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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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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3. 21. 혁명운동 재출발의 신결심 (신민일보 사장과 회담기)
문 : 선생께서는 과반(過般) 성명 중에서 모당(某黨)을 가리켜서 일진회(一進會)와 같은 매국매족적 반역자 집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해하기 곤란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당이 참으로 매국노 집단이라면 저들에게 국사를 맡기는 것 같은 일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거늘 중경 임시정부는 왜 저들과 합작하였으며, 선생이 환국하신 지 2개 성상여의 세월이 지나도록 일찍이 그러한 의사표시를 하신 일이 없었는데, 오늘에 와서야 그런 말씀을 하시니 석연하지 못한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답 : 나는 모 당만을 지적하여 일진회와 같은 매국노 집단이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정당을 막론하고 그 실제행동에 있어서 민족을 팔고 국가를 망하게 하는 집단이 있다면 그것은 곧 일진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말의 진의는 현명한 민중이 스스로 판단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반역자들과 합작한 것이 잘못이라고 하는 것이지마는 그것은 너무나 피상적 관찰인 것입니다. 중경 임시정부가 환국할 당시로 말하면 오직 감격과 흥분 속에 있었으니까 무엇을 따지고 캐고 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고, 또 무엇보다도 국내사정을 잘 모르는 우리로서는 누가 반역자이고 누가 애국자인지를 분별하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나의 신조로 인하여 그렇게 된 점도 있습니다. 친일파라고 해서 가혹한 규정을 내리어 배제와 처단만을 주장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민족적 단결과 정치적 통일의 강력한 추진이 요청되는 시기에 있어서는 더구나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극단의 악질자가 아니면 그들을 포섭하야 건국사업에 조력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 당시의 실정이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규정하고 처단할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재판소가 없고 법률도 제정되지 않은 것을 입으로만 친일파, 반역자 운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뜻이 있는 이들은 내가 모 당에 대하여 한독당에 무조건 합당하라고 누차 권고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혁명세력이란 탁류라도 정화시킬 수 있는 것이고 또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불순한 세력이라고 해서 강제로 꺾을 것을 기도하는 것은 위험한 처사일 것입니다. 불행히도 외력이 저들의 세력을 조장시키고 세태가 근본적으로 삐뚤어져서 우리의 당초의 기도가 뭐처럼 성공되지 못한 채, 도리어 저들로 인하여 국가의 대화를 초래하게 되었으니 결과에 있어서 '범'의 새끼를 기른 것이 되었지마는,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하여 속수무책이라 함도 아니오, 다만 개탄(慨歎)만을 일삼는 것도 아닙니다. 저들의 과거의 죄상이 명백하고 금일의 과오가 삼천만 앞에 뚜렷하게 나타나 있는 것이니 여기에 있어 우리가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는 불문가지인 것입니다.

문 : 선생께서는 현재 단독정부를 배격하고 통일정부 수립을 위하여 싸우고 계신데 이 점에도 약간의 의문이 있습니다.

첫째는 단정을 반대하시는 경위입니다. 작년 1월 이 박사가 도미하여 단정운동을 전개할 때는 선생께서는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시었습니다. 그러다가 조소앙 씨가 남북협상운동을 '일시 중지한다'고 선언한 직후에는 선생께서는 이 박사와 공동보조를 취하여 단정에 참가할 의사가 있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이시었습니다. 이와 같이 선생의 노선에는 약간 확연하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일부에서는 선생이 단정을 반대하시는 것은 정의에서가 아니고, 아직 토대가 약해서 정권을 잡을 수 없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기회에 대중의 인기를 끌어서 지반을 강화하려는 심산에서 통일정부 수립을 부르짖는다는 것이지요.

답 : 이 박사가 도미하여 단정운동을 전개하던 때만 하더라도 나는 공표만 안 했을 뿐이고, 동지들에 대하여는 그 부당성을 지적하여 사태의 악화를 방지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역설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박사가 귀국하면 친히 만나서 그것을 만류하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성명서를 발표하고 보다 더 적극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할 수도 있었지마는 그렇게 하는 것은 나에게는 너무나 괴로운 일인 것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수백 정당이 난립하여 국정이 극도로 혼란한 가운데다가 나와 이 박사의 충돌이 표면화한다면 대내 대외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 명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 박사의 애국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박사도 평생을 조국해방을 위하여 바친 분이니 일시적 착각으로 인하여 그릇된 길로 들어갔다 할지라도 친히 만나서 사리를 따지고 대의를 밝히어서 간절한 뜻으로 말한다면 잘 깨달으리라고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이 박사가 돌아오는 즉시로 만나서 나의 뜻을 말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박사가 비행기에 내려서라도 기자단에게 무슨 말을 하면 안되겠기에 내가 비행장에까지 나갔었습니다. 그러나 이 박사는 나의 권고를 듣지 않고 마침내 단정노선으로 돌진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어디까지나 대의에 입각하고 협조정신으로 시종일관한 나에게 허물이 있다고 한다면, 세상에 대의를 존중할 사람이 누구이며 겸양의 미덕을 찬양할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또 내가 남북협상운동이 정체상태에 빠졌을 때에 이 박사와 보조를 같이 할 것같이 보이었다는 것만 하더라도 실은 그것이야말로 통일을 위한 나의 최후의 노력이었던 것입니다. 반탁운동과 자주정부 수립은 불가분리의 관계이거늘 반탁 구국정신이 자주 통일 독립정신에 배치된다는 말이 있을 수 있는 말인가? 나는 이것을 믿을 수가 없고 설사 그것이 냉엄한 현실이라 할지라도 간단히 집어치우고 말수는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슬프고 딱한 것은 이 박사가 다시 나오지 못할 '함정'으로만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박사를 포위하고 있는 세력이 어떤 종류의 것이며, 그 종국이 어떠한 것일까에 대하여는 이 박사를 아끼고 국가의 전정(前程)을 염원하는 이로서는 이것을 모르는 이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겠습니까? 나는 하다가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UN 위원단이 내조(來朝)하기 전에 이 박사를 붙들고 그의 번의(飜意)를 위하여 마지막 정성을 다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국의(國議)'와 '민대(民代)'의 합동공작을 계기로 하여 이것을 이루어 보려고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이 내가 이 박사와 보조를 같이 하는 듯이 보이게 된 동기입니다.

내가 정의에서가 아니고 당세의 확장이나 노리고 지위를 얻기 위한 정략에서 단정을 반대하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진실로 내가 그러한 비열한 사람이라면 어찌 하필 오늘날의 지진두(地盡頭)에 와서야 반대를 표명할 것인가? 정략의 생명은 기회라고 하거늘 그래, 그런 술책을 알고 방법을 몰라서 UN 위원단이 업무를 개시하고 단선공작이 활발한 시기를 기다려서 반대운동을 전개하는 우책을 쓰고 있겠습니까? 물론 이러한 논의에 대하여 변명을 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다만 나는 여기서 다시 한 번 단독정부론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참으로 민족을 구하고 국가의 안태(安泰)를 확보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천명하고자 합니다.

반쪽정부에 대하여는 누차 언급한 바와 같이 첫째는 UN의 이름을 빌어서 1국 신탁을 실시하려는 궤계(詭計)를 철견(徹見)하여야 하며, 둘째는 미·소 양국이 획정한 38선을 국제적으로 합법화하는 것이요, 셋째는 우리의 국토를 양단하므로써 민족을 분열시키어 동족끼리 상잔하는 비극을 초래하는 것밖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삼척동자라도 이것을 독립이라고 기뻐할 자는 없을 것입니다.

보시오!

UN 위원단도 저들이 한국인도 그렇게 우둔하지는 않는 점에 특별 유의하였음인지 혹은 수단과 기술이 고명함인지 우리를 교묘하게 유도하여 그 기만을 호도 하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UN 위원단 중에서 가·호(加·濠) 대표가 단정추진을 강경히 반대하고 불(佛)·시리아 대표가 기권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저들은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단연 반대를 표명한 것입니다. 단정을 찬성한 이는 중국을 비롯하여 인(印)·비(比)·엘사바돌의 4개국 대표입니다. 그러니까 당초에 9개국 대표로써 구성되었던 것으로 하면, 4대 2란 문제도 안되는 숫자인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사도(邪道)로써 정의를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은 결코 어느 누구의 잠꼬대는 아닌 것입니다. 백방으로 따지고 궁리하여도 우리 민족의 생존권과 우리의 주권을 획득하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민족자결 정신에서 미·소 양군의 즉시 철퇴를 요구하고 남북협상에 의하여 우리의 통일정부를 우리의 손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문 : 미·소 양군을 철퇴시키고 자주 통일정부를 세우는 구체적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단정론자들도 원칙적으로는 그것이 옳고 또 그래야 하는 줄을 안다는 것입니다. 다만 저들의 논법에 의하면 그것은 비현실적인 공염불이라는 것입니다. 첫째, 미·소 양군이 철퇴하는 날이면 조선은 진공상태에 놓일 것이고 내란이 발생하여 동족끼리 상잔하는 비극을 연출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소위 북조선 인민군이 문제라고 보는 편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북협상 문제만 하더라도 막연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좌우합작을 부르짖고 그것을 실지로 기도한 일도 있지만은 하등의 성과도 거두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좌우합작에 실패하였으면서 남북협상에 기대를 두는 소이(所以)는 어디에 근거를 두는 것인가? 남북통일과 양군철퇴와 자주정부 수립을 부르짖는 이들의 명확히 하지 안으면 안될 점은 이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답 : 세상에 가장 현실적인 방법과 수단이 어찌 한두 가지에 그칠 것인가. 땀을 흘리고 먼지를 무릅쓰고 노동을 하는 것보다 은행 창고를 뚫고 금품을 도취(盜取)하여서 안일한 생활을 하는 것도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고, 청빈한 선비의 정실이 되어 곤궁과 싸우기보다 차라리 모리배나 수전노의 애첩이 되어서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는 것도 가장 현실적인 길일지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정도냐 사도(邪道)냐가 생명이라는 것을 명기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구절양장(九折羊腸)일지라도 그것이 정도라면 그 길을 택하여야 하는 것이요, 진실로 이것만이 인도인 것이니 여기에 있어서는 현실적이니 비현실적이니 하는 것은 전연 문제 외의 문제인 것입니다.

외국의 간섭 없고 분열 없는 자주독립을 전취하는 것은 민족의 지상명령이니 이 지상명령에 순종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망명생활을 30여 년이나 한 것도 가장 비현실적인 길인 줄 알면서도 민족의 지상명령이므로 그 길을 택한 것입니다. 과거의 일진회도 '현실적인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오늘날 외세에 아부하여 반쪽 정부의 요인이라도 되어보려고 하는 이들은 통일정부 주장은 공염불이라고 비방하지마는, 그러나 기독신자들은 천당에를 가본 일이 없고 예수를 본 일도 없지마는 예수를 믿고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면 천당에 갈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천년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가 독립국이고 자주민임을 확신하는 것이니 우리의 주장은 공염불이 아니라 삼천만의 일관한 신조요 일관한 구호인 것입니다. 좌우합작에 실패하였거든 어찌 남북협상을 기대할 것이냐고 하지마는 과거의 좌우합작은 진정한 의미의 좌우합작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외력의 영향을 받은 어떠한 운동도 성과를 거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 안에는 소위 우익은 없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에 우익이란 흔히 보수반동을 말하는 것인데, 혁명세력으로서는 보수반동일 수가 없고, 한국의 실정을 아는 양심적인 인사로서 보수반동일 리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칭 '우익'이라고 하는 말부터 재검토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보통 말하는 이 땅의 소위 우익 중에는 왕왕히 친일파 반역자의 집단까지 포함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것들은 우익을 더럽히는 '군더더기' 집단입니다. '군더더기'들이 정당이니 단체니 하고 혁명세력에 붙어서 거불거린 것입니다. 혁명세력과 반역집단이 합작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내가 반성하는 것은 이점입니다. 혁명세력끼리의 합작이나 협상이라면 성립되지 않을 하등의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미·소 양군 철퇴를 주장하는 것은 삼천만 동포의 혈원(血願)입니다. 우리 나라 강토 안에 때아닌 외군 주둔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주둔이 일각이라도 연장되면 연장될수록 백해가 양성되어 우리의 국운을 쇠멸(衰滅)시키는 것입니다. 적국 아닌 우리 나라에 계속 주둔한다는 것은 국제헌장에 어그러지고 정의 인도에 배치되는 일입니다. 양군이 철퇴하면 진공상태에 빠지고, 북조선 인민군이 쳐들어오고 내란이 일어난다는 것은 모두가 구실이고 모두가 비과학적 관찰인 것입니다.

남은 북을 의심하고 북은 남을 의심한다면 몇 백년을 끌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남을 의심한다면 소련이 의심할 것이요, 북을 의심한다면 미국이 의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국의 의심을 자기가 맡아서 의심에 의심을 가하는 자는 비민족적 외국의 주구적 인간임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외군이 철퇴한다고 해서 내란이 일어난다는 것은 사대소심증에서 나오는 망상인 것입니다. 8·15해방 직후야말로 가장 불순한 요소와 흥분한 군중과의 사이에 충돌이 생길 우려가 농후했었지만은 국부적인 마찰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무장한 군대가 위험하다면 철퇴할 때 그 무장만 완전히 해제시키고 철퇴하면 되는 것이요, 양국이 합의하지 아니하면 철퇴하지 아니할 것이요, 철퇴한다면 어느 일방이 그것을 이행하지 않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아직도 때는 늦지 않았습니다. 현하 시국이 아무리 복잡하고 혼란하다 하더라도 냉안(冷眼)으로서 전도를 투시하고, 강장(剛腸)으로써 '우리의 길'을 견지하기만 하면 거기에 활로는 자재(自在)인 것입니다. 미·소 어느 편으로든지 편향하는 날이면 외국의 간섭은 더욱 조장하고 외군 철퇴를 더욱 지연시키는 것밖에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미·소 양국의 협조 없이 한국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 금번의 UN 업적이 웅변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족자결 원칙을 경으로 하고 공명정대의 친미·친소 외교를 위로하여, 평화적 국제협조 노선 위에서 우리 문제의 해결을 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혁명시대로 돌아가서 짚신감발하고 새 독립운동을 하려는 것입니다. 갈 길은 험산준령이나 영원한 진리의 위대한 힘이 따를 것이니 끝까지 이 길로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