에, 그리고 백범이라는 그의 호를 통해서 그 위대한 사상과 인품이 묻어난다. 그리고 김구선생이 웃고 있는 사진속 모습, 주름이 가득하지만 이토록 인자하고 온화한 인상이 또 있을까? 김구 선생이 새롭게 다가온다. 김구선생이 꿈꾸었던 자유주의 민주국가는 아직도 진행형이며, 현재의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도 결코 공짜로 얻어지지 않았다. 전쟁에서 패하고 수도를 빼앗긴 이라크인들의 눈빛이 새삼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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