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 소개
| 제목 | 백범,우리 민족의 영원한 지도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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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노주비(원주여고) | 개최일 | 2011-07-16 | 조회 | 17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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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상> 백범,우리 민족의 영원한 지도자 -‘쉽게 읽는 백범일지’를 읽고- 원주 여자 고등 학교 2학년 2반 노주비 “안녕하십니까.JBS방송의 노주비 기자입니다.오늘은 백범 김구 선생님을 모시고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요.우리 민족의 영원한 지도자로서 평생을 우리 민족을 위해 힘써 오신 이 분을 모시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반갑습니다,선생님.” “허허,이렇게 나를 찾아와주시니 내가 더 반가울 따름이오.” “선생님께서는 굉장히 곧고 강직한 기품을 지니셨는데,이와 다르게 어린시절에는 개구쟁이셨다고요.” “그럼.엿 사먹으려고 아버님이 쓰시던 좋은 숟가락을 분지른 적도 있고 아버님께서 아랫목 이부자리 속에 넣어놓은 돈을 가지고 앞 동네 떡집에 가다 걸려서 매질당한 적도 있네.” “와,정말 개구쟁이셨군요.저는 어렸을 때 주로 동생과 다투는 일로 많이 꾸중을 들었어요.지금은 둘도 없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지만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학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고요.” “서당 공부에 흥미를 느끼고 누구보다 먼저 선생님 방에 가서 글을 배우고,멀리서 오는 동무들을 가르쳐 주었네.외우는 시험에서는 항상 최우등을 차지했지.하지만 과거장의 모습을 보고 실망한 뒤 동학이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네.과거에 낙방한 뒤 관상 공부하면서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던 터라,동학에 입문하여 접주가 되었지. “선생님께서 동학접주를 하셨다니,처음 듣는 얘기라 놀라워요.그리고 또 처음 알게 되어 궁금한 사건이 있는데요.‘치하포 사건’,기억나시죠?” “나에겐 절대 잊을 수 없는 사건이오.지금의 나를 있게 한 발판이라고도 할 수 있지.치하포에서,국모(명성황후)를 시해한 주력자로 보이는 왜인을 죽이고 ‘국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이 왜인을 죽였노라’는 내용의 포고문을 남겼네.” “웬만한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인데요.우리나라와 민족을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모습이 엿보여 존경스럽습니다.저는 아직 정의라든가,정당한 무언가를 위해서 큰 용기를 내본 적이 없어요.무섭기도 하고 별로 부딪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죠.하지만 선생님 혼자만이 아닌 우리 민족을 위하여 큰 용기, 심지어 선생님의 목숨까지도 내바치신 것에 깊이 감탄하며 제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었네요.뿐만 아니라 교육 사업에도 뛰어드셨다고요.” “민중의 애국사상이 얕아 신교육을 실시하여 백성들의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네.그래서 각 군을 순행하며 교육하다가 보강학교의 교장이 되었지.그 때,이재명 의사를 만났네.단지 시세의 격변 때문에 헛된 열정에 들뜬 청년이라 여기고 칼과 총을 내게 맡기게 하였는데 후에 이완용을 칼로 찌른 인물이었던 것이지.만일 내가 그 때 총을 가져가지 않았더라면 그 일이 성공했을 거라는 생각에 아쉬운 생각이 그치지 않았네.” “교육에 힘쓰신 데는 다 깊은 뜻이 있었던 거군요.저희가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도 단지 대학에 입학하고 취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이 사회를 알고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겠죠.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치열한 입시 경쟁으로 학교 분위기가 입시 위주의 교육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돈 많이 벌어야지’가 아니라 ‘공부 열심히 해서 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지’가 우리 교육의 목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재명 의사 일은 정말 유감이에요.하지만 더 큰 일을 위해 기다리라는 하늘의 뜻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데 선생님의 ‘임시 정부의 문지기가 되게 해 달라’는 말에 큰 인상을 받았어요.선생님이라면 높은 지위를 받아도 마땅한데 왜 하필 문지기가 되고 싶다고 하셨나요?” “나는 서대문감옥에서 옥살이할 때 후일 독립정부가 조직되면 정부의 뜰을 쓸고 문을 지키는 문지기가 되기로 결심했네.그래서 나의 호를 ‘백범’으로 고쳤지.평소 나의 진정한 소원이었네.” “선생님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사람은 누구나 욕심을 가지기 마련인데 그토록 우리 민족을 위해 힘써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위를 마다하며 문지기를 하시겠다니요.그 숨은 뜻에 더욱 놀랍습니다. 그런데 독립운동 중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를 직접 만나셨다면서요?” “이봉창 의사는 내게 찾아와서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질 수 있게 지도해 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했네.마땅한 인물인 듯싶어 일본행을 준비해주었지.비록 일왕을 죽이지 못한 것에 원통했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네들의 신성불가침인 천황을 죽인 것이며 이는 한인이 일본에 동화되지 않은 것을 세계에 확실히 증명한 것으로,사실상 성공이었네. 윤봉길 의사 역시 나를 찾아와 지도하여 달라고 부탁했네.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해보니 그는 몸을 바쳐 큰 뜻을 이룩할 의로운 대장부였지.그는 천장절 경축식에 대량의 폭탄을 폭발시켜 문무 대관이 모두 중상을 입게 하는 쾌거를 이룩하였네.이 거사로 인해 중국인의 한인에 대한 감정은 놀랄 만큼 좋아졌고 한인교포들이 임시정부로 대단한 성원을 보내기 시작했지.” “초등학교 때부터 국사와 한국 근현대사 수업 시간에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에 대해 배웠던 기억이 나요.젊으신 분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희생하신 모습에 정말 훌륭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했어요.지금의 우리나라를 있게 한 이 분들의 노력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반성해야겠죠. 그리고 결국 왜적의 항복으로 우리나라가 독립을 이룩하게 되었어요.그 때 선생님은 어떠셨나요?” “내게 왜적이 항복했다는 말은 희소식이라기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네.수년 동안 노력한 참전 준비가 모두 헛일이 되고 만 것일세.지금까지 들인 정성이 아깝고 다가올 일이 걱정되었네.중경에 돌아와 보니 중국 사회는 전쟁으로 긴장되었던 분위기가 갑자기 변하여 혼란에 빠져 있었고,한인 사회도 어찌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지.우리나라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로 나뉘어 대립하고 결국은 분단되어 각각의 정부를 만들게 되었네.그게 너무 안타깝고 분통했네.” “독립을 이룩한 것은 정말 기쁜 일이지만 우리나라가 직접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었다면 더 좋았음에 틀림없겠죠.선생님을 비롯하며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너무나 힘써 주신만큼 아쉬운 것은 사실이에요.하지만 이 노고를 생각하여 우리 역시도 우리나라를 위해 열심히 힘쓰며 빨리 역사와 독립운동을 함께 했던 북한과 통일을 해야 하겠죠. 이번 인터뷰는 단순히 백범 선생님의 인생을 돌아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다시 한 번 독립운동가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기회가 되었으며 저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그동안의 삶에 대해 뒤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백범과 민족사에 대해 알게 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노주비 기자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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