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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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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 3. 10. 안 도산 선생 애도문(安島山先生 哀悼文)
대한민국 30년 3월 10일에 김구는 삼가 고(故)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동지 선생 영전에 수언(數言)을 올리나이다.

선생이여!

거금 15년 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상해에서 적괴(敵魁) 백천(白川) 등을 박살함으로써, 찬란한 세계역사의 한 페이지를 창조하던 그날에 우리는 선생을 적에게 빼앗겼던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에 자랑할만한 승리의 소유자가 된 그 쾌미와 그 영광을 끝없이 느끼면서도 선생을 잃은 불행을 회복하려고 우리의 최선을 다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지척에 있는 왜 영사관에서 선생을 구출하려고 우리의 뇌즙(腦汁)을 짜 볼대로 짜보았던 것입니다. 이 운동에 있어서는 지금 우리 나라 서울에 와있는 미국 친우(親友) 피취 선생 부부의 노력이 자못 컸던 것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실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운동은 필경 수포(水泡)로 돌아가고 선생은 적의 부로(浮虜)가 되어 한 많은 고국에 돌아와 영어(囹圄)의 생활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왜적을 타도하고 자유로운 조국강토 위에서 선생을 맞이하고자 주소(晝宵)로 상제(上帝)께 선생의 건강을 위하여 기도하였더니, 천(天)이 불우함이었는지 우리의 악운이 미진함이었는지 선생은 드디어 적의 독해를 입어 옥중에서 서세(逝世)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입국하기는 선생이 서세(逝世)하신 후 7주년이었습니다.

우리는 입국한 그때부터 동포들과 손을 맞잡고 선생의 미진한 유업을 완성하고자 분투 노력하였나이다. 그러나 이룬 것이 하나도 없이 이제 동지들과 함께 선생의 서세 10주년을 맞게 되니 한갓 무량한 감회만 금할 수 없나이다.

선생이여!

우리 조국이 해방된 것을 십분(十分)으로 보면 그중 칠분(七分)은 우리의 애국적 선열선현(先烈先賢)들의 혈한(血汗)일 것이요, 그 칠분(七分) 중에는 선생의 노력이 또한 중요한 부분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다언(多言)을 요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 최후의 삼분(三分)이 우리의 힘으로 되지 못한 까닭에 우리의 해방은 사전 상에 새 해석을 올리지 아니하면 아니될 기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해방이 왜적을 구축(驅逐)하여준 것만은 감사한 일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통일과 자유와 행복이 아니라 분열과 구속과 불행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해방의 환희도 벌써 지나간 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선생이 누워 계시고 이 몸이 붙이어 있는 남한의 정세를 볼지라도 암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날마다 늘어가는 것은 실업자뿐입니다. 이 겨울을 지내는 동안에 서울 안에서만 강시가 61명인데 그들은 거의 다 전재동포(戰災同胞)라 합니다. 그 외 행려병사자가 금년 1월 한 달 동안에만 111명이라 하는바, 이것은 작년 1월중 70명에 비하여 41명이 격증된 것이며, 작년 1년도 599명에 비하여 벌써 5분지 1의 놀랄만한 숫자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가련한 농촌의 동포들은 과분한 공출에 신음하고 있으되 식량의 부족은 의연히 도처에서 위협을 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도 설상가상으로 모 기관 모 단체에서 가지가지의 명목으로 나오는 가연(苛捐)은 향촌과 도시의 빈곤한 동포를 울리고 있습니다.

근로동포들은 공장에서 종일 노역하되 호구도 극난한 형편입니다. 학교는 문이 열려 있으되 교수는 부족하고 부담금은 과중하여 순진하고도 정열에 타오르는 청년 학생들의 가슴을 초조하게 하고 있습니다. 발전소는 여러 곳에 있으되 석탄 부족으로 인하여 최대한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북한의 부족한 공전(供電)만 의뢰하고 있는 까닭에 전등과 동력은 정돈(停頓)되는 때가 더 많습니다. 지하에 석탄은 상당히 매장되었다 하나 이것을 힘껏 채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장은 불소(不小)하게 있으되 이것을 운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철로의 증설은 고사하고 있는 열차도 운휴 통고뿐입니다. 화폐의 정리는 고사하고 지폐는 필요한대로 찍어내기만 합니다.

모리배는 탐관오리와 구결(勾結)하여 경제를 교란하며 가련한 세민(細民)들의 피를 빨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물가는 기하급수로 올라만 가고 있습니다. 그중에도 가장 큰 결함은 과거에 왜적에게 가장 충량(忠良)하던 주구배(走狗輩)·부호배(富豪輩) 등 특수계급의 등용입니다. 그들은 최근 수년간에 벌써 군정에 반근착절(盤根錯節)하여 가장 견고한 세력을 형성하였으므로, 이제는 군정당국이 그들을 좌우하기보다 그들이 군정당국을 좌우하게 되었으므로 만일 군정당국이 그들에게 단호한 처단을 하고자 할진대 치안까지 고려하지 아니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군정당국이나 일부 우리 지도자간에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처단은 한인의 독립정부가 성립된 후에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이상 그들이 여하한 명목이라도 가차(假借)하여 통일된 독립정부, 더구나 애국자로서 조직된 정부의 수립을 방해할 것은 자연한 논리인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미국의 정책이며 하지 장군의 진의(眞意)리까마는 이것이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실인대야 어찌 하겠나이까? 그러므로 미군이 점령하고 있는 독일에서도 일본에서도 다 진보와 발전이 있으되, 오직 우리 한국에서만 수년동안에 하등의 향상이 없는 것이 무리는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가보지 못하는 북한에도 장단(長短)이 각유(各有)하겠지만 다수한 동포가 남하하는 것을 보면 남한보다도 더욱 참담하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이여!

우리는 미·소공위에서 이 모순이 해결되기를 희망하였습니다. 그러나 미·소공위는 도리어 우리에게 신탁을 강요하다가 영용한 우리 애국동포의 분노와 반대로써 실패되었습니다. 이에서 실망한 우리는 UN의 정의의 발동으로써 정당한 해결이 있기를 간망하였습니다. 과연 UN에서는 한국문제에 대하여 관면당황(冠冕堂黃)한 결의안을 통과하고 그 결과로써 임시위원단을 한국에 파견한 것입니다. 과연 그 위원단 의장 메논 씨는 그 위원단을 대표하여 환영회 석상에서 혹은 방송국에서 우리에게 굳은 언약을 하였습니다. 말하기를 '하나님이 합한 것은 사람이 나눌 수 없다' '통일이 없으면 독립이 없다' '이번에 38선은 기어이 철폐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하도록 하겠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1개월 후에는 그것을 잊어버린 듯한 행동을 취하였습니다. 북한에 입경(入境)하겠다는 서한 1통을 보낼 뿐, 입경거부가 있은 후에는 하등의 성의 있는 노력도 없었습니다. 노력이 있었다면 뉴욕을 내왕한 것뿐이었고, 성공이 있었다면 자기가 파키스탄의 분열에서 맛본 고통을 우리에게 맛뵈려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이 분열공작을 성공하는데는 미국인이 제조한 '북한에서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는 요언(謠言)이 상당한 효과를 내었다는 것까지 솔직하게 고백하였습니다. 그중에도 우리와 가장 길게 환난을 같이 함으로써 친교가 깊은 중국의 대표가 남한의 단선을 주장하여서, 한국을 재할(宰割)하는 것을 국제적으로 합리 합법화하려 하는데 노력할 줄은 몽상도 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중국의 내란은 중국의 통일을 방해하고 중국의 위신을 국제적으로 추락시키고 있거늘 우리 한국에 동양(同樣)의 화근을 심을 필요야 어디 있겠습니까?

놀라운 것은 비율빈(比律賓,필리핀) 대표가 우리 한국에 미국의 육·해군 기지를 건설하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워싱턴 7일발 UP통신에 의하면 해지(該地) 소식통의 전언으로써, '남한정부 수립 후에라도 일정한 기간은 미국의 보호를 계속하리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더욱 놀라운 것입니다. 그러면 남한의 전도는 불보다도 환하게 보이는 것이며 UN 임시위원단의 할 일이 무엇이라는 것도 예측할 수 있는 것이지만, 특별히 동병상린의 처지에 있는 약소국 대표들이 이 공작에 중요한 배우로 출연하는 것은 우리로서 이해하기 곤란한 일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지 못할진대 하필 우리 자손만대에 영원히 망각할 수 없는 원한이야 끼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선생이여! 그러나 이것도 감사하다고 수무족도(手舞足蹈)하는 수많은 무치지도(無恥之徒)가 우리 안에 있는 바에야 수원수구(誰怨誰咎)하오리까? 4국신탁이 싫다고 미·소공위를 반대한 것이 애국자라 한다면 UN의 협조 하에 실시하려는 1국 신탁도 반대하는 것이 애국자일 것입니다. 소련만을 의존하는 인민공화국을 건설하는 것이 조국을 분열하는 반역자라고 규정하면서 자기자신이 남한 단정을 수립하려 한다면 그것은 무엇이라고 규정하여야 옳겠나이까? 옛날의 보호조약을 찬성한 것을 매국노라 규정한다면 앞으로 오는 보호조약도 방지하는 것이 당연히 애국자일 것입니다.

선생이여!

선생은 조국의 강토를 수호하고자 방방곡곡에서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려고 기피역진(氣疲力盡)하였던 것입니다. 망한 조국을 광복하기 위하여 만리이역에서 동분서치(東奔西馳)하다가 불행히 적의 포로가 되어 영어(囹圄)에서 생명까지 빼앗긴 줄을 단군의 자녀로서는 다 알고 있나이다. 그러나 선생의 위대한 정신과 영용한 전적을 체득하는 자가 과연 얼마나 되겠나이까? 오늘 이 자리에서 선생을 추모하는 자 중에서는 선생의 발자취를 밟고 나갈 동지가 얼마나 되겠나이까? 바라건대 삼천만 각개의 뇌수(腦髓)마다 선생의 위대한 정신을 주입하여서 조국의 통일과 독립이 완성될 때까지 영용한 투쟁을 계속하게 하여 주사이다.

선생이여!

옛날에는 조국의 비운이 당두(當頭)하면 수운(愁雲)이 전토에 미만(彌滿)한 중에서 혹은 통곡, 혹은 순사(殉死), 혹은 투쟁 등의 각종방식으로써 민족의 정기가 표현되더니, 지금에는 조국의 위기를 담소와 환희와 추종으로 맞는 자가 불소(不少)하나이다. 이러한 정시(正視)하지 못할 현상을 볼 때마다 김구도 일사(一死)로써 그들의 정신을 환기하고자 선생의 뒤를 따르고 싶은 맘이 불현듯이 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으나, 한갓 죽는 것보다는 잔명(殘命)이 있을 때까지 좀더 분투하는 것이 좀더 유효할까 하여 구차히 생명을 연장하고 있나이다. 이것이 행복한 듯한 때도 많으나 도리어 송구하고 고통스러운 때가 더 많습니다. 선생이여! 국난에 양신(良臣)을 사(思)한다 하였거니와 조국의 위기가 점점박두(漸漸迫頭)할수록 위대한 지도자를 추모하는 심회(心懷)가 더욱 간절하나이다. 그러므로 이날을 당한 우리는 애사(哀辭)를 베풀어 선생의 가신 것을 슬퍼하기보다는 선생에게 오늘의 우리의 처경(處境)을 하소연하여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원하고 싶습니다.

선생이여!

선생의 영혼이 계시면 이날 이때에 평안히 누워 계시지 못하리이다. 김구는 도탄에 빠진 삼천만 동포, 그 중에도 특별히 38선 넘어 우리의 그리운 고향에 있는 가련한 동포를 대표하여 선생께 우리의 갈 길을 가르쳐 주시기를 간구하나이다. 앞 산에서 두견(杜鵑)이 울면 선생이 부르시는 줄 알 것이요, 뒤 창에서 빗소리가 나면 선생이 오신 줄 알 것이니, 꿈에라도 나타나서 우리의 갈 길을 일러주사이다.

선생이여!

강산도 의구하고 선생의 발자취도 완연하건만 선생의 영자(英姿)만은 찾을 길이 없으니 서글픈 가슴을 어찌 진정하오리까. 곤곤(滾滾)한 한강수가 다할지언정 면면(綿綿)한 차한(此恨)이야 어찌 끝이 있사오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