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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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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작 소개

수상작 소개 상세내용
제목 백범일지
작성자 민혜지(연초고) 개최일 2012-07-02 조회 2088

백범일지

 

2학년1반14번 민혜지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백범일지’를 접했다. 하지만 당시 ‘백범일지’는 어린 내게는 너무나도 난해한 책이었다. 아무리 읽어도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언젠가는 다시 읽으리라 다짐하면서 다시 꽂아두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이 책을 집어 들면서 나는 평소에는 와 닿지 않던 ‘국가와 민족’이라는 커다란 명제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백범 김구, 조국에 대한 그의 투철한 애국심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실 그가 직접 저술한 진솔하고 거침없는 자서전을 이해하기에 아직도 나의 지식은 얄팍하다. 그의 자서전조차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만약 일제강점 당시에 살았더라면, 그처럼 투철한 애국정신을 품고 있었을까? 과연 나라를 위해 나는 무엇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살의 김창수는 선봉장이 되어 동학혁명에 참여했는데, 지금 나는 내 앞가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나라에 대한 애국심은커녕 더 편안하고 더 좋은 것만 바래왔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현재에 감사함은 잊고 살아왔던 것이 송구스러웠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라는 백범 김구의 말씀이 아직도 뇌리에서 가시질 않는다.
  이 책은  ‘인, 신 두 아들에게’라는 뜻밖의 제목으로 담백하고 진솔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당신이 오래전에 겪었던 일들을 찬찬히 기억하면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이유 없는 아이들의 매질에 식칼을 들고 앙갚음 하려던 일, 떡 먹기 위해 아버지 돈을 훔쳤다가 호되게 혼 난 일, 시내에 물감을 풀어 놓고 장난치던 일 등 훌륭한 독립투사인 그가 한때는 개구쟁이였다는 의외의 사실에 웃음이 절로 났다. 그도 평범한 남자아이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도 학업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도 불타오르던 김구의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다.
  빈부귀천에 차별대우 없는 동학에 입도하는 김구, 고능선 선생의 가르침을 뼛속 깊이 새기고  실천하는 김구의 모습에서 그가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믿음은 두말 할 것도 없었다.
  어떤 어려운 순간이 오더라도 김구는 항상 자신의 곧은 신념을 믿고,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실행했다. 황해도 치하포에서 조선인으로 변장한 일본 중위를 죽였을 때도 그의 행동은 이상하리만큼 거침없었다. 국모가 왜적에게 피살당한 국민 전체의 치욕을 참을 수 없어 일본 왜놈을 죽였다는 그의 당찬 포부와 용기에 가슴이 벅찼다. 그의 나이 21살 때의 일이다. 현재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는 젊은이들과 너무나도 대조적인 김구의 젊은 시절 이야기........ 오로지 대한 자주독립을 위해 한평생을 살다간 김구를 비롯한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애국심이 내 마음 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3.1절을 공휴일이라고만 여기는 우리. 현충일을 노는 날이라고만 생각하는 우리. 갖은 혹형과 굶기를 반복하는 일제의 간사한 신문을 참아내고, 순국하셨던 그들의 넋을 제대로 기리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죄송스런 마음이 물밀 듯 밀려왔다. 나는 과연 이 나라에 발 디딜 자격이 있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풍족하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앞으로 그들의 죽음을 헛되이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슴 속에서 멈춰있던 북소리가 요동쳤다.
  “저는 영원 쾌락을 향유코저 이 길을 떠나는 터이니 우리 두 사람이 기쁜 낯빛을 띠고 사진을 찍으십시다.” 이봉창의사가 동경 투탄 의거 당시 마지막으로 김구와 기념사진을 찍으며 한 말이다.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이봉창 의사의 미소에 눈시울을 적셨다. 비록 그의 일황 저격이 실패했지만, 동경사건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식어가던 동포들의 호응과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봉창의사를 뒤이어 김구를 찾아 온 한 젊은이가 바로 윤봉길의사다. 자신의 목숨을 어디에서 바쳐야할지 지도해 주신다면 백골난망일 것이라는 그의 말에 역시 애국지사들은 마음가짐이 남다르다는 걸 느꼈다. 이들은 자주 독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끝없이 일제에 대항하며 서로를 믿고 의지했다. 그들의 헌신적인 나라사랑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당시, 김구선생은 절실한 각오가 얕은 민중들과는 어떠한 일이건 실효 있게 해 낼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 나라가 왜 빼앗겼는지, 일제가 우리에게 무엇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인민의 애국사상을 고취하기위해 김구는 교육구국운동과 애국계몽활동을 혼신을 다해 노력했다. 나라를 빼앗겼다는 치욕은 엄청난 상처와 고통이었을 것이다. 하루 빨리 ‘왜놈’을 무찔러야겠다는 생각에 대책 없이 봉기를 일으키려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분노를 억누르고 더욱 치밀하게 계획하고, 행동하는 김구의 모습이 마치 군자 같았다.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준비하는 그의 자세는 목적의식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올바른 삶의 태도를 일깨워준다.
  한평생 자신을 뒷바라지 해주시던 어머니와 아내, 사랑스런 두 아들 인, 신과 늘 함께 하지 못하고 오직 대한 자주 독립을 위해 애국지사로서 살았던 김구는 후손에게 무엇을 남겨주 고 싶었던 것일까?
  김구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 이것 하나밖에 없으며 70평생을 이 소원을 위해 살아왔고, 현재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미래도 이 소원을 위하여 살겠다는 백범.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히 여겼던 것은 자주 독립된 아름다운 나라에서 자손들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바람은 마침내 실현되었다. 멀고도 험난했던 광복의 길! 언제 어떻게 찾아올 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했지만, 다시 나라를 되찾으리라는 믿음하나만으로 끝없이 투쟁했던 애국지사들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그러나 광복의 기쁨도 잠시, 이념차이로 남과 북이 나뉘고 말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서는 일은 절대 없어야한다고 목 놓아 주장하던 김구. 만일 그가 반대세력에 의해 암살당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남북이 분단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전쟁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없다. 엄연히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며 휴전상태이다. 한 시도 방심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한 끼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북에 있는 우리 동포, 남북 분단으로 가족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현실........ 김구가 바라던 대한의 자주 독립이 남북으로 분단된 조국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현실은 잊은 채 통일은커녕 오히려 통일이 된다면 서로가 힘들어질 뿐이라고 여긴다. 이것이 과연 나라를 위해 한평생을 바친 순국열사들에게 보답하는 길인가? 우리는 그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기고자 하는가? 분단된 조국은 결코 아닐 것이다.
  김구는 말한다.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나또한 그가 바라는 아름다운 나라에서 살고 싶다. 그리고 그런 아름다운 나라에서 우리의 후손이 살았으면 한다.
  정치, 사상, 교육 등 이 모든 것이 완전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어디에나 오점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좀 더 완전하고 좀 더 나은 나라를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양식의 건립과 국민교육이 완비된 아름다운 나라를 위해 우리 선조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다음세대가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아름다운 나라에서 살 수 있도록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할 수 있고, 노력해야한다! 그렇게 하는 길이 백범 김구를 비롯한 우리 선조들이 바래왔던 바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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