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알림

association of
commemorative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홈 > 알림 >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백범일지』를 읽고
작성자 박혜원(갈매고) 개최일 2018-11-09 조회 2611

『백범일지』를 읽고

 

갈매고등학교

1학년 3반 박혜원

 

마침내 『백범일지』를 다 읽었다. 이제 나도 남들이 김구 선생님의 위대한 업적에 대해 논할 때 애매한 상식으로 분위기를 흐려 놓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백범일지』는 상권과 하권으로 나뉘어져 있다. 상권은 김구 선생님이 자신의 두 아들에게 독립 운동을 하며 본인이 겪었던 일들을 전하고자 쓴 편지 형식의 기록이다. 하권은 『백범일지』 상권이 쓰인지 14년 후, 해외의 동지들이 김구 선생님 자신의 분투 과정중의 허다한 실수들을 거울삼아 그 길을 밟지 말라는 노파심에 쓴 일지이다. 상권과 하권 모두에 각각 다른 맥락의 머리말이 있는 것을 보니 상권을 쓸 때의 김구 선생님은 『백범일지』 하권에 대한 계획은 전혀 없으셨던 것 같기도 하다.

 

『백범일지』를 각 잡고 읽기 전에도, 몇 번 듬성듬성 읽어 본 적은 있었다. 중학교 졸업식이 며칠 안 남았을 때, 친구들이 필독도서일 것이라고 틈틈이 읽어 대서, 나도 어쩐지 의무감이 느껴져서 한 권을 빌려 왔었다. 시간은 널널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읽어 보지 못했는데, 이유는 이 책의 내용이 재미있다고 느껴지기도 전에 한국 고전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의 바로 그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대서사시와 비슷한 내용이었다.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김구 선생님께서는 인풋-아웃풋이 굉장히 확실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관상을 공부하다 자신의 상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직후 ,마음이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 하셨거나, 스승인 고 선생님에게서 거룩한 죽음과 망국에 대한 말씀을 듣고 비분에 우시다가 청에 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 그 예이다. 아마 현대의 모든 스승들이 가장 추구하는 제자의 모습 그 자체가 아닌가 싶다.

 

감탄스러운 점은 그것 뿐 만이 아니라, 추진력(=의지)이 굉장히 뛰어나셨다는 것이다. 동학에 입도한지 몇 개월도 안 되어 접주가 됐을 뿐 만 아니라 치하포에서 얼음산에 뛰어올라 곧바로 위기에 처했던 배를 밀어내고, 명성황후 시해의 일당이거나, 만약 아니더라도 조선에 해를 입힐 인물을 죽이겠다고 결심하면 단시간 내에 그것을 실행하셨다. 계획의 이행이 습관화 된 이상 인생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실행력이 뛰어난 김구 선생님이 추대 받는 이유 중 하나 라고 생각한다.

 

일명 ‘치하포 의거’ 사건 이후, 김구 선생님은 수감되고 만다. 인천 감옥으로 이송되는 도중 우연히 효자 이창매의 비석을 보셨는데, 어머니를 기린 그의 효성과 감옥으로 이송되는 일로 불효를 저지른 본인의 처지를 비교하며 통탄하셨다. 이송되는 와중에 효자의 비석을 보고 그의 효성에 깊은 인상을 받은 김구 선생님이 인상 깊었다. 그 후 사형을 선고 받았다가 국민의 청원으로 취소되고 탈옥을 하는데 성공하였으나 그의 옥중생활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독립운동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어느 날, 신민회의 간도 이민 계획을 진행하던 김구 선생님께 ‘안명근’이라는 한 청년이 찾아왔다. 황해도 지역에 위치한 왜적들의 통신로를 끊은 후, 습격한다는(필요 자금을 내지 않는 안악의 부자들을 위협할 생각으로 그곳의 지도자가 되라 요청하기 위해 찾아온 것) 그의 계획을 듣고 김구 선생님께서는 수감된 안중근의 일을 떠올리며 그를 만류하였으나, 안명근 청년은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 결국 안명근 청년은 사리원에서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김구 선생님과 그가 근무했던 양산학교 직원들, 안명근의 계획에 참여한 많은 애국지사들이 투옥 당했다. 김구선생님은 심문을 당하는 와중에 자신을 심문하는 순사가 대답을 얻어내기 위해 밤을 지새워 윽박지르는 것을 보시고 ‘저놈도 나름 제 나라를 위해 밤을 새워가며 저러는데 나는 조국을 찾기 위해 밤을 새운 적이 있던가?’하며 눈물 흘리고 반성을 하셨다. 이전의 치하포 사건으로 인해 형무소로 이송되는 와중, 효자의 비석을 보고 눈물을 흘리셨던 것과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김구 선생님을 심문하던 순사 중에는 치하포 사건으로 이미 그와 안면이 있는 순사도 있었다. 다만 그 순사는 김구 선생님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을 뿐더러, 대면했을 때 첫 말이, 자기 가슴에는 상대방의 생각을 꿰뚫어 보는 X광선이 있으니 거짓을 말하면 때려죽이겠다는 소리였다. 나는 이 말을 들은 직후 김구 선생님의 표정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도대체 그 순사는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우스갯소리를 할 분위기는 아닌 것 같은데, 혹시 X선이 알려진 지 오래되지 않은 시기라서 X선에 대해 혼동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게 하도 기가 막히셨는지 같은 말 두 번 이상 반복 하지 않는 김구 선생님마저도 이후에 그 형사를 언급할 때마다 ‘X광선이 달렸다고 주장한’ 사실을 강조하셨다.

 

이후 김구 선생님과 일부 독립운동가들은 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동반한 심문을 당하다가 17년 형을 선고 받게 되었는데, 다행히 여러 차례의 감형으로 5년 형 까지 줄어들게 되었다. 출옥 후, 김구 선생님은 임시정부 조직 건으로 상하이에서 함께 수감되었던 바로 그 옛 동지들 외에도 여러 인사들과 만나셨다.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위원으로 뽑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창호 선생님으로부터 경무국장의 자리를 사령 받으셨다. 그리고 2년 후 아내와 아들이 상해로 올라오고, 4년 후 어머니까지 올라오시니 김구 선생님이 신나셨다 하는데 일지에 나오는 것 중 김구 선생님이 즐겁다 하신 몇 안 되는 장면이다.

 

상권의 거의 끝자락에 의열단의 나석주 독립운동가께서 김구 선생님의 생신을 맞이해 고기반찬을 가지고 들르신 일이 언급된다. 수업시간에 알게 된 분을 책에서 뵈니 적잖이도 반가웠다.

 

최고 수령인 국무령이 된 김구 선생님이 임시정부 막사 안에서 붓을 놓는다 하시며 상권이 끝난다. 『백범일지』 상권을 다 읽었을 즈음에는 왠지 김구 선생님이 고조할아버지마냥 친근하게 느껴졌다.

 

하권은 상권과 마찬가지로 머리말로 시작하고, 김구 선생님이 임시정부 경무국장 시절 때의 기이한 일을 회상하는 대목이 나온다. 각각의 일화를 너무 간결하게 서술하는 것에서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 김구 선생님의 합리적인 면을 볼 수 있다. 경무국장 시절의 기이한 일을 대강 소개하는 대목이 끝나면, ‘임시정부가 생긴 이후에 일어난 우리 운동 전체의 파란곡절을 회상해보기로 하자’라고 청유문으로 말씀하신다. 이로써 독자들은 김구 선생님과 함께 과거여행을 떠날 자격을 얻게 된 것이다.

 

김구 선생님과 회상하는 파란곡절 중에는 일본의 꾐으로 만주 내에서 한인(=독립 운동가)들의 목에 상금을 걸어 놓아서, 많은 토착민들이, 심지어는 독립 동포들까지도 동지를 배반하여 서로의 목을 노리는 등 독립운동 세력의 분절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갔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듯 내외로 사람이 없다보니 임시정부의 재정난은 갈수록 심해졌다. ‘이러한 상태에 있어서 임시정부의 할 일이 무엇인가? 첫 째로 돈이 있어야 할 터인데 돈이 어디서 나오나?’라고 하시는데 연속으로 의문문을 사용하시는 모양에서 그의 감정적인 통탄이 느껴졌다. 다행스럽게도 재류 동포들에게 편지를 쓰는 정책으로 재정난을 대강 해결 할 수 있었다.

 

이후 한인애국단에 영입된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에 관한 것이 언급된다. 특히 윤봉길 의사의 거사 직전, 김구 선생님과 서로의 시계를 바꾸는 장면이 나올 때, 위인전이나 전시회에서나 보았던 것을 본문에서 보니까 새삼 뭉클했다. 그렇게 결의에 차 있는 모습이 나는 잘 와 닿지 않는다. 나이도 젊은 사람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 것이 심히 존경스럽다.

 

한편 김구 선생님이 속해 계신 독립운동 세력은 분열과 재결합 과정을 겪게 되는데, ‘국민당 회의를 열어 독립당들을 통일 시키려 했으나 민족혁명당 김원봉의 탈퇴 선언으로 인해 완전 통일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남은 당끼리 통합하여 한국 독립당이 설립된다.’ 는 것이 그 과정이다. 교과서에 나왔던 익숙한 장면이 타지에서 자국인을 보았을 때의 느낌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준다. 일지의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이론상 기나긴 과정을 거쳐야했을 부분을 간결하게 서술한 것이 전개가 빨라서 보기 좋았다.

 

이윽고 일본을 항거시킬 일명 독수리 작전, 즉 국내진공작전의 계획이 준비된다. 가담할 자를 뽑는데 심리학자를 고용하고, 수년 동안 철저한 군사훈련을 요하는데다 국가 간의 국제적 약속을 주고받을 정도의 대규모 합동작전이었다. 그러나 작전의 실행 3일 전인 8월 15일, 일제가 항복을 했다. 평생을 독립을 위해 몸 바친 김구 선생님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이라 하셨다. 사실 일반적인 반응이다. 차라리 ‘에이 부질없게 됐네.’ 로 끝나면 좋겠지만 작전의 규모가 규모이다 보니 국제적인 요소가 얽혀있었기 때문에, 조국의 위상 하락에 관한 것도 문제였다.

 

하권의 막바지에 도달했을 때, 김구 선생님은 다시 조국의 땅을 밟게 되셨다. 또한 『백범일지』 상권에 나왔던 인물들의 이름이 몇몇 언급된다. 상권에서 유독 기억에 남았던 인물들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어 이 사람!’이라는 반응이 절로 나왔다.

 

맨 뒤에는 ‘나의 소원’이라는 부록 같은 수필이 자리 잡고 있다. 『백범일지』 상. 하권을 전부 읽고 난 후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을 때 보면, 김구 선생님의 자주독립에 관한 소망과 이념을 담은 글이 유언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하권의 맨 끝 부분을 읽고 난 후 머리를 식힐 시간을 갖고, 특히 감성이 몰려온다는 새벽 시간대에는 읽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하권 맨 끝자락의 ‘아직은 붓을 놓는다’가 주는 여운과 ‘나의 소원’의 시작 부분 중 ‘동포 여러분!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 없다’에서 화자-청자가 대화하는 식의 서술이 주는 생동감, 그 시간대에 유난히 몰리는 감성이 시너지를 일으켜 매우 아련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백범일지』를 읽기 전, 김구 선생님에 대해 그리 잘 알지는 못하였다. 김구 선생님이 독립 운동을 아주 열심히 하신 건 알았지만, ‘김구’라는 인물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크게 와 닿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당사자가 직접 쓴 일지를 보니 김구 선생님이 왜 세간에 존경 받는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사실 모든 자서전에는 과장된 것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들었다. 그러나 『백범일지』에 과장이 가미되었다 해도, 나밖에 몰라서 나라에 삶을 바치는 것은 꿈도 못 꿀, 나의 입장에서는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비록 역경에 고난에 희생이 가득했지만, 김구 선생님이 그토록 그리셨던 대한민국의 광복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백범일지』의 간결한 문체 때문인지 띄엄띄엄 웃기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광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던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독립을 위해 힘써주신 김구 선생님과 그와 함께 활동했거나 암암리에 알려지지 않은 다른 독립운동가분들에게 감사하다. 그 분들의 실행력과 목적의식, 결의를 본받고 싶다. 또한, 늘 자신의 아들을 뒤에서 받쳐주고 그의 독립운동을 지지해주셨던 김구 선생님의 어머니도 필히 존경받아 마땅하다. 자신을 밀어주는 부모님이 계셨기에 김구 선생님께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꿋꿋이 해내실 수 있었던 것 같다. 현재에 내가 이렇게 편히 살고 있는 것도 과거,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각고의 헌신 덕분이다. 그런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기억해야겠다.

목록
이전글
2018년, 우리는 모두 백범이 되어야 한다.
다음글
『백범일지』를 통해 본 나와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