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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생을 나라 사랑으로 살아오신 김국주 애국지사님을 찾아뵙고….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8-05-28 조회 193

평생을 나라 사랑으로 살아오신 김국주 애국지사님을 찾아뵙고…. 

 

 

2018 5 23일 오후 230분에 김국주 지사님을 찾아뵙기로 약속을 하고 2 10분쯤 김국주 지사님이 살고있는 안양시의 한 아파트 단지를 찾았다. 잠시 준비를 하고 있는 사이 뜻밖에 김국주 지사님이   밖으로 나오셨다. 왜 나오셨냐고 여쭈었더니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에서 김형오 회장이 오신다고 하니 마중을 나왔다고 하신다. 감동스럽다. 김국주 지사님을 모시고 댁으로 들어가니 사모님께서 함빡 웃음을 머금고 따뜻하게 반기신다. 올해 김국주 지사님은 95, 사모님은 90세라고 하시는데 두 분 다 건강해 보이신다. 김국주 지사님은 2년 전까지 직접 운전을 하고 다니셨는데, 2년 전에 빗길에 넘어져 머리를 다치신 후부터는 운전을 못한다고 하신다.

 

지사님은 원적은 경북 의성인데 1924년에 원산에서 태어나셨다. 부친은 한의사셨는데 지사님이 10살 때 사정으로 인해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셔서 부친과는 떨어져 살아야 했고, 누님 세분과 여동생 둘의   1 5녀로 독자로 자랐다. 뒤에 부친은 북만주 목단강으로 옮기셨고 지사님이 보통학교를 졸업했을 때 부친이 오라고 하셔서 목단강으로 가셨다고 한다. 당시 용정에 있는 상급학교에 입학을 하려고 했으나 사정으로 인해 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부친과 머물다가 1942년 경 일본의 징병으로 인해 이를 피하려고 상해로 가기로 마음먹고 만리장성을 넘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북경에서 산서성 석가장으로, 다시 개봉, 서주를 경유하여 귀덕에 도착하였다. 마침 귀덕에는 부친의 친구분이 장사를 하고 있어서 그곳에서 그 분을 도우며 여비를 마련하고 있던 차에 안경수, 이동진, 장조민 등을 만나 상해로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그때 장조민이라는 분은 지사님의 말을 듣고 자신이 조선혁명군에 있었는데, 지금 중경에는 임시정부가 활동하고 있고 서안에 광복군이 있으니 다시 독립군을 찾아서 그리로 가려고 여기까지 왔다고 하는데, 순간 흥분이 되어 , 내가 갈 길은 이거구나하고 딱 결심을 하셨다고 한다그런데 중경으로 이동하기가 용이하지 않아 갖은 우여곡절을 겪고 겨우 중경이 아닌 부양에 도착했고 거기에서 김학규 장군, 오광심 여사 등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뒤에 광복군 초모위원회에 참여하여 서주 지역으로 파견되어 기간요원으로 초모활동을 했고, 서주지역 공작에서 철수 한 뒤에는 중국군 산하의 간부훈련학교 특설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한광반)에서 훈련을 받으셨다. 1945년초에는 안휘성 일대 연락 책임자로 임명되어 동지들의 안내와 지하공작 거점 확보를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 후 상해지구에도 파견되어 공작활동을 계속하셨다.

해방이 된 후, 지사님은 조금 늦은 46 6월에 미군의 LSD(상륙함)를 타고 상해에서 인천으로 건너왔는데, 인천에 도착한 후에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생활하던 한미호텔에서 조소앙 선생, 채원개 선생 등과 생활하다가, 만주에서 돌아온 김학규 장군의 권유로 1948년 육사7기 특별반으로 들어가서 3개월 교육을 받고 소위로 임관을했다.

당시에 광복군 출신들은 독립운동은 해도 미군의 용병은 하지 않겠다고 하며 군에 들어가지 않다가, 지사님이 육사 7기 특별반에 들어간 뒤에는 많이들 군에 입대를 했다고 한다.

임관이 된 후에 당시 부패한 군내 상황에 대하여 상부에 바른 말을 하다가 밉보여서 여순 반란사건 진압에 동원이 되어 공비토벌작전에 투입되었고, 그러다가 6.25가 터지고 중대장으로 참전을 해서 병력을 이끌고 제일 먼저 평양에 들어갔다고 하신다.

그 후 중공이 참전하여 후퇴하게 되어 고향인 원산은 가보지도 못하셨다고 한다.

휴전 뒤에는 군수지원사령부에서 참모장을 지냈고 군수지원사령관, 36사단장, 1군 부사령관 등의 직책을 맡은 후 1979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셨다. 그 후 광복군동지회장, 독립유공자협회장, 광복회장 등을 역임하셨다.

사모님  조현실(1929년생) 여사는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셨다고 한다. 그래서그런지 어찌나 목소리가 낭랑하신지 처음에 전화로 통화할 때는 김국주 지사님 며느님인줄 착각을 했을 정도이다. 두분이 만나게 된 계기는 당시에 사모님이 다니던 교회가 장대현 교회인데, 김구 선생께서도 자주 오셨던 교회라고 한다. 그 장대현 교회에서 여러 친구들이 결혼을 했는데, 그때마다 사모님이 축가를 불러 주셨다고 한다. 그때 찍은 결혼식 사진을 보고 김국주 장군이 마음에 드셨는지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배재학교 건너편의 석화다방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나갔더니, 문을 열고 어떤 사람이 들어오는데, 바바리를 입고 들어오는 모습이 로버트 테일러가 들어오는 줄 알았다고 하신다. 그렇게 만나서 두 분은 결혼을 하셨고 슬하에 5남매를 두고 유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오셨다고 한다.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니 두 분이 바로 다정스럽게 손을 잡으시며 카메라 앞에 앉으신다. 그 연세에까지 다정스런 그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또 본받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 동안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대화에 흠뻑 빠져 있다가보니 어느새 4시가 넘었다. 너무 오랜 시간 노인들을 힘들게 한 것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에 작별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우리 김국주 지사님은 끝까지 나라 걱정이 끊이지를 않는다.


젊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신하셨고, 해방 후에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거셨는데도 부족하여 95세가 된 지금까지 온통 나라 걱정 뿐이시니 이 시대의 진정한 애국자는 김국주 지사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작별을 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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