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소개
| 제목 |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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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한준구(충주대원고) | 개최일 | 2017-04-28 | 조회 | 3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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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충주대원고등학교 2학년 한준구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이후, 36년을 일본의 지배하에 살아온 우리였다. 1945년 광복까지의 이 기간을 일제강점기 또는 일제암흑기라고 부르며 우리 민족의 암흑기로 평가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지금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존경받으며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는 위인들의 대부분은 일제강점기에 등장하였다. 현대에 와서 우리들의 교과서를 장식한 위인들의 저항정신은 아직도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그 저항 정신을 몸소 실천하여 민족의 광복을 이끌어낸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등 여러 독립열사들의 중심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있었다. 백범일지는 한국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이다. 김구는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적의 이름은 김창암이다. 백범일지는 상권과 하권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시대 순으로 전개된다. 백범일지 상권 초반에는 김구 선생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재미있는 사건들이 나오는데, 읽으면서 흥미를 느끼면서도 조금 놀라기도 했다. 과거 읽었던 다른 위인전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김구 선생이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이부자리에 넣어 둔 엽전 스무냥을 가져다가 떡을 사먹으려 했다가 매 맞은 사건이 실려 있기도 했다. 또한 장련 할아버지께서 아버지가 김창암을 때린 것을 두고 책망한 것이 고소하다는 듯이 이야기한 부분 역시 인상적이다. 그 부분을 읽으며 어릴 적 철없이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사고를 치던 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김구 선생을 떠올릴 때에 내심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인간적인 모습의 김창암을 접하고 나서는 김구 선생님과의 마음 속 거리감이 훨씬 더 줄어든 듯 했다. 인간적인 모습의 김창암 덕분에 김구 선생의 상황에 나를 비교해보기도 하며 훨씬 더 몰입할 수 있었다. 본래에는 양반의 자손이지만 반역죄를 저지른 김자점의 방계 후손이라 그것을 숨기고 일반 양인의 신분으로 살며 ‘상놈’이라 차별받고 힘들어하는 김창암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니 안쓰러워 가슴이 아려 오기도 했다. 김구 선생께 몰입할 수 있게 되자 과거를 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아버지의 마음도 이해가 갔다. 자식이 상놈으로 차별받으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부모로서도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김구 선생의 부모님은 김창암의 과거시험을 적극 지원하였지만 정작 김창암은 과거 제도의 여러 폐단을 보고 회의감을 느끼고는 다른 공부를 시작하였다. 이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일본에 큰 분노를 느낀 김구는 치하포의 숙박 집에서 조선인인 체하며 칼을 차고 있던 일본인을 목도하고는 그를 죽여 나라의 치욕을 앙갚음하고자 하였다. 김구는 이 일본인이 일본군 중위라 주장하였지만 실제로 그는 을미사변과는 관계가 없는 평범한 일반인이었다고 한다. 비록 나라에 커다란 치욕을 설욕하고자 했던 김구 선생의 감정은 마음속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을 때 일본인의 신분도 확인해보지 않고 한순간의 오판으로 생명을 앗아가 버린 행동은 아쉬웠다. 살인을 정당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김구 선생의 깊은 애국심이 이런 일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김구 선생의 뼛속 깊이 스며든 애국심은 이후 김구 선생의 행보를 좌우하게 되었다. 김구 선생은 민족의 계몽을 위해 장련학교와 양산학교를 주최하는 등 교육에 힘썼다. 뒤이어 김구 선생은 일본의 대한민국에 대한 간섭에 대항하여 3·1운동에 참여하였고, 상해 임시정부의 경무국장, 내무총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931년에 이르러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한인애국단’을 창단하기에 이른다. 내가 직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뽑는다면, 바로 이 무렵 김구 선생과 이봉창 의사의 만남을 고르고 싶다. “제 나이가 31세입니다. 앞으로 다시 31년을 더 산다 한들 과거 반생의 삶에서 방랑생활을 맛본 것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육신으로는 인생쾌락을 대강 맛보았으니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도모하렵니다. 그래서 우리 독립 사업에 헌신하겠다는 목적으로 상해로 왔습니다.” 이렇게 말하던 이봉창은 그 몇 마디에 담긴 그의 위대한 인생관으로 김구 선생을 감격시킬 수 있었다. 그 글을 읽던 나 역시 이봉창 의사의 말씀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봉창 의사가 하신 뜻깊은 이야기들은 맹목적으로 현대를 살아가던 나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으며, 그 여운은 지금까지 남아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나와 김구 선생을 감동시킨 이봉창 의사는 그의 파란만장했던 인생과 커다란 포부, 그리고 폭탄을 안고 일왕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아쉽게도 여러 대의 마차 중 일왕이 탑승한 마차를 알아차릴 수 없어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이봉창 의사의 시도는 한인이 일본에 동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세계만방에 증명할 수 있었고, 그의 희생은 우리 사이에서 영원히 회자될 것이다. 이봉창 의사의 의거 이후에는 윤봉길 의사가 등장하였다. 윤봉길 의사께서 남겼던 말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다음이다. “제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에 선생님 말씀에 따라 6원을 주고 산 것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 짜리이지 않습니까. 제게는 한 시간밖에 소용이 없는 물건입니다.” 윤봉길 의사가 거사를 치루기 얼마 전에 김구 선생과 시계를 교환하면서 한 말이다. 나는 얼마 전 학교에서 체험학습으로 백범김구기념관을 다녀오면서 해당 시계들을 본 적이 있기에 더욱 인상적이었다. 기념관에서 교환 당시의 상황들을 떠올려 경건히 시계를 바라보며 그 의미를 되새겼던 경험을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으며 경험할 수 있었다. 어쨌든 윤봉길 의사는 물통 모양 폭탄을 던져 홍구공원에서 민단장 가와바타, 시리카와를 죽이고 일본 군민 관료 여럿에게 중상을 입혔다. 하지만 그가 자결용으로 가져왔던 도시락 폭탄의 불발로 붙잡혀 순국했다. 이때 윤봉길 의사의 나이가 25세라고 하니, 그의 의지가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두 의사의 순국 이후에도 백범 김구 선생의 애국활동은 계속되었다. 1938년에 임시정부를 옮긴 후 1940년에는 한국독립당을 결성하고 임시정부의 주석이 되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41년에는 대한민국건국강령 제정을 발표하고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마침내 1945년 고대하던 해방이 온 이후에 남과 북이 분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신 분도 김구 선생이었다.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을 발표하여 통일정부 수립을 절규, 남북연석회의에도 참여하여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하였으나 깊은 애국심에서 비롯된 김구 선생의 활동이 누군가에게는 눈엣가시였는지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에 맞아 운명을 달리 하시고 말았다. 결국 김구 선생이 두려워하셨던 대로 남북이 분열되고 1950년에는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사건마저 일어나게 된다. 1949년 김구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알고 백범일지의 마지막 ‘나의 소원’을 읽으니 마음이 더욱 가라앉았다. 어쩌면 1950년의 6·25전쟁을 보시지 않고 세상을 떠난 것이 다행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북이 분단되어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현대에 살아가는 한 명의 사람, 아니 국민이었기에 더욱 경건한 자세로 마지막 김구 선생님의 말씀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래야 했다. 당시의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여러 독립열사들이 계셨기에 내가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한국어를 모국어로 배우며, 이분들의 이야기를 배우고 익힐 수 있으니까 말이다. 김구 선생께서 마지막까지 바란 것은 단 하나였다.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자. 우리 대한은 남과 북으로 나뉘어 다투고 있으며, 심지어 개중에는 남과 북의 통일을 원치 않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한다. 김구 선생의 꿈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반은 직접 이루셨지만, 나머지 반은 남은 우리들에게 맡겨두셨다. 남은 숙제를 해결할 책임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비로소 김구 선생의 영혼까지도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다.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역사는 현재를 바라보는 도구라는 말이 계속 와 닿았다. 김구 선생을 비롯한 여러 위인들이 지켜낸 지금의 대한민국은 과연 긍정적일까. 독립열사들이 일본과 친일파로부터 지켜낸 조국이 도리어 이승만 자유당 정권에서는 친일파가 사회 요직을 독차지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로 아직까지도 친일파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한 상태이다. 친일파에 대한 준엄한 심판은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오늘날 국정농단도 이러한 점을 게을리 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민족을 위해 헌신했던 선열들이 지금의 우리들을 보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이제 우리는 애국 선열들의 정신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우리 스스로를 정비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희망찬 미래, 영광된 조국 건설의 출발점에 서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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