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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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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당신을 뒤쫓다
작성자 추성연(용성중) 개최일 2017-09-18 조회 2946

당신을 뒤쫓다

 

용성중학교

3학년 3반 추성연

 

내가 당신을 처음 마주한 것은 아주 어린 시절의 여름 무렵이었다. 나는 햇빛이 떨어지는 바닥을 좋아해 줄곧 그렇게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책을 읽었다. 먼지가 쌓인 위인전들 사이 당신의 두 글자 이름이 내 눈에 띠였던 것도 그 때였을 것이다. 위인전은 나에게 지루하다는 감정만 남긴 채 쌓여왔고 당신도 그 속에 하염없이 묻혀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6살 늦여름 무렵 애석하게도 나는 그 때서야 백범, 당신을 제대로 마주하게 되었다.

 

당신이 처음 세상 빛을 마주한 날도 7월의 해가 그림자를 땅에 드러눕히던 그런 날이었다. 대단한 난산과 함께 태어난 당신은 어렸을 때부터 교육에 대한 열정과 집착이 남달랐다. 아버지를 졸라 선생님 한 분을 모셔올 뿐 아니라 공부라는 이유 하나로 십리씩이나 되는 험한 골짜기를 서슴없이 걸어 다녔더랬다. 그 이후 유년기의 미숙하고도 뜨거운 열정을 쏟아 부었던 공부의 결실을 맺을 과거 날이 다가왔을 때, 당신은 부정부패로 들끓는 과거장을 보고 크게 실망하며 그를 계기로 서당공부를 그만두었다. 그 이후 당신은 관상공부를 하다 책 속의 구절에서 인생의 실마리를 찾았다. “얼굴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이 구절에 당신은 관상 좋은 사람보다 마음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리라 다짐하였다. 이 때 당신의 나이는 고작 17살이었다. 고작 17살, 어린이와 어른의 경계에서 내가 요지부동하고 있을 때 당신은 이미 자신의 미래로 향하는 길을 만들고 있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당신과 나의 떡잎차이인가 보다. 나는 당신의 유년기를 읽으며 당신의 떡잎을 세심히 들여다보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내 떡잎과 당신의 떡잎이 무언가 다르다했더니, 당신은 그 떡잎을 자신이 가꾸고 있었다. 나는 당신의 유년기의 떡잎을 바라보며 내 떡잎을 뒤로 숨겼다. 관심을 주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주인을 닮아서인지 땅에 머리박고 내리꽂혀있는 내 떡잎을 말이다. 이것이 당신과 나의 차이이자, 내가 당신을 뒤쫓아야 할 이유 중 하나였다.

 

당신이 직접 가꾼 그 떡잎은 올곧게 하늘을 찔러 나아갔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 떡잎도 땅에 머리가 박힐 위기가 찾아왔다. 당신이 성인이 되었을 무렵, 틈틈이 조선을 노리던 일제가 서서히 그 새까만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어 명성황후가 시해당하고 당신은 왜놈 한명이라도 처단하여 나라의 치욕을 앙갚음하고자 주막집에서 한 일본인을 처참히 밟아 처단하였다. 왜놈을 수차례 칼로 찔러 물들 듯 흐르는 왜놈의 피를 손으로 움켜 마시고 그 피를 얼굴에 칠했던 당신. 나는 이에 꽤나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혹여 당신이 비웃을지도 모르는 내 상상 속의 당신은 매우 점잖고 조신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교도소를 갔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사람을 죽이고 갔을 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사람을 죽인 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당신은 정말 다행히도 고종의 전화 한 통에 교도소를 나올 수 있었다. 당신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서 언뜻 보았던 이야기이지만, 고종이 했던 그 전화는 3일 전 개통된 최초의 장거리 전화였다고 한다. 당신이 교도소에서 나온 것은 전화 한 통이 바꾼 우리의 역사이자 또 다른 시작이었다.

 

교도소에서 나온 당신의 나이는 한참 청춘에 물들여질 23세였다. 그러나 당신은 자신의 나이를 청춘이 아닌 교육과 애국으로 물들이더니 물들여진 당신의 나이가 점점 더 깊은 색을 낼수록 교육활동을 더욱 활발히 넓혀갔다. 당신은 마곡사에서 중이 되었고 몇 년 사이에 학교를 세우는 등 자신의 나이를 정말 열심히 물들여갔다. 당신의 이름을 ‘김구’로 고친 것도 이 사이 시기에 있었던 일이다. 당신에게 불행은 달갑지 않은 만큼 자주 찾아오는 손님이었다. 그 달갑지 않은 손님이 얼마 뒤 당신을 두드렸다. 당신이 안중근 의사의 동생인 안명근과의 관계로 세 번째 투옥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신은 두꺼운 몽둥이로 난타되고 살갗을 찢을 듯이 차가운 냉수에 얼굴을 맞으며 고문을 당할 때조차도 고문관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내가 남의 나라를 한꺼번에 삼키고 거듭 씹어대는 저 왜놈처럼 밤새워 일을 해본 적이 몇 번이었던가?” 나는 이를 읽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정말이지,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신은 최대의 최선을 다하고도 최소의 만족을 하는 사람이었다. 항상 최선을 다했고 민족의 지도자 역할에 충실히 임했다. 무엇이 그리도 아쉽고 부끄러운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못했던 것이었다. 나는 당신처럼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해본 적도 없을 뿐더러 이미 국권을 가지고 있는 시대에 태어나 ‘평범함’이라는 행복을 가지고 살았기에 당신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그 당시 독립 운동가들의 고통을 나는 평생 느껴보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단 한 번도 최선을 다해본 적 없는 내가 당신의 후회와 부끄러움을 이해할 수 없다느니 가벼운 말을 함부로 놀릴 자격이 있긴 할까? 나는 그 페이지에 머물러 당신의 생각을 몇 번이고 읽으며 되물었다. 내게 답을 줄 당신이 가까이 있는 줄 알았건만 너무 멀리 있었다. 내가 뒤쫓아 가기에 당신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높은 하늘과 같은 사람이었다.

 

당신의 하늘같은 모습은 생각뿐만 아니라 행동에서도 자주 보였다. 당신은 징역 17년 판결로 서대문감옥으로 이감되었지만 보안법 2년이 면제되고 강도죄에서 감형될 뿐 아니라 명치 일왕과 그 처의 죽음으로 5년으로 감형되었다. 당신은 이때 왜놈의 호적에서 벗어나고자 호를 거북 구(龜)자에서 아홉 구(九)자로 바꾸었다. 또 호를 백범이라고 고쳤는데 이는 우리나라 제일 아래층 사람들, 즉 백정과 평범한 사내들까지도 애국심이 지금의 자기 정도는 되어야 완전한 독립국민이 될 수 있다는 당신의 바람이었다. 자신의 이름 한 자에도 애국심을 새겼던 당신을 바라보며 나는 왜 사람들이 당신을 그리도 우러러 보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당신은 마음가짐이 참된 사람이었다.

 

당신의 그 마음가짐을 알아봐주듯 독립의지를 품은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상해에 임시정부가 세워졌다. 1919년, 당신은 그 곳의 경무국장이 되었고 그로부터 4년 후인 1923년에 내무총장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당신은 임시정부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며 1930년에 한국독립당, 1931년에 한인애국단을 창단하여 당신의 10여년 세월과 함께 독립의지를 불태워갔다. 나는 당신의 임시정부활동 중에서도 당신과 윤봉길 의사와의 대화를 생각하면 아려오는 그 씁쓸함에 일렁이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를 먹어야 했다. 그 씁쓸함의 주인공이자 윤봉길 의사에게 남았던 한 시간과 함께 당신에게 쥐어졌던 시계 말이다. “제게는 한 시간밖에 소용없는 물건입니다.”라고 담담히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곧 비어질 그의 자리에 대한 씁쓸함에 사로잡혔다. 나는 참을 수가 없어 돌아오지 않을 답변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당신들은 한 시간의 숨조차 사치라고 생각하는가. 마지막까지 목숨을 조국에 바치고서도 왜 웃을 수가 없었는가. 내가 이리 소리치고 물어도 바뀌는 것이 없을 것이란 것은 애초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마 그들은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하겠지. 나는 많은 이들의 눈물이 만들어낸 현재를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마음 한 구석에 구멍이 난 느낌이었다. 그 구멍이 나에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신과 같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크게 뚫린 구멍 사이로 얼마나 차가운 바람들이 스쳐 지나갈지 나는 상상조차 불가능했다.

 

수많은 시간동안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많은 사람들이 구멍을 메워가며 피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내 우리나라는 그토록 바라던 독립을 했다. 누가 이것을 기적이라 하는가? 이것은 단순히 신에 의하여 행해졌다는 기이한 일이 아니었다. 독립운동가들이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희생한 결과이자 그토록 바라던 ‘평범함’이었다. 평화로운 나라,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일생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당신이 바라던 자유가 아니던가. 그들에겐 이 평범함조차도 욕심이었던 건가. 독립이란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겐 그다지 와 닿지 않는 말이지만 이들에겐 그 무엇보다도 값지고 영광스러운 말일 것이다.

 

김구, 당신은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안겨준 사람이다. 나에게 ‘평범함’이라는 행복을 선물해준 사람이다. 당신의 발자취에 내 발을 포개어 걸어본다. 포개어지는 걸음마다 여러 감정들이 섞인다. 16살을 먹고 이제야 당신을 마주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 당신의 독립투쟁을 보며 느꼈던 애국심,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과 간접적으로 함께한 고통, 또 한편으로는 당신을 위인전이 아닌 백범일지로 만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위인전을 유독 지루해 했던 내가 당신과 같은 위인의 역사를 뒤쫓는 일은 참으로 낯선 일이다. 백범일지는 당신의 자서전과도 같았기 때문에 위인전에선 보지 못한 당신의 진실하고도 평범한 하루도 엿볼 수 있었다. 당신의 약혼녀 얘기와 또 결혼이야기, 자식이야기, 부모님과 나누었던 눈물겨운 이야기 그리고 동지와 나누었던 뭉클한 대화까지도…. 백범일지를 읽다보면 고개를 들고 당신을 우러러 볼 일이 많지만 이렇게 가끔 당신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항상 우러러보던 상대의 평범한 하루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기쁘면서도 가슴 아픈 일이다. 평범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평범한 당신이 평범치 못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고 나면 가슴이 그렇게 미어질 수가 없었다. 어쩌면 당신이 백범일지를 쓴 동기가 유서뿐만이 아닌 그 역사를 보며 후손들 또한 그들과 같이 나라를 위한 눈물을 흘려주길 바랐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들이 흘리는 눈물과 내가 흘리는 눈물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내 눈물은 짜다. 그런데 그들의 눈물은 피 맛이다.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피눈물을 흘렸다. 그 피눈물을 결코 내가 우리나라를 위해 흘릴 수 있을까? 이것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나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나라를 위해 눈물 한 방울 흘려본 적 없는 내가 당신 앞에서 이렇게 떳떳이 얘기한다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이런 내게 그 당시 당신을 만나볼 기회가 있다면 나는 당신의 몸을 부여잡고 힘껏 안아 울어보고 싶다. 이제야 뼈저리게 느끼는 이 애국심을 당신의 품에 묻고 울어보고 싶다. 지금 흘리는 이 눈물과 함께 당신의 발자취를 따라 올바르고 정직한 마음가짐을 품어보고 싶다. 때문에 나는 평범치 못한 삶을 산 평범한 당신의 역사를 뒤쫓아보려 한다. 그 끝에 나라를 위해 진실 된 눈물을 흘리는 내가 있다면…. 비로소 나는 당신을 떳떳이 마주할 수 있으리라. 그 때가 오면 나는 또다시 백범일지를 펴고 당신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를 계속해서 새기며 잊지 않으리라 책 속의 당신과 약속한다. 고로 오늘도 나는 평범한 당신이 결코 평범해질 수 없었던, 파란만장한 삶이었지만 찬란하지는 못했던 그 역사를 미어지는 가슴에 새기고 당신의 발자취를 뒤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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