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소개
| 제목 | 「백범일지(白凡逸志)」와 백 번의 성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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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이수연(인명여고) | 개최일 | 2016-08-26 | 조회 | 27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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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독서감상문쓰기대회 인명여자고등학교 백범상 최우수 「백범일지(白凡逸志)」와 백 번의 성찰 2학년 13반 이수연 백범일지(白凡逸志)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자서전이다. 평소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분이셨던 김구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현재의 내 모습에 대해 반성하려 노력했다. 이 책은 김구 선생님의 어렸을 적 이야기에 대해서 다루기도 하고, 의병 봉기에 참여하게 되는 이야기에 대해 다루기도 한다. 김구 선생님의 생애에 있었던 다양한 이야기들 중 김구 선생님의 옥중생활과 애국계몽운동과 신민회 활동, 그리고 임시정부 시절에 대해 집중하고자 했다. 나를 성찰하는 거울로서 백범의 생애전체가 내겐 너무나 크고 고결한 거울이지만 특히 이 시기들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오래 생각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백범일지를 읽기 전에는 김구 선생님이 임시 정부를 수립하신 인물이라고만 단순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은 후 내게 각인된 선생님의 모습은 대한민국! 그 자체였다! 조국의 독립을 열망하고 수많은 백성들의 자유를 염원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만약 대한민국이 사람으로 화한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김구 선생님의 투옥과 옥중생활 김구 선생님은 내무부령의 체포장을 받고 해주로 압송되고 이틀 만에 해주옥에 수감되었다. 투옥되고 한 달여 만에 신문이 시작되었고, 모진 고문과 폭행 끝에 김구 선생님은 결국 기절하고 만다. 그 후로도 고문과 폭행은 계속되었고 결국 인천으로 이감된다, 내가 살고 있는 인천이 백범 선생님께서 투옥되셨던 고난의 장소였다고 하니 왠지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이리저리 이감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김구 선생님의 어머님은 인천으로 동행하신다. 그 과정에서 오간 모자간의 대화는 읽는 이의 가슴을 저민다. 얘야. 네가 이제 가면 왜놈의 손에 죽을 터이니 차라리 맑고 맑은 물에 너와 나와 같이 죽어서 귀신이라도 모자가 같이 다니자. 하시며 내 손을 이끌어 뱃전으로 가까이 나가신다. 나는 황송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이렇게 여쭈었다. 어머니는 제가 이번에 가서 죽을 줄 아십니까, 결코 안 죽습니다. 제가 나라를 위하여 하늘에 사무친 정성으로 한 일이니 하늘이 도우실 것입니다. 분명히 안 죽습니다. 내가 부모였다면, 곧 찾아올 자식의 죽음에 두려워 어떻게 해서라도 자식을 살릴 궁리만 했을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했다. 나라를 위하여 온 몸을 바친 김구 선생님처럼 그의 어머님은 나라를 위해 자식이 비참한 삶을 살 바에야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여 저런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러나 자식의 고난 앞에서도 여느 어머니들과 다른 강인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나를 전율케 한 것은 백범 선생님의 대답이었다. 나라를 위하여 하늘에 사무친 정성으로 한 일이니 하늘이 도울 것이라는 그의 말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신념과 의기가 담겨있다. 생명이 위태로운 아찔한 상황에서도 신념과 의를 지키려는 모자의 모습은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을 성찰하게끔 한다. '나였다면'이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게 하며, 그 질문의 답은 무엇인지, 극한의 상황에서의 내 모습은 어떠할지에 대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애국계몽운동과 신민회 활동 을사조약으로 김구 선생님과 동지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지만 그들의 독립운동은 멈추지 않는다. 녹록지 않은 정세는 불가피하게 백범으로 하여금 독립을 향한 보다 긴 인내와 노력을 요구하고 이에 백범은 보다 근본적인 독립운동으로 교육에 매진하게 된다. 그는 사립 양산 학교의 교사가 되어 근무하게 된다. 후에 그는 송화 수교 장여터에 도착하여 군데 소학교를 소집하여 환등회를 열었다. 환등회를 열고 그는 떠나려고 했으나 성낙영이 순회강연을 부탁하여 송화읍에서 강연을 하게 된다. 그가 몇 년 만에 바라본 송화읍의 광경은 읍내 관사에 왜가 점령하고 있었다. 그는 분한 마음에 왜놈 장교와 경관 무리까지 몸을 숙이도록 명하고 '한인이 일본을 배척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연설하기 시작한다. 과거 러일, 중일 전쟁 때만 해도 일본에 대한 한인의 감정이 아주 두터웠다. 그 후에 강압적인 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점차 악감이 크게 늘어났다. 내가 연전에 문화 종산에서 직접 겪은 사실로서 일본 병사가 시골 부락에서 약탈을 감행하는 것을 목도하였다. 이렇게 일본이 나쁜 것이 곧 한인이 일본을 배척하는 원인이라고 큰소리로 꾸짖으며 줄지어 앉은 성낙영 구자록을 보니 얼굴이 흙빛이었고 왜놈들은 노기가 등등했다. 결국 많은 경관 무리와 왜놈 장교 앞에서 큰소리로 그들을 질타한 김구 선생님은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당시 조선의 백성이라면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그 누구도 발설하지 못한 말인데 왜놈들의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잘못됨에 대해 꾸짖는 대담함이 돋보였고, 또 존경스러웠다. 그저 모두의 앞에서 일본의 잘못됨을 꾸짖는 상황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의 말과 태도가 주변의 외압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 잡으려 하는 김구 선생님의 품성을 알게 해준다. 낯선 세력과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잘못됨에 당당히 논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상당한 지조와 절개를 가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또한 경찰서에 끌려간 김구 선생님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차례를 정해 돌아가며 방문하고 위문대를 조직하여 위문했다. 이런 학생들의 모습은 다름아닌 외압에게 굴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김구 선생님께 깊은 감동과 존경심을 느꼈기에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송화읍에서의 김구 선생님의 연설은 '나라면 외압에도 굴하지 않으며 두려움을 이겨내고 나의 소신을 지킬 수 있었을까?' 라는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과 동시에 김구 선생님의 인품과 품성까지도 깨닫게 해주었다. 끝내는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고 말았을 때 김구 선생님은 자신의 지극한 슬픔에 대해 적고, 나라는 흉흉하여 대신들 중에 자살하는 자가 많았고 교육계에서는 배일사상이 극도에 달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의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부분이었다. 이런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김구 선생님은 국권이 곧 회복될 것이며, 그렇다면 후세들의 애국심을 키워 장래에 광복하게 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불안한 미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조선의 백성이었지만, 동시에 그 고통을 딛고 후세의 미래를 위해 양산학교를 확장하고 학생을 증원 모집하는 조선의 구원자였다. 미래의 대의를 위해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을 무시하고 공적인 업무를 묵묵히 수행해나가는 김구 선생님의 모습에 이런 지도자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광복이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애국심이 높다고 생각한 나였지만, 김구 선생님처럼 모든 것이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렇게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 작지 않은 의문이 남았다. 김구 선생님의 정치 이념 많은 사람들이 백범일지의 내용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김구 선생님의 세 가지 소원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김구 선생님의 정치 이념이 담긴 글을 떠올리게 된다. 김구 선생님은 자신의 정치 이념이 자유라고 소개함과 동시에 앞으로의 우리나라는 자유의 나라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김구 선생님은 여러 가지 자유들 중 언론의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언론의 자유가 어떻게나 중요한 것임을 통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오직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만 진보가 있는 것이다. 김구 선생님의 언론의 자유의 중요성에 대한 글을 읽고 현재의 우리나라는 어떤 모습인가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다. 확실히 과거보다는 언론의 자유가 존재하게 되었지만 언론의 자유가 그 나라의 자유를 대표하는 것이라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나라라고 생각된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언론이 정부에게 간섭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언론을 대하는 시민들의 의식 수준 또한 미흡하기에 든 생각이다. 김구 선생님의 자유에 대한 지향은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을 직시하게 해주며 언론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고, 여태까지의 나의 모습도 성찰하게 해주었다. 김구 선생님은 언론의 자유뿐만 아니라 사랑의 덕과 법의 질서가 우주 자연의 법칙과 같이 준수되는 나라를 건설하기를 원하셨다. 이러한 김구 선생님의 소망은 결코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를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다음의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에 관한 김구 선생님의 의견을 적은 글에 적혀있다. 나는 미국의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반드시 최후적으로 완성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아니한다. 인생의 어느 부분이나 다 그렇듯이 정치형태에 있어서도 무한한 창조적 진화가 있을 것이다. 당시 민주주의가 익숙하지 않았던 우리나라는 미국의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평등을 실천할 수 있는 최고의 정치제도라고 여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달리 김구 선생님은 당시 미국의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완성된 것이 아니며 더 진화해나가야 한다고 여긴다. 이러한 김구 선생님의 뜻처럼 우리나라는 현재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합쳐 더 나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러나 난 김구 선생님의 의견처럼 무한한 창조적 진화가 더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김구 선생님이 미국의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완성된 것이 아니라고 여겼듯이, 나도 우리나라의 현재 정치제도가 완성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한한 창조적 진화를 바탕으로, 민주주의의 이념인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간 존엄성을 더욱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보장할 수 있는 정치제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김구 선생님의 미국 정치제도에 관한 의견을 통해 우리나라의 현 정치제도는 어떠한지, 어떤 방법이 우리나라를 정치적으로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 방법을 실현하기 위해 현재 대한민국의 일개 학생밖에 되지 않는 내가 어떤 노력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으며 또한 아직 어리고, 어른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렵고 복잡한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나의 정치적 무관심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하게 되었다. 시민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땅 위에 어리고 약하다는 것은 우리의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어리고 약하기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앞으로 생겨날 어리고 약한 이들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범일지 라는 책은 단순히 김구 선생님의 업적을 기리고 감탄하기 위해 제작한 책이 아니며, 앞으로의 우리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앞장서야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마 체험할 수 있게 제작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다양한 갈등이 발생하는 현대사회에서 어떤 태도를 우리가 취해야 하는지에 관해 떠오르는 단편적인 생각이 아닌 새로운 생각의 분기점이 되어주었다. 또한 사람으로서, 같은 대한민국의 시민(백성)으로서, 그리고 조국의 조상으로서 잊을 수 없는 그의 행적과 성품을 기록한 그의 자서전 백범일지는 내게 백 번의 성찰을 선사해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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