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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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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절망의 벽을 뛰어넘는, 작지만 거대한 힘
작성자 고종윤(15비행단) 개최일 2018-11-02 조회 2783

절망의 벽을 뛰어넘는, 작지만 거대한 힘

 

제15특수임무비행단 보급대대

상병 고종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백범일지』를 읽으면서 김구 선생이 이 시의 ‘담쟁이 잎 하나’ 같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일제강점이라는 절망의 벽 앞에서,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은 사람. 마침내 수 천 만의 동포를 이끌고 그 벽을 뛰어넘어 조국의 광복을 앞당긴, ‘담쟁이 잎 하나’ 같은 사람.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다. 김구를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로 만든 힘은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책을 두 번 정독했다. 역사 교과서 이면에 존재하는, 살아 숨 쉬는 인격체로서의 김구 선생을 만나보고 싶었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이들이 일제의 앞잡이가 되거나 그것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함으로써 이득을 취했다. 어떤 이들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려는 일본의 노골적인 야욕을 눈치 채지 못 하고, 오히려 일제 통치가 조선 근대화에 도움이 된다는 거짓 논리에 현혹되기도 했다. 이들이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면 김구는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이었다. 민족의 자유와 독립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그는 어떠한 회유와 협박과 폭력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일본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에도, 모진 고문과 참혹한 옥중생활로 심신이 쇠약했을 때에도, 그는 ‘왜놈을 금수’로 보며 낙천적인 생활을 이어나갔다. ‘살아갈 이유가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삶이든 견딜 수 있다’는 니체의 말을 그는 삶 자체로 증명해낸 셈이다.

 

그의 지조와 절개는 ‘겸손함’이 어우러져 더욱 빛이 났다. 김구는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타인의 충고를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그가 안창호에게 자신을 정부 건물의 문지기로 써달라고 애원한 일화는 그의 겸손한 성품을 여실히 드러낸다. 또한 그는 평생 뜨내기 신세로 이집 저집 걸식하고 다니며 집 한 채 제대로 소유해 본 적이 없는데도, 권력을 과시하거나 탐욕을 부리는 법 없이 약자와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며 살았다.

 

그의 굳은 절개와 겸손, 약자에 대한 연민과 사회적 감수성,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하는 기지와 용맹은 그를 근현대사의 ‘위인’으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역사는 위인들의 전기’라는 말이 있듯이 민족해방사의 거대한 흐름을 창조한 주역으로서 그는 손색이 없는 뛰어난 인물이었다. 하지만 『백범일지』를 다시 한 번 정독했을 때, 나는 전에는 간과했던 새로운 사실들에 주목하게 되었다. 김구와 동시대를 살아간, 일제에 저항하다가 이름도 없이 피 흘리며 죽어간 수많은 보통의 사람들. 그들의 핏방울, 땀방울 그리고 거친 숨소리가 살갗에 느껴지는 듯 했다. 처음에는 위인으로서의 김구, 주인공이자 서술자로서의 김구에 주목했다면, 두 번째 시기에는 김구라는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수많은 조연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것이다.

 

김구의 삶을 통틀어 그가 홀로 이루어낸 업적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의 주변에는 늘 헌신적인 조력자가 있었다. 그들의 희생은 땅에 떨어지지 않았고, 바위를 뚫고, 벽돌을 뚫어 끝끝내 꽃을 피워냈다. 김구가 사형 언도를 받자 인천항 내 32명의 객주들은 각기 엽전 한 냥씩을 모아 김구를 살릴 계획을 세웠고, 김주경이라는 사람은 김구를 석방시키기 위해 동분서주 노력하다가 전 재산을 탕진했다.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는 품팔이를 해가며 김구의 옥바라지를 도맡았다. 중국 남경 임시정부 시절에 김구가 어머니의 생신을 맞이하여 생일잔치를 벌이려 하자 어머니는 그 돈에 사비를 더 보태어 김구에게 내어주며, ‘이 돈으로 권총을 사서 일본놈을 죽이라’고 했다. 임시정부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 하고 답보상태에 빠져 있을 때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거사는 침체된 독립운동의 불꽃을 살린 기폭제 역할을 했다. 김구에게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들의 사례를 여기에 모두 열거한다면 지면이 부족할 것이다.

 

흔히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들 하지만 상상은 개인의 자유이므로 역사를 거꾸로 뒤집는 주제 넘는 상상을 지금 한번 해보자. 32명의 객주, 김주경, 고 선생, 안 진사, 곽낙원 여사, 해외 거주 동포들, 이봉창·윤봉길 의사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김구를 물심양면으로 도운 수많은 개인들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각자의 일상 속에서 다양한 모습과 방법으로 일제에 항거한 개개인의 분투가 없었더라면, 역사의 행로는 어떻게 달라졌을 것인가. 질문을 조금 더 확대시킨다면 이런 질문도 가능하지 않을까. 『백범일지』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아니, 역사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인가.

 

나는 『백범일지』를 ‘김구’라는 한 개인의 이야기로 읽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백범일지』는 ‘민족 영웅 김구’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영웅적 행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작가 유시민의 말처럼, ‘그들은 뛰어난 천재도 위대한 영웅도 아닌 그야말로 이름 없는 개인에 불과하지만 이런 이름 없는 사람들이 행동을 함께함으로써 역사의 행로를 바꿔놓는다.’ 그런 의미에서 『백범일지』의 주인공은 백범 김구 선생 혼자가 아니다. 자유와 독립이라는 민족의 열망에 동참한 남녀노소 모두가 바로 그 주인공인 것이다.

 

『법철학』이라는 저서에서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위인’을 이렇게 정의했다.

 

한 시대의 위인이란 의지를 대표하고 전파하며 완성하는 인간을 말한다. 그의 행위는 시대의 원천이고 본질이다. 그는 곧 자기 시대를 실현하는 것이다.

 

헤겔의 정의에 입각한다면 위인이란 자기 시대를 실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시대적 과제는 대중의 목소리가 결정하고, 대중의 목소리는 개개인의 목소리가 한마음 한 뜻으로 모일 때 결정된다. 다시 말해, 위인은 타고난 재능 때문에 되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개인이 대중의 열망을 사회적으로 실현할 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위인은 시대적·사회적 산물이다. 위인을 위인으로 만드는 것도 결국 대중이란 뜻이다. 백범 김구를 위인으로 만든 힘은 무엇인가. 그건 다름 아닌 대중의 간절한 열망, 이름 없는 보통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이다.

 

현대 사회는 ‘무기력한 사회’다. 사회가 고도화 되면서 정치·경제·사회 등 많은 분야에서 실패와 좌절의 가능성은 높아졌다. 반복된 실패로 인한 ‘학습된 무기력감’은 사회 곳곳을 오염시켰고 사람들은 점점 체념과 냉소에 익숙해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세상’, ‘눈 딱 감고 참고 살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젊은 층의 저조한 투표율, 정치적 무관심 등의 사회적 문제는 이에 대한 반증이다.

 

하지만 역사를 이끄는 것은 ‘뛰어난 개인’이 아닌 ‘평범한 개인’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새로운 희망의 빛을 보게 된다.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루시퍼이펙트』라는 저서에서 ‘영웅적 행위의 평범성은 우리 모두가 영웅이 될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면서 ‘선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백범일지』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십시일반 힘을 합쳤을 때 그들의 평범함은 비범함으로 바뀌었다.

 

김구 선생은 죽는 날까지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닌,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가 지켜지는 나라,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는’ 나라,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시작되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나라의 젊은 남녀가 다 이 마음을 가진다면 아니 이루어지고 어찌하랴’라고 부르짖으며 개개인의 각성을 촉구했다. 김구 선생은 개개인이 바로 역사의 흐름을 창조하는 주역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나’들의 깨어있는 정신을 그는 간절히 염원했던 것이다.

 

글을 마치며,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로 잠시 돌아가 보자. 시의 의미를 발견해내고 해석하는 것은 독자의 자유이자 권리이므로 나는 서두에 인용한 구절에 대한 감상을 수정하고자 한다. 종전까지 나는 담쟁이 잎 하나가 수천 개의 담쟁이 잎을 앞장서서 이끄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앞장서서 이끄는 담쟁이 잎 하나’란 존재하지 않는다. 담쟁이 잎이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까닭은 수 천, 수 만 장의 담쟁이 잎 하나하나가 힘의 주체로서 서로를 이끌고 당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작고 여린 담쟁이 잎 한 장 한 장이 제각각 주어진 몫만큼의 소중한 힘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힘들이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어두운 절망의 벽은 푸르른 희망의 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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