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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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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백범일지 독후감
작성자 김조연(풍문여고) 개최일 2014-08-29 조회 9015

백범일지 독후감

 

풍문여고 2학년 김조연

 

 

‘백범’은 천하고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백정같이 천하고 범부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애국심과 지식을 가져야 독립할 수 있다 생각하여 지은 호다. 백범 김구의 자서전이 바로 백범일지다. 이 자서전에는 김구의 인생이 모두 녹아있었다. 옛날에 쓰인 자서전인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책의 분량이 크고 내용이 자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과서로 배우는 독립운동 부분이랑 비교하여 보았을 때, ‘이렇게 많고 처참했던 우리 민족의 일제에 대한 저항을 너무 단순하고 짧게 요약시킨 것이 아닌가? ‘ 라는 의문이 든다. 나는 각각의 상황을 분석하고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하며 책을 읽었다.

 

나는 백범일지에 쓰인 김구와 다른 애국지사들의 운동들과 투쟁을 나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을 길게 요약하기 보다는 책의 내용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분석하는 것이 우리의 역사적 안목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간략하게 김구의 일생만 소개하겠다.

 

김구는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으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김구는 17세에 글을 즐겨 읽었지만 과거에 낙방하여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이후 독항혁명에 참가하고 21세에 치하포에서 일본인 중위를 죽였다. 25세 이후 좋은 나라의 근본은 바른 교육이라 생각하여 교육에 전념하였고 36세 때 독립운동으로 17년형을 받았으나 5년 후에 감옥을 나왔다. 44세 때 중국 상해의 임시정부 청사 문지기를 하였고 52세에 대학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이 되었다. 56세에 한인 애국단을 만들어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사를 이끌었다. 이후 김구는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임시정부를 지키셨다. 독립 후에는 미국과 소련으로 인해 갈라진 우리민족의 통일을 도모하다 74세 때 반대세력에게 총을 맞고 순국하셨다.

 

위의 간략한 줄거리만 보아도 김구의 일생과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김구는 자신의 소신인 민족주의를 가지고 비와 바람에도 굴하지 않는 바위처럼 독립운동을 펼쳤다. 지금까지는 독립 운동가들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았지만 이제는 긍정적인 면을 수용하면서 한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먼저 김구에게 물려받아야 할 정신은 바로 애국심이다. 백범일지를 읽다보면 일제의 모진 고문과 옥살이를 알 수 있다. 심지어 김구의 부모님은 아들을 걱정하여 옥살이를 가는 쪽으로 옮겨 다니시며 편안하게 살지 못하신다. 김구는 애국자이기 전에 아들이기에 부모님과 대의 사이의 기로에서 인간적 고뇌를 마주하였을 것이다. 비록 김구가 효자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대의를 향한 뜻으로 이시대의 위인으로 여겨지는 것을 보면 소학에서 공자가 이르는 효도의 끝-입신양명, 유방백세-의 기준에는 충족하는 것 같다. 이에 비해 현대 사람들은 나라에 대한 사랑이 예전만 못한 것 같다. 외국문물에 쉽게 동화되어 오히려 우리의 전통문화의 멋을 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뉴스에서 위안부가 무엇인지 야스쿠니 신사가 무엇인지 묻는 인터뷰에서 대다수의 학생들이 모른다고 대답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적 앙금으로 민족적 적의로 일본을 대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민족의 희생과 투쟁을 알아야 지난 일본의 잘못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받고 꾸정꾸정하게 길었던 외교 관계도 청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구에게도 비판은 존재한다. 첫 번째, 그의 독립운동이 소수의 독립운동이었다는 것이다. 김구가 문지기를 맡았던 임시정부는 이름만 정부일 뿐 정작 정부안에 소속되어 직접 일을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정부의 지도자들은 민족을 이끌 생각보다는 소수의 의병을 만들어 전투를 벌이고 일본의 고위 관료를 죽이는 등의 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나는 김구가 우리 민족의 자주적 독립을 추구하였다면 민족 전체가 함께 할 수 있는 독립운동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제의 탄압이 있던 상태에서 민족적 광복운동은 힘들었을 것이지만 3·1운동과 같은 사례가 존재한다. 분명 소수의 애국지사와 전 민족의 독립운동은 다를 것이다.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 해볼 수 있지만 모두의 독립운동은 우리나라에게 더 긍정적 결과를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또한 광복 후 김구의 민족 통일 운동에서도 한계가 있다. 김구는 좌익과 우익으로 나누어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자와 반대하는 자를 나누고 남과 북의 화합을 추구하였다. 김구가 추구했던 우리나라의 모습은 짐작하겠으나 그 때의 상황은 자력이 아닌 미국에 의해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이한 상태였고 아직 나라의 기틀조차 제대로 없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독립운동, 민족의 지도자였던 김구라면 현실성이 없었던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벌여 민족을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것보다 갓 시련과 고통에서 벗어난 민족을 추스르는데 힘을 쏟았을 것이다. 게다가 신탁통치 반대운동은 김구가 가장 중요시 여겼던 민족주의에도 어긋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는 김구의 일생의 앞부분만이 아닌 양면을 다 보아야 한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무엇인가? 부르크하르트는 ‘역사 속에 서 있는 인간은 역사를 통해 현명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 민족에게는 일제 강점기 라는 민족적 상처가 있다. 우리는 이 상처를 가지고 탓하고 반민족적 감정으로 대하기보다는 역사를 통해 더욱 현명해져 그 상처를 스스로 아물게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김구의 백범일지가 이러한 힘을 기르는데 분명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남쪽으로 튀어’에서 월드컵이나 올림픽시즌에만 나라이름을 외치는 애국자들에서 ‘무슨 애국심이 4년마다 돌아오나?’라고 질타하는 장면이 있다. 우리는 이 대사가 시사하는 바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스포츠 경기 때 나라이름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나라 스스로를 존중하는 태도와 마음을 가지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마음과 태도가 진정한 나라사랑을 실천할 뿌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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