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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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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 - ‘백범일지’를 읽고
작성자 이예은(청원고) 개최일 2012-05-30 조회 3298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 - ‘백범일지’를 읽고

 

 

청원고등학교
1학년 국반 17번
이예은

 

 

  동생 수민이에게


  안녕 수민아, 오랜만에 편지를 쓰네. 너 그거 아니? 2009년, 그러니까 내가 중학교 1학년이고, 네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그 해가 바로 안중근 선생님이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지 100돌인 해이자, 3․1 운동 90돌인 해이며, 백범 김구 선생님의 서거 60돌이던 해였다는 거. 그리고 2010년은 우리 민족이 일본에 국권을 유린당한지 100년이자, 안중근 선생님이 일본에 사형되신 지 100년이 되는 해였어. 올해는 윤봉길 의사가 의거하신지 80주년이 되는 해이고.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짐작이 가? 내가 시험이 끝나고 ‘백범일지’를 읽었거든. 오늘 너에게 책도 소개하고, 김구 선생님에 대해서도 알려주려고. 물론 네가 그 분이 독립운동가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만, 자세히는 모를 것 같은데, 안 그래? 나도 그랬거든,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김구 선생님의 조국 광복을 위한 굳은 신념과 올곧은 행적들에 존경스러움과 함께 감명을 받았어. 너에게도 그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마음과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하지만 무엇보다 네가 이 언니의 편지로 인해 우리나라의 광복과 독립을 위해 노력하셨던 분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백범일지’가 뭔지는 알고 있겠지? ‘백범일지’는 김구 선생님의 진솔하고 감동적인 기록이 담겨진 자서전이야. 상·하권으로 된 이 자서전의 상권은 두 어린 아들에게 남기는 유서의 형식으로 집안의 내력,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기록한 것이고, 하권은 1932년 이봉창·윤봉길 의사 의거 뒤 중국에서의 피신생활과 독립운동에서부터 광복을 맞기까지의 과정을 담았지. 야! 갑자기 지루해지냐? 선생님이 살던 시대의 우리 민족을 보면서 서글프기도 하고, 그 당시 현실에 대해 답답한 부분도 있지만,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얼마나 흥미진진한대!
  김구 선생님도 사실은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나셨다고 해. 하지만 강한 자존심과 저항 정신의 소유자셨지. 사실 가난하고 형편이 어려우면 무엇을 하든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잖아. 사실은 그것도 하나의 핑계일 뿐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거야. 선생님도 자신의 정신력과 굳은 신념으로 그렇게 민족과 국가를 위해 한평생 노력하셨으니까.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며 헌신할 것을 다짐한 선생님은 동학 농민 운동부터 의병 활동, 애국 계몽 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하지. 그게 다인 줄 아냐? 교육 구국 활동, 신민회 활동, 임시 정부 활동, 한인 애국단 활동 등 다 말하기도 힘들다고. 네가 알고 있는 근현대의 대부분의 독립 운동에 참여하셨던 거야! 이런 생각 너도 자주 해 볼 텐데, 너라면, 네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다면 너는 우리나라를 위해 이토록 갖가지 애를 쓰면서 운동할까? 다른 나라까지 가서 힘들게 생활하면서 목숨 걸고 행동할까? 네가 ‘언니는 어쩔 건데?’하고 되받아칠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나라면 독립운동을 할 거야. 우리나라 사람인데 당연히 해야지. 하지만 솔직히 점점 탄압이 심해지고 감옥도 몇 번 왔다 갔다 하고 나면 포기할 지도 몰라. 그래놓고 ‘친일파가 안 된 게 어디야’ 하면서 자기 합리화하고, 스스로를 옹호할 지도 모르지. 난 내가 모진 고문과 압박에 끝없이 인내하고 고통을 감수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거든. 뭐? 너라면 이봉창 의사나 윤봉길 의사처럼 차라리 자폭 테러 하겠다고? 나도 그 생각은 해 봤는데, 막상 하려고 하면 말처럼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윤봉길 의사도 그 도시락 폭탄을 던질 때 얼마나 떨렸겠니? 온갖 만감이 교차했을 거야. 다리도 후들거리고 도망치고 싶었을 지도 모르지. 안 그래? 그러니까 그 분들이 대단하다는 거야. 파릇파릇 젊은 나이에 나라를 위해 제 한 몸 희생해서 나라를 구해보겠다는 그 마음, 뜨거운 민족혼을 우리는 기억해야 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어. 실제로 과연 이걸 아는 사람이 많을 지 의문이야. 뭔지 궁금하지? 우리나라가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광복을 맞게 되었을 때에 사실 김구 선생님은 왜적의 항복이 희소식이라기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느낌이셨대. 그토록 바라던 독립인데, 이상하지 않니? 사실 김구 선생님은 몇 년을 애써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해서 광복군 군대를 조직하고 한국독립당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셨대. 대일선전포고를 해서 대일항전에 진력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만들고, 중국의 지원을 받으며 미국과 긴밀한 합작도 이루어졌었는데,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 거야. 우리의 힘으로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할 수 있었다고! 이해할 수 있겠어?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르는구나. 사실 그 때 일본도 어느 정도 약해져 있었고, 우리는 공격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는데, 그동안의 모든 훈련과 계획 피나는 노력이 산산조각난 거야. 만약 우리의 힘으로 나라를 찾았더라면 흔히들 이야기하듯 우리 남북한이 지금처럼 찢어져 있지도 않겠지. 그럼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죽이는 비극의 역사, 6․25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고. 어쨌든 김구 선생님은 자력을 나라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과 이런 평탄하지 않을 앞날을 예상하시고 비통해하셨어.
  아, 그러고 보니 너 혹시 ‘백범’이라는 김구 선생님의 호가 뭘 뜻하는 지 궁금하게 생각해본 적 있니? 사실 나도 몰랐는데, ‘백범’이라 하는 것은 가장 미천하고 무식한 백정(白丁)의 백(白)과 범부(凡夫)의 범(凡)자를 따서 호를 삼은 것이야. 즉, 천하고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까지 전부가 적어도 선생님만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자는 뜻으로, 김구 선생님께서는 우리 동포의 애국심과 지식의 정도를 높이지 아니하고는 완전 독립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셨던 것이지.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 우리는 미래의 꿈나무들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너도 공부 열심히 하렴.
  난 ‘백범 일지’에서 무엇보다도 ‘나의 소원’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어. 워낙 유명해서 너도 한 번 쯤 들어봤을 부분이야.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시면 첫째도 독립, 둘째도 독립, 셋째도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라고 대답할 것이라는 부분 말이야. 독립에 대한 염원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렇게 까지나 말하셨을까. 우리 같으면 돈을 달라든가 집을 달라든가 하는 일차원적인 생각밖에 못 했을 텐데. 비교된다, 그렇지? 김구 선생님의 독립운동이 얼마나 활발했으면 윤봉길 의거 후 김구 선생님의 현상금이 60만 원이나 붙었다고 하는데, 너는 지금 ‘에게, 겨우?’ 할 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는 198억 원에 이르는 거액이라고 해. ‘억’소리 나지? 얼마나 김구 선생님 체포에 혈안이 되었으면 그랬겠어? 역시 우리 민족의 영원한 지도자 아니시겠냐.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평생 뜻있게 투쟁의 삶을 사셨던 모든 분들을 우리는 감사의 마음으로 기려야 해.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백범 김구 선생님은 결국 1949년에 안두희라는 사람의 총에 맞고 서거하셨어. 암살사건은 안두희에 의한 우발적 단독 범행이 아니라 면밀하게 준비되고 조직적으로 역할 분담된 정권적 차원의 범죄라고 평가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확실한 건 아니지만 사건이 일어난 당시에 이승만 정부가 정권 유지를 위해 뒤에서 사주했다고 유추하고 있거든. 그의 범행을 은닉시키고 방임시켰기 때문이지. 하지만 아무리 일개 하수인이라고 해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우리 민족을 위해 그토록 노력하셨던 김구 선생님을 어떻게 죽일 수 있었다는 거냔 말이야.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고통 받고 있던 시절에 자기가 직접 독립 운동을 하지는 못할망정 한평생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쓰셨던 선생님을 암살하다니.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있잖아, 실제로 백범 일지를 읽다가 그 사람에게 분노에 휩싸인 나머지 밖으로 뛰쳐나간 사람이 그렇게나 많았대. 그래서 실제로 안두희가 여러 차례 폭행과 테러를 당했다는데, 결국에는 1996년에 김구 선생님을 존경한다는 시민 박기서에 의해 죽게 돼. 대단하지 않니? 그는 나무 막대기에 ‘정의봉’이라고 쓴 후, 휘둘러 인간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의 심정으로 안두희를 처단했다고 해. 얼마나 분노에 휩싸였으면 그랬겠냐.
  이 언니가 백범 일지를 읽고 나서의 소감을 들으니까 어때? 너도 책을 읽고 싶어지니? 백범 김구 선생님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어? 우리 이번 여름 방학 때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높은 문화를 가진 통일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일생을 바치신 겨레의 큰스승, 백범 김구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되새겨 보기 위해 백범 김구 기념관에 가보는 건 어떨까? 멋있어 보이지? 서울 용산구 효창동 효창공원에 있는 근현대사 역사박물관에서 김구 선생님의 발자취를 밟으면서 우리들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볼 수 있을 거야. 책만 읽고는 몰랐던 김구 선생님의 뜨겁고 거룩한 조국애를 더욱 강렬하게 느낄 수 있겠지. 그 전에 일단 너도 책을 한 번 읽어봐. 기본 밑바탕이 있어야지 전시물을 봐도 이게 무엇이고 그 의의가 무엇인지 알 거 아니야. 안 그래?
  이번 기회로 네가 독립 운동가들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국권수호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닫고 본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어. 물론 너에게 편지를 쓰면서 나도 책을 읽고, 인터넷에 찾아보면서 더 자세히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지. 김구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독립 운동가 분들 덕분에 우리가 오늘날의 멋있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거니까, 너도 이런 독립과 평화에 대한 정신을 계승해서 앞으로는 한민족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민족공동체 정신을 가슴에 새긴 채 살길 바란다. 우리 앞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지금 현재 뿐만 아니라 나중에 먼 미래에도 남부끄럽지 않게 평가 받을 수 있도록 평소에 처신을 잘하고, 우리나라의 새싹으로써 겨레의 얼을 지키고, 한국의 빛을 환하게 비추도록 하자. 또, 마음속에 항상 당당한 빛을 가지고 살자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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