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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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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햇볕 뒤의 그림자
작성자 김연재(목포정명여고) 개최일 2016-10-31 조회 2976

햇볕 뒤의 그림자

 

목포정명여자고등학교

2학년 김연재

 

‘정의란 무엇인가?’ 네 번째로 [백범일지]의 책장을 넘길 즈음이었다. 그 자체의 의미보다는 한 유명 베스트셀러의 제목으로 더 익숙한, 질문 하나가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공정함, 정당함… ‘정의’를 쉽게 규정할 수 있는 방법들은 숱하게 많다고 생각해 왔지만 [백범일지]의 마지막 장까지 빼곡히 메워진 백범 김구의 삶의 기록들은 이제껏 내가 단순한 단어들로 설명해 왔던 ‘정의’보다 훨씬 강력하고, 먹먹한 무언가임이 분명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내지 못했기 때문일까, 다섯 번째로 [백범일지]의 표지를 바라보았을 때, 이번에는 그가 이루어 낸 ‘정의’의 굳건함보다 그 단단함을 만들어 내기 위해 흘려진 수많은 이들의 땀방울이 먼저 떠올랐다. 그때서야 비로소 초등학교 시절부터 숱하게 보아 온 책의 정중앙에 자리한 김구의 강인한 얼굴 너머로 그와 뜻을 함께하고, 행동을 같이 하며, 한 마음으로 생을 살다 간 얼굴들이 드러난 듯 했다. 광장을 꽉 메우고 선, 자식의 감옥 앞에서 무릎을 꿇은, 탄환 앞에서 몸을 던진, 그러나 지금의 우리에게는 열사도 의사도 이름 끝에 붙이지 못한 얼굴 없는 숱한 ‘열사’고 ‘의사’들이 그제 서야, 내 눈에 확연히 들어왔던 것이다.

 

자서전 [백범일지]의 저자이자, 광복 전후 대한민국의 주권 수호 운동의 큰 축으로 활동한 백범 김구의 삶이 처음부터 그리 칭송받을 만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책의 앞머리에서도 어린 마음에 여러 짓궂은 장난질을 쳐 집안 어른들에게 훈계를 적지 않게 받았던 개구쟁이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였는데, 물감을 마을 어귀 개울에 풀어 놓기, 아버지의 숟가락을 훔쳐다가 엿 바꿔 먹기, 떡 사먹을 욕심에 화장대 위 푼돈 슬쩍하기 등 그가 벌인 엉뚱한 행동들은 그가 그 나이 즈음에 언니와 함께 엄마의 구두를 신고 거실을 헤집어 놓고, 거기다 겁 없이 생선을 오븐에 넣었다가 몽땅 태워 먹어 엄마에게 대판 혼이 났던 나의 어린 날과 다름이 없이 철없고 순수하였던 것 같다. 아마 그 때의 김창수의 인생은 그 스스로에게도 상놈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갈 운명을 가진 것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를 향한 열망과 그만의 굳은 심지는 안중근의 아버지 되는 인물인 안태훈 진사, 동학 교주 최수운 선생 등 민족 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친 조력자들에 의해서 비로소 세상으로 드러나 보이게 되었는데, 그 때야말로 소년 김창수가 독립 운동가 김구로, 한 상놈의 꿈에 불과했던 애국심이 주권 수호를 위한 직접적 행동으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리하여 단발령과 을미사변으로 사회가 혼란하던 당시, 가슴 속에 뜨겁게 불타오르는 분노와 개혁 정신을 품고 있던 이 청년은 시해된 명성황후에 대한 복수라는 명목으로 한 일본 육군 중위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되는데,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말로 설명되는 함무라비의 고전적인 원칙을 전혀 수용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사실상 몇 번을 반복하여 읽어 본 지금도 김구의 이러한 행위를 온전한 ‘정의’로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복수의 대가로 인천감옥에 투옥된 그 시점이 훗날 대대적 민족 운동을 이끈 역사적 지도자 김구의 발걸음이 단군의 이상을 담은 햇살을 향해 본격적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인생의 반환점 중 하나가 되었으며, 손목에는 수갑을 차고 눈 앞에는 가혹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일파 관료들의 눈동자를 똑똑히 바라보며 굳센 독립 의지를 당당히 호령한 그 용기가 출옥 이후 학교를 세워 민족의 실력 양성에 힘쓰고, 계몽 운동을 지휘한 죄로 다시금 갇힌 감옥에서 온갖 수모를 이겨내며, 시정부의 내무총장, 국무령과 재무장을 거쳐 광복 이후 통일정부 수립에 주요 인물로 활동하기까지 백범 김구가 펼치는 운동 하나하나에 큰 원동력이 되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무엇보다 민중의 지도자 백범 김구가 가진 삶의 방식에서 유달리 돋보였던 것은 바로 ‘관용’과 ‘절제’였다. 어렸을 때부터 받은 상처를 덮어 놓을 줄만 알았지, 그를 용서하는 일에는 영 서툴렀던 내가 절로 부끄러움을 느낄 만큼 김구는 일제의 핍박에 강력히 저항하는 것과 별개로 농촌에 양산학교를 세워 교사로 부임할 당시 앙심을 품고 교내에 불을 지른 사설 서당의 훈장을 신고하지 않고 그저 마을 밖으로 보내어 용서하는 등 근대 국가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신구 간의 갈등에는 온화하고 수용적인 태도로 일관하였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경성 감옥에서 출소한 이후 농촌 개량에 힘을 쏟으며 마주친 농민들의 인심을 가장한 뇌물들을 단호히 거절하고, 도의를 거스르는 혼담이라면 망설임 없이 잘라내는 등 매사에 지나간 자리에 구정물을 남겨 놓지 아니하는 결단력을 지녔다. 그러한 자신의 신념과 순리를 확고히 지키는 그의 확고함은 당장 민심이 합치되지 못하고 흉흉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교육과 문화의 발전과 함께 정치 제도의 개혁을 강조함으로써 하여금 훗날 독립을 맞은 대한민국이 올려놓아질 근대 국가의 탄탄한 토대를 미리 마련하게 한 혜안이었고, 동시에 내가 그에게서 가장 본받고 싶은 가치관 중 하나이다.)

 

[빛이 제 뜻대로 온전히 빛나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어둠이 존재하여야 한다] 언젠가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소설에서 그저 흘려 보던 글귀 하나가 유난히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래, 만물에 생기를 불어넣는 광명이 하늘로부터 존재키 위해서는 반드시 그 만큼의 그림자가 땅 위에 내려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리라.

선두에 서서 사람들을 지휘하기보다는 열의 끝에서 뒤처진 이들을 감싸는 데 우선하였던 백범 김구, 그리고 그를 따라 온전한 세계 평화의 이상을 이루고자 제 한 몸을 희생한 수많은 이들에게서 나는 빛을 등지고 선 여느 화려한 것들이 아닌, 오늘날의 들판에 밝은 햇살을 비추게 한 피와 눈물로 얼룩진 그림자를 본다.

남의 밑에서 누리는 부귀보다 제 나라의 비천한 문지기를 소망한 그들의 눈부심 앞에서 내가 어떠한 방법으로도 그에 비견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 앞의 적을 베는 것보다 인류의 완전한 평화를 더욱 지향하였던 그 숭고한 정신을 언제나처럼 가슴에 품고 지닌다면, 앞서 답하지 못했던 ‘정의’에 대한 물음 하나는 자신 있게 결론지을 수 있지 않을까, 나를 가로막는 숱한 의문 앞에 서슴치 않고 맞서는 단 한 가지의 소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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