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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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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백범일지를 읽고서
작성자 윤석(양정고) 개최일 2013-05-29 조회 4456

 “백범일지”를 읽고서

 


양정고등학교 1학년 1반  윤  석

 

  김구 선생님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같습니다. 모두가 느끼듯이 저는 김구 선생님으로부터 나라에 대한 뜨거운 애국심과 조국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을 공감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암흑기를 통틀어 가장 애국심이 뛰어나다고 다른 열사들이 계시기에 감히 말 할 수는 없지만, 소를 희생하여 대를 이룬다고 하지만, 자신을 희생하기란 역시 쉬운 일이 아닐 것 입니다. 이렇듯 김구 선생님이 비록 자신의 몸과 정신을 희생하는 인고의 길을 택하셨지만 그분에게도 가족이 있었습니다. 아내와 사랑스런 아들 인(仁)과 신(信)이 오로지 김구 선생님만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백성을 위해 안팎으로 뛰어다니시는 김구 선생님을 보고 가족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조국을 사랑하시는 김구 선생님인들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단지 김구 선생님은 나라를 위한 하나의 일념으로 행복을 대신 하셨습니다. 김구 선생님이 쓴 ‘나의 소원’을 보면, 김구 선생님께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느님이 물으신다면 선생님은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오.’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답하셨습니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면 김구선생님은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라고 답하실 것이며 세 번째 물음에도 선생님께서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동포 여러분!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는 없다.’ 라고 답하셨을 것입니다. 또한 이 백범일지의 동기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대한 독립에 대한 의지를 뚜렷이 보여줍니다. 김구 선생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으로서 언젠가는 죽음이 닥칠 것을 예상하여 이 일지를 남기셨고,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조국의 독립에 자신의 목숨을 바칠 가치를 뜻한 것이었습니다.

  김구 선생님의 청소년 시절은 우리와 달랐습니다. 가문이 패망하여 상놈의 대우를 받자 김구 선생님은 만민이 평등하다(人乃天)는 동학의 사상에 선생님의 마음이 사로잡혔고 18살때부터 동학의 접주가 되어 왜놈과 '척양척왜"를 외치며 싸웠습니다. 백범일지를 보면    ‘이렇게 잘못된 얘기가 잘못 전해지면서 도력(道力)이 높다는 소문이 황해도 일대뿐만 아니라 멀리 평안남․북도에까지 퍼져서 내 밑에 연비가 무려 수천에 달하였다. 당시 황해 ․ 평안도의 동학당 중에서 나이도 어린 내가 가장 많은 연비를 가졌다 하여 별명이 ‘애기접주’였다. 접주라는 것은 한 접의 수령이라는 말로써 위에서 내리는 직함이었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김구 선생님이 자신보다 동학에 먼저 입문한 사람들을 거느리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을 보고 김구 선생님의 예의바름을 느꼈고, 자신이 대접주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높이지 않는 점에서 김구 선생님의 겸손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선생님의 행동은 옳고 정당했으나, 시대적 상황에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백범일지를 살펴보면 이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한 주막에서 서툰 서울 말씨를 쓰는 칼을 가진 수상한 사람을 보게 되었는데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배후가 아닌지 의심되어 때려죽였다고. 때려죽이고 나서 그의 짐을 살펴보니 그가 일본군 중위 쓰치다 조스케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라고... 지금 우리가 생각해보면 단지 의심이 간다는 것만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 행동입니다. 참고로 쓰치다 조스케가 육군 중위라는 이야기는 그 당시 신문에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백범 김구 선생님은 자신이 죽인 일본인을 육군 중위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반인을 자신이 살해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자신 스스로를 정당화시킨 대의명분이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김구 선생은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이런 김구 선생님은 다행히도 고종의 특별 사면을 받아 그 위기를 벗어났지만 그 후에도 안중근 의사사건과 연관이 되어 감옥에 투옥되었고, 안명근 의사의 '사내총독 암살' 사건으로 또 다시 체포되어 17년형을 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민족의 독립을 위한 김구 선생님의 힘겨운 일본과의 싸움이 계속되었지만 김구 선생님은 굴하지 않고 계속 독립의 길을 닦아 나가셨습니다. 저는 여기서 다시 한 번 김구 선생님이 자신보다 조국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고 독립시키고 싶어 하셨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구 선생님이 활동을 하는 동안 선생님을 따르는 많은 독립투사들이 모여 자신의 목숨과 정신을 김구 선생님과 함께 나라에 바쳤습니다. 백범 일지에도 여러 가지 우리 열사들의 희생정신이 담긴 내용들이 나오지만 이봉창 의사가 일본의 왕을 저격한 일이 그 숭고의 시작이며 홍구공원에서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은 우리 민족의 쾌거였습니다. 김구 선생님이 이 책을 쓰시고 난 후 글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동지들 중에 대부분은 생존하여서 독립의 일에 헌신하고 있으나 이미 세상을 떠난 이도 많다. 최광옥, 안창호, 양기탁, 현익철, 이동녕, 차이석, 이들도 다 이제는 없다. 무릇 난 자는 다 죽는 것이니 할 일 없는 일이거니와 개인이 나고 죽는 중에도 민족의 생명은 늘 있고 젊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시체로 성벽을 삼아서 우리의 독립을 지키고 우리의 시체로 발등상을 삼아서 우리의 자손을 높이고 우리의 시체로 거름을 삼아서 우리의 문화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혀야 한다. 나는 나보다 앞서서 세상을 떠나간 동지들이 다 이 일을 하고 간 것을 만족하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 비록 늙었으나 이 몸뚱이를 헛되이 썩히지 아니할 것이다.’ 저는 이 글을 보고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정말 위인 중에 위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리고 1945년 김구 선생님과 많은 대한민국의 국민의 염원이 이루어지는 순간 그 감동은 잊힐 수 없는 커다란 민족적 저력의 파동이 되어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마다 가슴을 깊이깊이 울렸습니다.

  이렇게 큰일을 마친 김구 선생님도 결국 안두희의 총탄에 맞아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모두들 김구 선생님의 죽음에 안타까워하였고 그의 활동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김구 선생님이 나라를 위한 큰일을 더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가신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독후감으로나마 백범 일지를 읽고 난 후의 느낀 점을 말하는 것에 대해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어제가 5.18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날입니다. 크게 생각하여 본다면, 김구 선생님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암흑기 때의 열사들의 자신의 목숨보다 나라를 더 소중히 여겼던 마음이 우리가 5.18민주화 운동과 같은 역사적인 일들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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