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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정신의 강한전사 강한군대를 만들자 50사단 121연대 본부중대 상병 천민기
올바른 소원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슴속에 무언가가 되거나 무언가를 얻기를 원하고 또 꿈꾸며 살아간다. 우리는 그것을 머릿속으로 살며시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함박미소를 짓는다. 우리는 그곳에 한 발짝 다가가기만 해도 날아갈 듯이 기뻐하고, 때로는 그곳이 어딘지 몰라 쩔쩔 헤맬 때면, 밤잠을 설칠 만큼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것에 대한 갈망과 동경은 건조한 삶에 그 어떤 사막의 오아시스보다도 풍성한 ‘희망’과 ‘열정’을 품게 만들며, 아마존 정글과 같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 나갈 ‘용기’를 주기도 한다. 우리는 그만큼 간절히 바라고 또 원한다는 의미에서 ‘그것’을 ‘소원(所願)’이라고 부른다. ‘소원’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개인과 개인은 모여서 하나의 사회, 하나의 세계를 구성해 간다. 그리고 이렇게 개개인이 모여 만들어진 세계는 환경이라는 조건으로써 구성원들에 영향을 끼친다. 마찬가지로 ‘소원’도 개개인의 자그마한 소망들이 모이고 모여 한 사회를 반영하는 ‘사회적 소원’을 구성하고, 이 집단의 소원으로 둘러싸인 개인의 소원들은 그것에 영향을 받게 된다. 즉 우리의 소원은 개개인이 간절히 바란다는 일차원적인 의미에서 나아가, 개인과 사회의 소통관계를 볼 수 있는 하나의 ‘창(窓)’역할이라는 이차원적인 의미로 확장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물질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소원’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사회는 부자가 되기를 꿈꾸며 살아가는, ‘금(金)’ 만이 으뜸가는 가치를 지닌 ‘황금만능주의’ 세상이다. 어른과 아이를 가릴 것 없이 좋은 집과 좋은 차, 소위 말하는 ‘명품’을 갖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그것을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한다. 오디션 열풍이 보여주듯 어떤 이들은 단번에 ‘스타가 되기’를 꿈꾼다. 스타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없다. 개인과 개인의 싸움만 있으며, 우리는 경쟁에서 상대편을 탈락시켜야만 생존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는 위에서 살펴본 ‘소원의 이차원적이고 소통적인 의미’를 되새겨 볼 때, 결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 잘못된 개개인의 소원,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낸 사회의 그릇된 가치관은 나쁜 환경으로써 우리를 가두고 또 괴롭힐 것이다. 반대로 올바른 ‘소원’은 사회와 개인의 ‘행복 달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개인의 바람직한 소원이 모이고 모여, 긍정적인 ‘사회적 소원’이 집성되고, 또 이것이 긍정적 가치관으로써 구성원에 영향을 끼치는 ‘선순환적 소원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구성원과 집단의 소원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아주 소중한 소원이 담긴 곳이 있다. 바로 김구 선생이 남긴『백범일지(白凡日誌)』가 ‘그곳’이다.
백범의 소원 『백범일지(白凡日誌)』는 크게 상권, 하권, 계속편,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권’에서는 그의 태생부터 유년시절, 동학입도와 동학농민운동에서 접주로서의 삶, 치하포에서의 의거, 여러번의 옥생활, 그리고 애국계몽활동과 중국 망명시기를 담고 있다. ‘하권’에서는 상해 임시정부시절부터 이봉창ㆍ윤봉길의사의 의거, 그 이후의 임시정부 이동과 고난의 시절, 광복군 창설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계속편’에는 일제 항복과 조국으로의 귀국, 그리고 ‘나의 소원’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그가 궁극적으로 바랐던 민족국가의 모습, 정치이념, 그리고 바람직한 우리나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김구 선생이 단순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쓴 ‘자서전’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린 두 아들에게 쓰는 ‘편지’이자 ‘유서’이다. 유서라는 글의 목적에 알맞게 그는 절대로 과장하거나 흥분함이 없이 시종일관 담담하고 평온한 필체로 자신의 삶을 진정성있게 보여준다. 하지만 이 ‘담담하고 의연함’ 속에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기접주’로 명성을 떨친 그의 ‘비범함’, 명성황후의 복수를 위한 의기로 일본인을 과감하게 처단한 ‘치하포 의거’에서 보여준 ‘강인함’,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반으로 이봉창ㆍ윤봉길의사의 의거를 조직하고 성공적으로 실행한 ‘치밀함’, 부드러운 외모 속에 숨겨진 ‘대쪽같음 신념’, 늘 자신을 낮추어 화려하진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높게 느껴지는 ‘기상’이 녹아있었다. 백범(白凡)의 민족을 향한 ‘진심’은 100년이 지난 독자의 가슴 속까지 그 기백이 오롯이 전해질 정도로 뚜렷하고도 확고한 ‘의지’임에 틀림없다. 백범(白凡) 김구(金九)선생은 민족전체의 행복의 ‘전제’는 물질적 풍요도, 과학적 진보도, 사상적 통일이나 종교의 힘도 아니요, 반드시 풍족한 문화의 힘을 가진 ‘자유로운 민족국가’ 뿐이라고 했다. 이는 그가 살아온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다. 그가 태어난 구한말의 우리나라는 우리 주권을 뺏기 위한 여러 서양 열강들에 둘러 싸여 많은 고초를 겪었다. 후에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이후에는 우리 국민은 온갖 핍박과 설움 뿐만 아니라, 가장 일차적 권리인 자신의 재산과 신체까지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었다. 이 시대에서 우리민족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일제에 항복하여 목숨을 구걸하거나, 혹은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 김구가 간절히 원하던 ‘소원’은, 절실히 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굳건한 주권을 가진 민족국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김구의 ‘소원’은 단순히 우리 민족만 잘살기를 바라는 편협한 사고를 넘어선 ‘범세계적 인류애’를 담고 있으며, ‘탈이데올로기적’인 포용력도 가진 원대한 소원이었다. 김구선생은 이러한 자신의 ‘소원’을 널리 알리고 가르쳐 긍정적 ‘사회적 소원’을 만들어 내기위해 노력하였고, 그렇기에 그는 우리 국민의 가슴 속에 영원한 민족의 지도자 남아있다. 동학 접주로서의 그의 삶, 의병장으로서의 그의 삶, 애국계몽운동의 교육자로서의 그의 삶, 대한민국 임시정부로서의 그의 삶을 관통하는 것은 단순한 ‘개인적 영달’이나 ‘의협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백정(白丁)․범부(凡夫)라는 그의 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강열한 ‘소원’은 우리 국민 하나하나, 우리 대한민국에 ’자주 독립‘을 염원하는 씨앗을 심었으며, 그 결과 ’하나의 사회적 소원‘으로써 똘똘 뭉친 우리 한민족은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강한전사-강한군대
백범(白凡) 사후 63주년인 2012년 지금, 대한민국은 백범이 그토록 ‘염원’한 완전한 ‘자주 독립국가’라고 불릴 수 있을까? 아쉽게도 대한민국에서 백범(白凡)의 소원이 완전히 이루어졌다고는 보기 힘들 듯 하다. 그의 소원과는 반대로 한민족은 ‘6.25전쟁’이라는 민족상잔의 아픔을 겪었으며, 남(南)과 북(北)은 여전히 정전상태로 철책 건너에서 서로 총과 포를 겨누고 있다. 북은 연평도해전, 천안함 사태와 같은 무력도발을 지속적으로 자행하고 있으며, 비핵화 조약을 어긴채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바다 건너의 일본도 걸핏하면 ‘독도’를 자신의 영토로 주장하며,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억지논리도 이제는 무시하기만은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현실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듯 하다. 대한민국은 G20의 한 국가이자, 세계 10대 경제․무역대국이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할 만큼 풍부한 자본의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으며, 이러한 풍요는 우리 마음을 ‘일제시대’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구한말의 조선이 그랬던 것처럼, 그릇되고 안이한 국가관과 안보관은 하루아침에 나라의 주권을 잃게 만들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김구선생은 완전한 ‘자주독립’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강한 군대를 가지기를 ‘소원’했다. 물론 그는 물질보다는 문화를, 전쟁이나 폭력보다는 평화를 원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주권이 침해당할 때는 단호히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군대’가 필수적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실제로 ‘한국광복군’을 창설하고 양성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독립 직전에는 미군과 국내 진입작전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김구선생이 이처럼 군대 양성을 위해 큰 힘을 쏟았듯이, 이 글을 읽는 ‘우리 군인’도 ‘우리 국가의 오롯한 주권’을 지키기 위하여 ‘강한 전사’,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 경주해야 한다. ‘강한 전사’, ‘강한 군대’를 만들어내는 방법 역시 우리는 백범일지(白凡日誌)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낼 수 있다. 백범(白凡)의 인생을 관통하는 ‘백범적 애국심’, ‘혁신적-선구자적 사고’, ‘굳은 신념과 불굴의 실천력’이 그것이다. ‘백범적 애국심’이란 그의 호에서 가져온 말로, 백정, 범부 모두가 김구 선생만큼의 ‘애국심’을 가져야 하는 만큼, 우리 군인도 장병 하나하나가 커다란 ‘충성심’과 ‘애국심’을 마땅히 품어야 함을 뜻한다. 우리 장병은 계급을 초월하여 국가를 위하는 마음으로 하나로 뭉쳐, 자신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는 자세를 가지고 어떠한 경우라도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이런 ‘백범적 마인드’ 즉, ‘일당백의 정신’은 반드시 우리 군대를 강하게 만들고, 우리 대한민국이 당당한 주권을 영유하게 만들 것임에 틀림없다. ‘혁신적-선구가적 사고’란 ‘교육’의 힘을 바탕으로한 끊임없는 ‘혁신’에 있다. 백범은 유학, 동학, 개화사상을 배우는 등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단순한 ‘치하포 의거’부터, ‘애국계몽운동’과 ‘광복군 창설’에 이르기 까지 독립운동에서 지속적 혁신을 추구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 군도 교육의 힘을 더욱더 강조하고, 훈련을 통해 지속적인 발전을 지향해야 한다. 늘 완벽한 교육훈련에 임하는 자세, 훈련을 실전처럼 하고자하는 자세, 나태함에서 벗어나 새롭고 보다 나은 것을 추구하는 우리의 노력을 통해 ‘보다 강한 전투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 ‘굳은 의지와 불굴의 실천력’이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뜻한 바를 굽히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함을 의미한다. 백범은 독립운동에 임하여 목숨 연연해하면서 구차하게 생활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안악군 치하포에서 민비 시해사건으로 복수 의거를 행했을 때에도, 이 사건으로 신문을 받을 때에도 순사를 꾸짖을 만큼 강한 ‘의지’가 있었다. 더욱이 그는 임시정부의 문지기를 원한 것 처럼, 대의를 위해서는 마땅히 ‘백의종군’의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 ‘실천의 정신’이 있었다. 우리 ‘대한의 전사’도 이처럼 눈앞의 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력’을 마땅히 가지고, 눈 앞에 늘 적이 올 수 있다는 항재전장의식을 가지고 경계에 임해야 하며, 적이 온다면 단호히 맞설수 있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 ‘완전한 자주국권’에 있어서 우리 대한민국 국군이 ‘강한 군대’로 거듭나야 함은 분명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장병 개개인 모두가 ‘강한 전사’가 되어야 함도 마찬가지이다. 한반도의 국민들이 현재의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미래에는 보다 나은 것을 희망하고, 그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는 주춧돌 역할이 바로 우리 ‘국군의 사명’이다. 물론, 우리 대한민국 국군은 지속적인 혁신과 발전을 통해, 현재 우리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지키는 역할을 당당히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늘 ‘경각심’을 갖고, 우리가 당면한 과제에 ‘최선’을 다하여 늘 ‘최고’의 결과를 달성해야 한다. 우리 장병은 『백범일지(白凡日誌)』에서 보여준 김구선생의 정신을 이어 받아, 그의 올바른 ‘소원’을 계승하여 대한민국에 문화의 힘이 넘치는 나라, 아름다운 나라의 토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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