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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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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나의 소원’은 계속된다.
작성자 김수형(경남고) 개최일 2018-09-18 조회 2677

‘나의 소원’은 계속된다.

- 김구의 『백범일지』를 읽고 -

 

경남고등학교

1학년 2반 김수형

 

E.H. 카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말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2018년 4월 27일, 우리 세대에겐 이름도 낯선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간절히 바라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쉽사리 성사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던 일이 일어났고 우리 국민은 울컥한 심정으로 TV채널을 향해 숨을 죽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 아이들 줄넘기 하듯 폴짝 뛰어넘어 상대방의 나라에 발 디딘 것이 그렇게 오랜 기간을 거쳐 온 우리 민족의 숙원이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전까지 핵 위협으로 미국도 눈치를 봐야 했던 나라, 전 세계 악의 축이었던 북한이 이렇게 갑자기 빗장을 풀고 나올 거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북한의 갑작스러운 남북정상회담의 수락은 그야말로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솔직히 그전까지만 해도 고조되던 한반도 위기 때문에 어느 순간 전쟁이 나는 건 아닐까 무섭게 느낀 적도 많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의 경계를 넘는 그 순간, 우리 국민의 호흡이 일시 정지 되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은 6.25의 상처를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에게도 엄청난 감격으로 다가오는데 전쟁을 겪은 세대라면 아마도 그 벅찬 감동을 말로 나타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장면 하나를 만들기 위해 용기를 낸, 아니 어쩌면 나라의 운명을 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단에 감탄하기도 했다. 저격이나 암살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위해 남북한이 함께 한 발을 내딛은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의 감격은 그동안 단절되었던 북한과의 소통의 길을 연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항상 적으로만 인식했던 북한이 이 날을 기점으로 같은 언어가 통하는 ‘친구’가 되고, 같은 길을 걸어 나갈 ‘동지’가 되고, 평화를 함께 꿈꾸는 ‘한 민족’으로서의 길을 함께 해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이 날의 기쁨을 더욱 크게 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 독립하였을 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아니었을까. 해방의 기쁨은 잠시, 일본으로부터 독립은 하였지만 나라의 정세는 혼란스러웠고 미국, 소련과 같은 열강에 의해 정치색이 덧씌워지고, 자신과 다른 정치적 이념을 따르는 자들을 적으로 간주하여 서로 미워하고 서로 죽이는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던 해방 후의 어수선한 시기 말이다.

 

김구는 한 명의 선인이자 애국자이자 독립운동가이며 종교인이자 지식인이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일본의 손에 넘어간 자신의 고국을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을지 자나 깨나 고민했다. 그 결과 그의 나이 열여덟 살 때 동학에 입문해 접주의 자리를 받아 동학군을 이끌었으며 고능선에게서 위정척사 사상을 배우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안 진사, 즉 안중근의 아버지가 서양의 문물을 배운다는 이유로 고능선과 함께 진사와의 연을 끊기도 했다. 솔직히 나는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열린 사고를 지녀야 할 지식인들이 나라의 문을 닫는 데 앞장서는 것은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그 당시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입장에선 이런 판단을 섣불리 하는 것도 편파적일 수 있기에 좀 더 생각을 가다듬고 깊이 있게 지나온 역사를 더듬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이후로도 김구는 을미사변의 응징으로 일본인 육군 중위 스치다를 죽여 감옥에 투옥되어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일본인을 큰 소리를 꾸짖었다. 심지어 그 자리에 있던 경무관, 감리사 등 고위 관직의 사람들에게 일본의 편에서 관료로서 그렇게 있어야 하겠냐며 혼쭐을 내는 것을 보고 나라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그의 기백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일제 강점기에도 그는 임시정부에 가입해 내무장이 될 만큼 그의 애국심은 이 책, 『백범일지』 전체에 걸쳐 사실적으로 나타나 있다.

 

오로지 나라의 독립과 해방, 하나 되는 나라의 건설에 앞장서다 보니 김구의 개인사는 참으로 서글프기만 한 불행의 연속이었지만 그의 투철한 애국정신, 그가 추구했던 올곧은 이념은 미국과 소련의 억압에서 벗어나 완벽한 하나의 대한민국을 이룩해내는 데 크나큰 힘을 발휘했고 오늘날 우리가 그를 민족의 지도자로 기억하는 데 한 치 어긋남이 없는 발걸음을 보여준 것에 대해 후손으로서 감사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그가 절실하게 바랐던 소원, 완벽한 대한독립은 일제 강점기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미국과 러시아와 일본의 견제를 받고 있는 현재가 어쩌면 강대국의 억압과 견제를 받고 있는 현대판 강점기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 김구 그가 절실히 원했던 그의 소원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본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p.433)

 

김구의 이 간절한 소원은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이 아닌, 남북한의 통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피 끓는 외침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외세에 의해 남한만의 단독 정부가 수립되었고 북한은 북한만의 인민공화국을 수립하여 두 개의 정부, 길게는 각각의 나라로 넘는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살아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지나간 역사를 통해 분명히 배워야 한다. 우리 민족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길에 분열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위협과 강제, 타율에 의한 억압의 상황은 이제 우리의 힘으로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남북정상회담의 악수를 통해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이 만남을 통해 김구, 그가 꿈꾸었던 그의 소원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면 내가 너무 순진한 걸까.

 

아니다! 부산에서 시작되는 유라시아 횡단철도가 북한을 거쳐 중국, 러시아, 유럽에 이르는 대륙의 핏줄이 되기까지 우리의 소원은 계승되어야 한다. 남북한의 국민 모두가 함께 바라는 단 하나의 소원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가능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김구 그의 소원을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되새겨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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