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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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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한민족의 영웅, 작은 거인 김구
작성자 최대규(춘천고) 개최일 2011-09-17 조회 1721

한민족의 영웅, 작은 거인 김구

 

1학년 3반 최 대 규

 

나는 오래전부터 백범 김구선생님의 행적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백범일지를 읽었던 것이 꽤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던 얼마 전 백범일지를 다시 읽었다. 막연히 평생을 우리 민족의 독립과 통일한국의 수립에 몰두하신 위대한 민족지도자 정도로 알고 있던 나에게 백범일지를 자세히 읽어봄으로써 청년이었던 백범의 삶과 한 가정의 가장이자 노모를 아끼는 인간적인 백범의 면모도 접해서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백범은 조선이 근대화의 거친 파도를 마주친 격변의 해인 1876년에 몰락한 양반의 아들로 태어나 거의 양민 취급을 받으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러한 그의 낮은 신분은 훗날 그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민족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는 12세가 되던 해부터 양반이 되고자 글공부를 시작했으나 아버지의 병으로 친척들 집을 전전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글공부에 전념했으나 17세에 낙방한 뒤 동학에 입교한다. 이 후 그의 파란만장한 젊은 시절이 막을 올린다. 그는 어린 나이에 황해도 지역 접주가 되지만 전투에서 패배하고 의병에 참가하였으나 다시 패배하고 첫 약혼마저 파혼하게 된다. 그리고 주막에서 일본인을 살해한 ‘치하포 사건’으로 투옥된다. 그리고 2년 뒤 그는 탈옥했고 잠시 승려가 되어 생활했으며 그 뒤 두 번의 약혼마저 파혼되고 만다. 그 뒤 그는 교육활동에 전념하며 후진 양성에 힘쓴다.

1911년 백범은 36세의 나이에 안악 사건으로 투옥된다. 이는 백범의 일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감옥에서 많은 것을 깨우쳤으며 4년 뒤 가석방된다. 몇 년 뒤 191년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백범은 주저 없이 상해로 건너가면서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백범 선생께서 26년에 걸쳐 이룩한 독립운동의 업적은 정말 눈물겹도록 고난과 위험의 연속이었다. 백범이 임시정부를 위해 노력해온 행적은 끝이 없다. 그는 1920년대 초 임시정부가 사실상 유명무실의 존립의 위기였을 때도 임시정부의 부흥을 위해 노력하셨으며 1930년대 초에는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여 윤봉길 의사와 이봉창 의사의 위대한 의거를 주도하며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이끌어내면서 중국 내 독립운동의 구심점으로 우뚝 스셨다. 일제가 침략의 마수를 중국 대륙으로 뻗치며 독립운동 최대의 위기에도 그는 굴하지 않고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임시정부의 명맥을 유지하셨다. 그리고 한국광복군을 조직하여 연합군과 협력하여 일제를 한반도에서 축출하고 임시정부가 당당한 승전국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셨다. 비록 일제의 갑작스런 항복으로 이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으나 백범이 그토록 염원하고 일생을 바쳐 노력하셨던 독립은 마침내 이루어졌다.

우리 민족은 마침내 해방의 달콤함을 맛보았지만 한반도의 미래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분단시키려 하였으며 좌익과 우익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백범은 노쇠한 몸을 이끌고 전국을 순회하며 통일 정부 수립의 필요성을 민중들에게 역설하였으며 북으로 가서 좌익 지도자들과 만나 끝까지 통일 정부 수립에 대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백범의 소망을 이루어지지 않았고 1948년 한반도는 두 나라로 분단된다. 결국 백범은 경교장에서 1949년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탄에 세상을 떠나시고 만다.

백범의 일생을 되돌아보자면 그 분은 가족사부터 순탄치 않다. 세 번의 파혼을 겪은 뒤 어렵사리 혼인하였으며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으나 두 딸과 아들 한 명을 잃는 아픔을 맛보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백범은 일제의 억압의 사슬아래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민족의 안위와 오직 완전한 조국 광복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셨다. 젊은이들에게는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선구자셨고 임시정부의 든든한 기둥이였으며 한민족의 어버이셨다. 젊은 시절부터 남다른 기백과 호탕한 성격으로 무너져가는 조선을 위해 때로는 행동으로, 대로는 교육으로 민족을 위해 갖은 노력을 하였으며 옥중에서도 오직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뇌하신 참된 민족지사다.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독립 운동가들이 하나 둘 변절의 길로 돌아서던 때 독립운동 세력을 규합해 적극적인활동으로 국제 사회의 지지를 끌어내며 광복의 발판을 마련하신 백범 선생님이 정말 존경스럽다.

미국의 국부 '조지 워싱턴‘, 통일 이탈리아의 주역 ’주세페 가리발디‘장군, 필리핀의 위대한 민족지사 ’호세 리살‘ 등 세계 여러 나라에는 독립과 조국 건설을 위해 힘쓴 여러 영웅들이 있다. 백범께서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어쩌면 그들보다 더 훌륭한 우리 민족의 지도자이셨으며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해 온갖 고초를 이겨내며 광복의 등불을 밝히신 애국지사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백범 김구 선생님의 삶에서 얻은 교훈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겨둘 것이다. 현대의 젊은 세대도 그 분의 삶에서 교훈을 얻기를 바라며 나 또한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인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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